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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소형 원전이 탄소중립의 구원투수?…“아직 걸음마 단계”

등록 2021-06-15 04:59수정 2021-12-29 14:42

소형모듈원전(SMR) 공방 가열
강점이라는 경제성은 안갯속
“걸음마 단계에 신기록 기대”
2016년 4월2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6 부산 국제 원자력산업전'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가 개발한 스마트(SMART) 원자로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스마트 원자로(33만㎾)는 인구 10만명 중소도시에 필요한 전기와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다목적 원자로다. 사우디가 국산 스마트 원자로 2기를 도입해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4월2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6 부산 국제 원자력산업전'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가 개발한 스마트(SMART) 원자로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스마트 원자로(33만㎾)는 인구 10만명 중소도시에 필요한 전기와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다목적 원자로다. 사우디가 국산 스마트 원자로 2기를 도입해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력 발전의 장점으로 보통 외부 환경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량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나 체르노빌·후쿠시마 사고에서 봤듯이 수십~수백년 회복 불가능한 대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최근 원자력학계와 정치권, 친원전 언론에서 앞다퉈 소개하는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은 이런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한 꿈의 원전으로 묘사된다.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목표에 이르는 빠르면서도 손쉬운 선택지처럼 홍보된다. 원전 규모를 줄인 소형 원전을 여러개 연결해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밋빛 미래를 믿고 안심하면 되는걸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술을 지금 당장 대응에 나서야 할 기후위기 해법처럼 제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까. 전문가들로부터 소형모듈원전 기술 수준과 경제성, 찬반 의견을 두루 들어봤다.

 일반 원전과 차이점은 ‘크기’…공장에서 직접 만든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미국 원자로 업계가 침체한 시장을 타개하기 위해 구상한 게 SMR이었다.

SMR은 발전량 300MW 이하 원자로를 가진 원전으로 공장에서 제작·조립이 가능하다. 이른바 공장식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전 건설 기간이 대폭 줄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원전 업계 설명이다. 또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가 일체형인 ‘스마트 원전’의 경우 기존 원전이 안고 있는 원자로 냉각제 배관 파손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또 발전용수가 적게 들어 해안이 아닌 내륙에도 건설이 가능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보면 미국, 캐나다, 영국, 체코,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18개 나라에서 76개 업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SMR을 연구 개발 중이라고 소개돼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97년 이래로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펌프가 하나의 용기에 집약된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 원전’ 연구 개발을 해왔다. 2019년 울산과학기술원 황일순 석좌교수 주도로 물이 아닌 납(Pb)-비스무스(Bi) 액체로 냉각되는 ‘마이크로우라노스’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8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삼성중공업이 국제해사기구(IMO)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자 녹은 소금인 용융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용융염원자로가 실린 원자력 추진선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한국 일반 원전은 총 24기(설비용량 2만3250MW)가 있다. 10일 현재 16기가 운전중(나머지 8기는 계획예방정비 7기, 정지 1기)이다. 2019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가동 기간이 가장 짧은 최신 원전인 신고리 4호기가 1400MW 규모로 가장 크다. 신고리 4호기는 지난 달 29일 발생한 화재 사고 원인 조사와 정비를 위해 현재 정지 상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집계한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가별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 현황. 출처:‘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에서의 진보’ 보고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집계한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가별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 현황. 출처:‘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에서의 진보’ 보고서

 경제성 보장 안 돼…크기 점점 커지는 모순

이론상으로는 기존 대형 원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만 가진 것처럼 보이는 SMR이지만 경제성 문제는 해결이 안됐다. 원전 최대 장점인 규모의 경제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자력 업계는 원전 크기가 작아지면 건설비가 줄어든다고 주장하지만 크기가 작아질수록 KW당 건설 단가가 오른다.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고 (원전) 대량 생산의 경제로 가고자 하지만, 수백, 수천기 원전을 수주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발전 용량에 비례해 원전 운영인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필수인력 규모는 대형 원전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소형 원전을 여러개 지으면 인력은 그만큼 더 필요하고 발전단가에 반영된다.

1990년대 가장 앞선 원전 기술을 보유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650MW(AP600) 원전을 개발했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1100MW(AP1000)로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이후 설비 용량이 확대되면서 설계 변경이 반복됐고, 비용이 늘어 다수 사업이 폐기됐다. 현재 가장 SMR기술이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 뉴스케일도 2003년 35MW, 2014년 45MW, 2016년 50MW, 지난해 77MW로 계속 원자로 크기를 키우고 있다. 미국 엑스에너지 역시 고온가스냉각로를 2014년 100MWt에서 200MWt로 변경했다. 뉴스케일이 2003년께 SMR 건설 단가를 1KW당 1700달러(189만원) 정도로 계산했지만, 지난해에는 8500달러(948만원)까지 늘었다. 미국 에너지부가 9년 동안 건설비를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6500달러(725만원) 수준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는 한국 원전의 KW당 건설 단가가 3000달러(334만원) 수준이다. 뉴스케일은 미래 SMR 건설 단가를 인공지능·자동화 작업 등을 통해 현재 일반 원전 건설 단가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라고 말한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17년 ‘원자력 발전의 경제학과 사업 구조’ 보고서에서 원전 건설 비용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로 ‘한 장소에 동일한 설계의 원전 여러 기 건설’을 꼽았다. SMR은 이와 달리 여러 장소에 분산해 지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원전 방폐장 건설 부지 선정에만 19년이 걸렸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 9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SMR 수출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SMR은 분산형 원전 형식이다. 이를 도입할 때 국내 각 지역에서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SMR을 적극 홍보하는 친원전 진영에선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에 풍광을 해치는 흉물 딱지를 붙이기 바쁜데, 주민 수용성 차원에서 SMR은 언급 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인 셈이다.

