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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피부 안부’를 묻지 마세요…아토피안, 차별·몰이해를 말하다

등록 2022-10-08 18:21수정 2022-10-11 14:42

[한겨레S] 기획
여성 아토피안 자조모임 ‘설렁탕’
성인 여성 아토피안의 자조모임 ‘설렁탕’ 회원들이 아토피 환자와 부모를 대상으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성인 여성 아토피안의 자조모임 ‘설렁탕’ 회원들이 아토피 환자와 부모를 대상으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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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특히나 심해지는 가려움과 내일에 대한 불안함, 쓸데없는 나쁜 생각/ 잠에 들지 않아도 매일 그대를 찾아오는 악몽을 뜬눈으로 바라보죠/ 몇 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면/ 몇 시간만이라도”(래퍼 ‘씨클’의 노래 ‘나는 잠 못 드는 사람입니다’ 중에서)

가려움, 불면증, 스트레스….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를 앓고 있는 래퍼 씨클의 노래에는 아토피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토피 피부염(아토피)은 단순한 피부염이 아닌 만성적인 전신 면역질환으로, 유전적·환경적 요인 등으로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기면서 피부 깊은 곳에서 발생한 염증이 신체 여러 부위에 나타나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팔꿈치 안쪽, 얼굴, 목, 손목, 무릎 뒤 등에서 진물, 건조증, 발진 등을 일으키고, 참기 힘든 가려움증 탓에 ‘가픈’(가렵고+아픈) 질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려움증은 불면증, 학습장애, 정서장애, 활동능력 감소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증상에 따라 경증·중등증·중증으로 나뉘고, 환자에 따라 증상도 치료 방법도 범위가 넓다. 아토피 환자는 2021년 현재 98만9750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100만명에 육박하지만, 아토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척박하다.

모임 중간에 가도 “왜?” 질문 없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아토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한국법인의 주최로 ‘잠 못 드는 사람을 위한 꿀잠 마켓’이 열렸다. 행사장 한편에는 아토피에 대한 소개와, 아토피 환자(아토피안)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영상과 웹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아빠와 함께 온 이민지(12)는 “주변에 아토피를 앓는 사람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힘들 것 같다. 아토피 걸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숙경 영화감독의 사회로 성인이 된 아토피안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자신들처럼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어린 아토피안와 그 부모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의 자리였다. 이날 토크쇼에는 대부분 30년째 아토피를 겪고 있는 여성 4명이 패널로 참석했다. 성인이 돼 아토피를 앓게 된 혜진과 유년 때부터 아토피와 공생하고 있는 예진, 제이, 수연이다. 토크 콘서트에서는 이들이 아토피안으로서 그동안 겪어왔던 혼란이 터져나왔다. 환자 자신의 뜻보다 부모님의 뜻이 반영되기 쉬운 유년·청소년기에 겪은 괴로움은 공통적이었다.

“부모님들도 아토피 치료 관련 정보를 이성적으로 거르지 못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소개한 민간요법들을 여럿 시도했다. 효모성분인 이스트를 물에 개어 환부에 발랐던 적이 있다”는 제이의 말에 “유황오리를 담근 간장을 몸에 뿌리고, 사해 소금을 녹여 거즈에 바른 뒤 몸에 붙였던 경험”(수연), “뱀딸기를 달인 물로 목욕”(혜진), “아토피 치료에 좋다며 고모가 챙겨준 게 알고 보니 폼클렌징”(예진)의 경험이 연달아 나왔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참석한 이들은 성인 여성 아토피안 당사자들이 만든 자조모임 ‘설렁탕’ 멤버들이다. ‘설렁탕’은 사노피가 2017년 여성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플랫폼 ‘줌마네’와 함께 만든 중증 아토피 환자들의 일상 돌봄과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 ‘토요싸롱’의 분화 모임이다. 제이, 혜진, 수연, 예진 등 여성 8명이 2019년부터 한달에 한번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대체로 ‘nn년차’ 아토피안이다. 30년이 넘는 이들도 있다. 토크 콘서트를 마친 뒤 패널로 참여한 4명과 시은을 만났다.

