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5일 충남 아산의 한 카페에서 코로나19 후유증 환자인 김경훈씨가 병원에서 촬영한 체열 사진을 들고 있다. 상체의 체온이 높게 측정돼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코로나19 확진 1년, 제 모든 걸 변화시킨 1년입니다.”
아직은 쌀쌀한 3월 말이었지만, 김경훈(39)씨는 벌써 여름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3월25일 충남 아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영어로 ‘summer’라고 적힌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실내에서도 아직 두꺼운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김씨는 반팔을 입고도 열이 오른다며 인터뷰 내내 이따금씩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김씨는 <한겨레>가 최근 대면과 비대면으로 인터뷰한 20여명의 코로나19 후유증 환자 중 1명이다. 일명 ‘롱 코비드’, 코로나 후유증을 호소하는 김씨는 1년째 미열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기운 없음, 시력 저하도 1년간 김씨를 따라다녔다.
아픈데 병명도 치료도 막막…삶을 송두리째 바꾼 코로나19
2021년 4월7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그날까지도 김씨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4일간 병원 치료를 받고 격리 해제된 이후로 김씨는 미열과 기운 없음에 시달리며 그야말로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됐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16년간 근속하던 직장에서 ‘연장근무 1위’를 할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코로나19 이후로는 출근 뒤 1∼2시간을 앉아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상체는 뜨거운데 하체는 차갑고, 특히 수천개의 바늘로 다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열을 재면 섭씨 37도 전후로 체온이 측정됐지만 느껴지는 열감은 그 이상이었다. 결국 휴직계를 내고 1년간 유명하다는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10곳 이상 찾아다녔다. 내과, 신경과, 안과, 정형외과, 류마티스내과, 감염내과 등 안 돌아본 과가 없다. 현재까지 쓴 병원비만 1500만원에 가깝다. “너무 아파서 미치겠는데,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정신적 문제로만 결론지으니까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코로나19 후유증을 겪고 있는 김경훈씨의 진료비 계산서 및 영수증. 김씨는 지난해 4월 코로나 확진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검사와 치료 등에 15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를 지출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3개월내 발생 2개월 이상 지속…건망증·불면증·피로·불안
세계보건기구(WHO)는 김씨처럼 코로나19 감염 후 ‘설명할 수 없는 적어도 하나의 증상’의 후유증이 3개월 이내 발생해 최소 2개월간 지속되는 상태를 롱 코비드로 규정했다. 국제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런 후유증을 호소한다.
31일 0시 기준 1309만5631명이 공식 확진된 국내에도 롱 코비드로 고통받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코로나19 대면 추적 조사를 보면, 확진자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1년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겨레>가 최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김신우 경북대병원 교수팀의 ‘코로나19 확진자에서의 후유증 등 임상평가 및 항체지속양상 분석’ 중간 결과에 담겨 있다. 연구팀은 질병관리청 연구용역으로 코로나19 완치자 170명을 대면으로 조사했는데, 확진 이후 12개월이 지났는데도 75.9%에 달하는 129명이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건망증 25.3%, 수면장애(불면증) 15.3%, 피로감 13.5%, 불안 12.9%, 관절통 12.4% 순으로 후유증을 호소했다. 또 확진 후 1년9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대면조사를 이어온 81명 중 65.4%에 해당하는 53명에게서 후유증이 지속됐다. 역시나 건망증 32.1%, 피로감 30.4%, 수면장애(불면증) 23.5%, 집중력 저하 17.3%, 탈모 17.3% 순으로 정신건강과 관련된 후유증이 많았다.
김 교수는 3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회복하더라도 신경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해 환자들의 삶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며 “후유증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중요하다. 심하게 앓은 사람이 1차적으로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백신 접종, 먹는 치료제 등으로 중증도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롱 코비드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내려놓게 된 건,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였다. 김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롱 코비드 환자를 위한 단톡방’ 활동을 시작해, 다양한 증상을 공유하고 치료 방법을 나눴다. <한겨레>가 이 단톡방에서 지난 29일부터 30일까지 증상을 복수응답으로 물었더니, 참여한 31명은 피로감(26명, 83.9%), 두통(23명, 74.2%), 우울감·불안(21명, 67.7%) 등을 가장 많이 겪고 있었다. 이어 심장 두근거림(20명, 64.5%), 열감(18명, 58.1%), 소화불량(17명, 54.8%), 손발 저림(16명, 51.6%), 관절통(14명, 45.2%), 근육통(14명, 45.2%), 기억력 감퇴·인지장애(14명, 45.2%), 시력 저하(14명, 45.2%)를 겪기도 했다. 이 밖에 호흡곤란, 흉통, 후각·미각 상실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 후유증이 1개월 이하로 지속됐다는 응답자는 3.2%(1명)뿐이었고, 1∼2개월과 2∼3개월이 각각 29%(9명), 3~6개월과 6개월 이상이 각각 19.4%(6명)였다.
35살 여성 넉달째 미열…45살 여성 “몸 타는 듯 열감”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차례 확진 판정을 받았던 강아무개(35)씨도 이 단톡방에서 김씨를 만났다. 강씨는 1차 확진 이후 미열이 떨어지지 않고, 평상시에도 감기몸살에 걸린 것 같은 컨디션이 계속됐다. 평소 잘 쓰던 문장도 문맥에 맞지 않게 튀어나오고, 자다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깨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서너군데 병원을 다녀봤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불과 1500보 떨어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5분도 안 걸리는 설거지를 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체력이 달려요. 정말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강씨는 김씨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2시간 동안 피로감 때문에 의자에 여러번 기대야 했다. 외출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섭씨 37.9도로 찍혔다. 강씨에게는 이제 “익숙한 숫자”라고 했다.