 ‘경쟁자’ 재생에너지 경제성 개선 부담

SMR이 경제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안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경제성은 점차 개선되면서, SMR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 1월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력생산 비용전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원전의 국가별 균등화 발전단가(LCOE, 발전소 건설·운영관리·연료·탄소·폐로·폐기물 처리 비용 등 포함한 가격)는 5년 전보다 비용이 늘었고, 태양광·풍력 발전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원전은 5년 전보다 12.88달러(1MWh 기준) 늘어난 53.3달러였다. 반면 상업용 태양광 발전은 170.71달러에서 98.13달러로 72.58달러 낮아졌다. 육상 풍력 발전도 147.45달러에서 113.33달러로 낮아졌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리고 있는 미국, 프랑스, 중국, 인도 등은 대규모 태양광 발전이 원전과 유사하거나 더 저렴했는데, 미래에는 원전 경제성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가 늘면 이에 적응해서 에너지 공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원전은 그런 변동에 유연한 에너지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미국 중부 지역 두웨인 아놀드 원전은 설계수명과 무관하게 조기 폐쇄했고 영국 사이즈웰 비 원전을 4개월 동안 출력을 50% 줄이는 저감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전업계는 SMR의 미래 기술을 통해 출력정지나 가동정지가 빠른 가스발전 수준까지 원자력발전의 유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걸음마 단계인데 세계신기록을 기대”

세계에서 SMR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는 뉴스케일도 설계 심사를 완전히 마쳤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의 50MW 규모의 SMR 설계 심사 결과 ‘조건부 허가’를 받았지만, 경제성 문제때문에 다시 규모를 늘려 77MW 설계 심사를 2022년쯤 받는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SMR도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친원전 진영에선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지만, 원전 확대에 적극적이었던 이명박 정부 때 이미 경제성 문제 등으로 SMR 사업이 좌초했던 사실은 애써 감춘다.

한국 스마트 원전은 1990년대 러시아 핵잠수함 추진 원자로 설계를 구입해 해수담수화용 원전으로 추진됐다. 2007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2008년 사업이 폐기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수출용 원전으로 이를 재추진했다가 경제성 문제로 한국전력이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을 타진했지만 성과없이 끝났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수력원자력이 설계를 변경해 원전 수출을 재추진 중이다. 지난해 12월 9차 원자력진흥위원회(당시 위원장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올해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스마트 원전 표준설계 변경 인가를 획득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연구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수출을 추진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에 오는 8년 동안 4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 연구소장은 “정부의 i-SMR 투자 결정은 20여년 동안 약 5천억을 드린 스마트 원전 기술 개발 경험을 근거로 판단한 것이다. 미래 기술이라 아직 이런 기술이 실제 상용화됐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처럼 원자력의 경제성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상용화 전망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미래 기술의 하나로 언급되는 SMR 연구를 위해서도 현재와 같은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선교 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SMR은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수단이 될지 실증하기 위해서라도 연구개발 필요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70여개 업체가 난립하며 아직 표준모델도 없어 시장성이 있는지 등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지금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우사인 볼트처럼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걸고 있다. 정치인과 언론이 이를 띄우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된 결과다. 과학정책적으로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소형모듈원전은 갑자기 떴나

SMR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변화가 없었다. 달라진 것은 정치사회적 환경이다.

전세계가 ‘2050 탄소중립’을 앞다퉈 선언하며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해 나가자,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 원전 활용 가능성이 부각됐다. 친원전 언론 등은 기술개발 가능성을 보고 SMR에 투자하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큰 손’의 움직임을 근거로 장밋빛 미래를 소개한다. 이에 원자력학계·기업 등이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SMR 개발 필요성을 언급하며 여당 내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이원욱 민주당 의원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위원장인 ‘혁신형 SMR 국회포럼’(한국수력원자력·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주관)이 지난 4월 출범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뜻과는 관계 없는 송 대표의 개인적 생각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한·미 정상회담 때 양국이 원전 수출 협력을 발표한 위 이미 두산중공업 주식이 급등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제조업이 많은 한국은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한국원자력학회도 ‘원전 없이 탄소중립도 없다’며 바람몰이 중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에 추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정부 기존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해외 수출길을 뚫는 것은 우리 원전 산업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해법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임채영 연구소장은 “해외는 차세대 소형 원전 수요가 있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해외에서 우선 기술을 실증해보자는 것이다. 국내는 논란이 있기 때문에 원자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돔 형태 모형의 신고리 3.4호기.울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돔 형태 모형의 신고리 3.4호기.울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탈핵에너지학회 학회장인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입지 선정의 어려움 때문에 국내에서 SMR이 대량 건설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한·미 간 원자력협력에서 보듯 해외에서 SMR을 건설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해외 SMR에서 생산한 수소를 한국으로 수입할 수도 있다. 이대로 가면 전 세계 탄소중립 선언의 수혜를 SMR 등 원전이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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