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태원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퍼뜨리거나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혐오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행위가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다수 시민에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30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내어 “여과 없이 사고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트위터 같은 에스엔에스(SNS) 등에는 참사 직후 구급대원의 응급처치나 희생자 이송 장면이 담긴 영상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신경정신의학회는 “다수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 모두가 시민의식을 발휘해 추가 유포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은 또 참사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일 역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제를 권고했다. 실제 이태원 참사 보도를 지켜본 시민들은 심리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김아무개(55)씨는 “(이태원) 사고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계속 생각난다. 너무 안타깝고 괴롭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에 대해서도 자제를 촉구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재난 상황에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혐오 표현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가중하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혐오와 낙인은 사회 갈등을 유발해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참사 원인을 희생자 탓으로 돌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고 원인이 유포되는 데 대해 우려를 밝힌 것이다.
이날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도 성명을 내어 “대중의 비난은 생존자와 유가족 마음에 더욱 크고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며 “생존자와 유가족이 겪는 고통을 헤아려달라”고 당부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들에 대해 “(참사) 생존자는 불안과 공포·공황·우울·무력감·분노 등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반응이며 저절로 회복할 수 있다. 다만 고통이 심하고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즉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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