강씨는 지난 1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었다. 암 질환을 앓고 있던 강씨의 아버지는 입원 17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임종도 영상통화로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앗아간 코로나19는 강씨를 끈질기게 괴롭히며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두번이나 확진을 같이 겪은 4살 딸이 앞으로 어떤 후유증을 겪을지도 두렵다. 코로나19는 강씨의 가족을 무너뜨리고 있다.
두차례 코로나19 확진 이후 계속해서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강아무개씨가 지난 3월25일 충남 아산의 한 카페에서 체온을 직접 재니 섭씨 37.9도가 나왔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소아 후유증 호소…“6살짜리 복통·압통에 대상포진”
<한겨레>가 인터뷰한 코로나 후유증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롱 코비드에 대한 방역당국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김씨는 “알아서 찾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녀본 병원 정보와 병명을 교류하고 논문을 공유하며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저녁 8시에는 코로나 후유증 피해자 10여명이 비대면으로 모였다. 2시간여의 모임 동안 만성피로, 가래, 호흡곤란, 근육통, 관절통, 두통, 빈맥, 후각·미각 저하, 입마름 등 다양한 증상이 언급됐다. 6개월째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김아무개(45·여성)씨는 지난해 9월 확진 이후로 몸이 타는 듯한 열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예정돼 있던 결혼까지 취소했다. 김씨는 “병원을 계속 다니며 검사도 여러번 해봤지만, 정상이라고만 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아무개(38·여성)씨는 “격리가 해제된 지 한달이 됐는데, 기운이 없고 3일에 한번씩은 링거 주사를 맞고 있다”며 “매일 병원을 가는 것도 눈치 보이고, 어디 가서 아프다고 말도 제대로 못 하겠다”고 말했다.
소아 후유증을 호소하는 부모도 있다. 김정은(45)씨는 함께 코로나에 확진됐던 6살 자녀가 격리 해제 후에도 복통, 브레인 포그(머리가 멍한 상태), 압통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평소에 아프다고 하지도 않던 아이인데, 너무 걱정이 된다”며 “대상포진 전문병원에서도 코로나 확진 이후 후유증으로 많이 찾아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어린이는 성인과 유사한 피로감, 두통, 불면증, 집중력 저하, 기침 등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소아와 관련한 장기 후유증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적은 실정이다.
김경훈씨는 이날 모임에서 최근 자율신경 조절 장애와 관련한 치료를 받고 있는 내용을 공유했다. 최근 방문한 신경과에서 ‘자율신경 조절 장애가 의심된다’는 진료 의뢰서를 받아 국내 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고 있다. 김씨는 “1년 정도를 고생한 끝에야, 겨우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신경과 연결된 문제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힘이 난다”며 “그나마 치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섭씨 26도로 맞춰진 따뜻한 방에서도 발 쪽만 차가워져 빨갛게 변한 강아무개씨의 발. 본인 제공
“후유증 연구·치료 지원 필요”…당국 “1000명 조사 진행”
후유증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은 롱 코비드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국외에서는 많은 완치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국립보건연구원(NIHR)과 옥스퍼드대 공동연구팀은 코로나19 완치자 27만36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메디신>에 공개했다. 이들 중 37%가 감염 후 3∼6개월 사이 하나 이상의 후유증을 겪었다. 집계된 후유증 증상은 우울감과 불안장애(15%), 호흡곤란(8%)과 복통(8%), 흉통(6%), 피로(6%), 두통(5%), 인지장애(4%), 근육통(1.5%) 등이었다. 이혁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진단검사의학과)는 “우리나라는 확진자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어서 연구가 늦었다. 그렇더라도 지난해 말 정도부터는 광범위한 조사를 했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에 따라서도 후유증의 발생률이나 정도가 좀 다르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중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부분들도 연구를 해야 한다”고 짚었다.
방역당국은 31일 그동안의 코로나19 후유증 연구 경과와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간 국립보건연구원이 국립중앙의료원, 경북대학교병원, 연세대학교의료원 등 국내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실시한 후유증 조사 결과 피로감, 호흡곤란, 건망증, 수면장애, 기분장애 등이 20∼79%의 환자에게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로 기저질환자, 중증 환자, 입원 환자 중심의 조사로 일반 성인에 대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기존의 치료 지식만으로는 (코로나19 후유증) 대응에 한계가 있으며, 적극적인 관리를 위한 표준화된 정밀 자료 확보를 추진하게 됐다”며 국립보건연구원이 약 1000명 대상을 목표로 세계보건기구 조사법에 기반한 후유증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단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후유증에 대한 명확한 정보 확보를 기대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중간 결과를 분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최소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를 앓았고, 향후 풍토병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후유증 피해는 장기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씨는 “연구비 등을 지원해서 후유증을 겪는 사람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갖춰지면 좋겠다”며 “병원비가 지원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멀리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동네 병원에서도 롱 코비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때를 그려본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강씨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센터가 건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후유증에 관한 모든 것들을 개인이 찾아보게 하지 말고, 국가가 아픈 국민들을 위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롱 코비드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정보를 수집·제공하고, 치료해달라는 주문이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