설렁탕의 뜻은 ‘설렁설렁 모이자’다. ‘설렁설렁 살자’도 아니고, 모이는 데 ‘설렁설렁’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야 하나 싶지만 이유가 있다. 제이는 “컨디션이 안 좋아지거나 피부 트러블이 크게 나면 밖에 나갈 수가 없다. 몸과 피부 컨디션이 그날그날 달라서 누굴 만나려면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 만약 상태가 좋지 않으면 약속에 나갈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설렁설렁 만나자고 지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한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엔 한동안 혜진과 시은만 나왔다. “그때 혜진님이 내 얼굴만 봐서 즐거울까 걱정됐다”며 시은이 웃었다.

여성 아토피안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이들은 ‘설렁탕’에선 미안하다는 말도,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모임에 나오다가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모임 중간에 “나 가야겠어”라는 말에 “어, 어, 그래 먼저 가”가 전부다. “왜?”라는 질문이 없다. 비아토피안처럼 자신을 꾸미려 애쓸 필요도 없다. “예전에 봉사활동 갔을 때 햇볕이 강해서 그늘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설명하기 쉽지 않아서) 그냥 햇볕에서 계속 활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제이)

올봄부터는 아토피안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을 공유하는 유튜브 ‘아토피 쫌 있는 언니들’을 운영하고 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조모임에서 받은 위로를 이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달한다. “모임이 지속되면서 대화가 반복되는 걸 느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오는 모임인 만큼 얻어 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의 이야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기록하기로 했다.”(시은) ‘설렁설렁’이라는 모임 취지에 맞게 유튜브 운영도 최소한의 노력만 들인다. 별도로 녹음날을 잡는 게 아니라 한달에 한번 만나는 날 미리 기획한 아이템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음식 편, 이사 편, 신약 편, 신입사원 시절 편이 업로드된 상태다. “아토피 관련 책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 나았다는 내용만 있지 우리의 고통을 세밀하게 다룬 건 없다. 우리의 아픔을 공유하고 아토피안도 자립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걸 다른 아토피안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시은이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유튜브 토요싸롱에 업로드된다.

“인간 됐네” “젊은 아가씨가…” 무례한 말

아토피는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이지만, 고통을 주변인과 공유하기는 어렵다. 그 때문에 여성 아토피안인 이들에게 ‘설렁탕’은 “안전한 공간”(예진), “위로의 공간”(혜진), “이해받는 공간”(시은)이다. 수연은 “처음엔 내 몸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 게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픈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이 다른 집단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진이 설명했다. “우리 안에선 무언의 약속이 있다. 서로에게 지뢰를 ‘콱’ 밟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토피(atopy)는 그리스어 아토포스(a-topos)가 어원으로 ‘이상한’ 혹은 ‘비정상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단어의 뜻만큼이나 아토피안을 보는 사회의 인식도 척박하다. 아토피안들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더럽다” “옮는다” 같은 ‘지뢰를 밟는 말’과 수시로 마주한다. ‘지뢰 밟는 말’은 낯선 사람이나 주변인, 친척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 됐네”(예진), “너 이제 좀 살 만한가 보다”(제이), “아토피만 없었어도”(수연) 같은 무례한 말은 숱하다. 이런 경우도 있다. 길을 지나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에 가면 낫는다고 명함을 받은 적도, 친구에게 “엄마가 옮는다고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제이) 혜진은 여러명에게 둘러싸인 청소년 아토피 환자를 본 적도 있다. “한 온천에서 아토피를 앓는 여성 청소년을 둘러싸고 아주머니들이 ‘피부가 왜 그러냐’ ‘언제부터 그랬냐’ ‘○○에 가봐라’ 등의 말을 쏟아냈다. 정말 손잡고 꺼내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른 몸, 하얀 피부, 잡티 없는 얼굴 등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한국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환부를 가진 아토피안이 마주하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남녀 아토피안 모두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지만 2030 여성이 겪는 시선은 더 차갑기만 하다. 이들이 자주 듣는 말은 “젊은 아가씨가 (피부가) 그래서 어떻게 해”다. 제이는 “한국 사회는 여성을 가두는 틀이 강하다고 느낀다. 여성 아토피안이 화장을 해야 한다거나, 외형적으로 피부가 깨끗해야 한다 같은 틀에서 확연하게 벗어난 사람이다 보니 ‘피부 어떻게 해’라는 말을 듣는다. ‘출산은 어떻게 하냐’ ‘애한테 가는 건 아니냐’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애 낳으면 낫는다’는 말도 한다”며 예진이 말을 보탰다.

이들은 미성년 아토피안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린 탓에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보게 될 것을 염려한다. 수연은 “자신의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기 전에 신체상을 갖게 되는데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다른 자아상들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성인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82%는 자신의 외모를 걱정하며, 증상이 악화된 시기에는 아토피안 50%가 사회활동을 기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2018) 소아·청소년 아토피안 50%는 자신이 불행하거나 우울하다고 느끼기도 한다.(아토피 인사이드) 가려움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데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과 전염질환이라는 오해까지 더해지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은 사회에서 고립되기 쉽다는 뜻이다.

아토피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잠 못 드는 사람을 위한 꿀잠 마켓’이 10월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열렸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아토피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잠 못 드는 사람을 위한 꿀잠 마켓’이 10월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열렸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기후위기 취약계층 아토피안

어린이의 20%, 성인의 1~3%에서 아토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질병청) 소아 아토피안의 상당수는 성인이 되면서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지만, 최근엔 성인 아토피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에 따르면 19살 이하 아토피 환자 수는 2016년 56만283명에서 2021년 48만3030명으로 약 16% 줄었지만, 20살 이상에선 38만3270명에서 53만831명으로 약 38% 늘었다. 여기엔 환경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아토피가 환경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토피를 개인적 질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예진은 24시간 새집증후군을 겪던 때를 예로 들었다. 2016년 주거 공간을 옮기고 회사 사옥도 리모델링 공간으로 이전했을 때였다. 이사한 집은 대로변에 있었는데 주거 환경이 낙후한 곳이라 철거와 공사가 수시로 일어났다. 리모델링이 완료되지 않은 사옥은 페인트 냄새가 진동했다. “잘 때도 일할 때도 먼지에 노출이 되면서 염증 부위가 몸 군데군데로 퍼지고 얼굴에 수포가 올라왔다. 환경 문제는 내가 비건식을 먹거나 약을 잘 먹고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나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회사를 관뒀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이라고 하면 주로 주거 환경만 떠올리는데 아토피 만성 질환자도 취약계층이다.”(예진) 2020년에 54일간 내린 비로 주거 환경에서 누수와 곰팡이를 겪은 아토피안의 고통이 컸던 것도 사회적 질병이기 때문이란 뜻이다.

아토피를 앓으며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된 예진은 문화예술 기획자에서 기후위기 대응 캠페이너로 직업을 바꿨다. 그리고 콘텐츠플랫폼 ‘브런치’에 성인 아토피안으로서 겪는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수연은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며 아토피 환자의 삶을 기반으로 한 석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아토피는 옮는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학생 아토피안들에게는 ‘성인 아토피안 롤모델’을 보여주고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질병을 겪고 있지만, 잘 볼 수 없는 이들의 삶도 얘기해주고 싶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목과 팔에는 (아토피 흉터인) 선이 없지 않나.”

“아토피를 관리하고 치료하며 그 안에서도 좋은 삶을 꾸릴 기회가 있다. 세상이 규정한 정상성에 편입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아토피와 함께하는 삶 안에서) 이 고통을 깊게 관찰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또 다른 삶의 기회가 열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토피 환자들에게 묻는 ‘피부 안부’를 멈춰라.”(예진)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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