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내외에서 건설·투자하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10곳의 폐쇄를 요구하며 단식 중인 이은호(32)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이 <한겨레>에 편지를 보내왔다. 수신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17일부터 피포지(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청와대는 30~31일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문 대통령이 방송인 타일러 라쉬와 배우 박진희씨와 함께 기후·환경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영상을 27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와 국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라고 말했다. 또 “지구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에 “분해 가능한 친환경 어구로 바꾸는 등 해양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무를 전문으로 심거나 또는 농사를 지으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선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10곳 백지화’라는 결단을 촉구했다.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지난해 10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게 “행동으로 증명하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서울 정상회의가 폐막하는 31일 채택 예정인 ‘서울선언문’에 해양쓰레기와 관련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일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래는 이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전문이다.
기후변화팀 climate@hani.co.kr
17일부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 최근 제주에서 직접 구입한 감귤모자, 우산으로 햇빛과 비를 피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저는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오늘로 12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32살 청년 이은호입니다. 어제 공개된 청와대 영상 잘 봤습니다. 환경보호에서 “‘나 혼자만의 노력이 무슨 소용 있으랴’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와 국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라고 하셨죠. 지구 대통령이 된다면 해양쓰레기를 줄인다고도 하셨고요. 참 좋은 말씀들입니다. 아름답고 멋집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는 올해 P4G 서울 정상회의의 취지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기후위기의 주범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들을 전국과 해외에 짓는 것을 막기 위해 단식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붕앙 2호기,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신서천, 고성하이 1·2호기, 강릉안인 1·2호기, 삼척 1·2호기 총 10기요. 그걸 가지고 왜 단식까지?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파리협약에서 정한 2℃보다 낮은 1.5℃ 안으로 지키자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강력하게 요구한, 전세계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그 기후위기. 1.5℃라는 임계점을 넘으면 지구가 회복탄력성을 잃고,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한 기후재난이 닥칠지 모른다는 그 기후위기입니다. 왜 P4G 정상회의의 슬로건이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계점을 넘으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원인인 탄소배출, 온실가스 배출의 일등공신이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입니다.
4월에 발표된 유엔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를 접하셨는지요. 지구 온도가 이미 1.2℃ 올랐으며 1.5℃까지 불과 0.3℃ 남았다는 내용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공포스럽다. 이제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올해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참혹한 재난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만 한다”고도 했습니다. 마침 27일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과학원 역시 1.5℃ 상승 시기가 예상보다 10여년 앞당겨진, 2028~34년으로 전망했지요. 이번 P4G 정상회의 슬로건도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행동’입니다. 지구를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P4G 홍보영상에 뜬금없는 북극곰을 등장시켰지요. 홍보문구 말 그대로 ‘북극곰이 왜 여기서 나와?’ 싶었습니다. 다시 산다면 농부가 되고 싶다고 하셨지요. 기후위기로 청와대를 찾아야 하는 이들은 북극곰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기상이변에 땀 흘려 일군 한 해 수확이 사라져버린 농민, 폭염에 안전이 위태로운 노동자, 혹한에 건강을 위협받는 1인 가구, 정부가 미리부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준비 없이 생계를 잃는 석탄발전 노동자, 생존의 가능성 자체를 위협받는 청소년과 22세기를 살아갈 어린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님은 나라 경제도 고민하셔야겠죠. ‘그래도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서 석탄발전소는 못 잃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석탄발전소가 국가경제에 이바지했더라도, 앞으로는 전 국민의 골칫덩이입니다. 삼척 1·2호기의 경우 85% 이용률 가정하에 수익이 난다는 전제로, 자금 조달도 어려워 2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발행으로 위태롭게 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시대에 그만한 이용률이 유지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4월에 기후솔루션이 영국 금융 싱크탱크 씨티아이(CTI), 충남대학교와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석탄발전은 지금의 전력시장 정책이 유지되어도 2030년, 늦어도 2040년에는 경제성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정산조정계수가 최대값인 1이 되더라도 수익을 회수하지 못하는 시점이 곧 옵니다. 하물며 2050년 탄소중립이 선언된 이후의 사회라면 어떨까요.
17일부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 최근 제주에서 직접 구입한 감귤모자, 우산으로 햇빛과 비를 피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님, 멀리 보십시오. 언제까지 산업계와 회계부처의 좁디좁은 시야, 단기적 관점에 휘둘릴 수는 없습니다. 보십시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사회는 기후위기로 인한 감염병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인명피해에 이어 커다란 경제적 손실까지 입힌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거기다가 꼭 필요한 회복과 재건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지원금까지 국고에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써서 석탄화력발전소를 빠르게 폐쇄하지 않는다면, 이렇듯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비용 모두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더 심해져 그린피스 시뮬레이션처럼 영종도와 인천공항이 바닷물에 잠기고, 이 좁은 땅덩이에 짓겠다는 6~7개의 신공항도 물에 잠긴다면… 아니, 거대한 규모의 기후재난으로 북한이 무너지고 난민들이 내려온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언제까지 당장의 조그만 손실이 두려워 훨씬 커다란 사회경제적 피해를 미루고 방치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차기 정부가 가래로 막게 미뤄두지 마시고, 지금 호미로 막고 끝내주십시오. 미래세대에 물려줄 가장 큰 짐은 대기업의 성장동력 약화나, 확장재정으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가 아닌 기후위기입니다.
17일부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 최근 제주에서 직접 구입한 감귤모자, 우산으로 햇빛과 비를 피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님, 이번에 P4G 정상회의에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부르려다 거절당하셨다지요. 그레타 툰베리는 자국 스웨덴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어떤 날은 달성해야 할 기후 목표를 제시하더니 다른 날은 비행장을 확장해서 승객을 세 배로 늘리고 친환경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식이네요. 다들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들 같아요.”(그레타 툰베리 가족이 쓴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중) 어떤 나라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레타 툰베리는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소 건설이 확정됐을 때 인터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고 합니다. “매우 큰 문제다. 기후 문제에 ‘리더’라고 불리는 국가들이 ‘악당’인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기후문제에 앞장선다고 알려져 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은 거의 다 하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10월 <한겨레>와의 화상 인터뷰에서는 “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admire)고 말했다면, 행동으로 증명해주면 좋겠다. 행동이 말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붕앙2 하나만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660만톤이지요. 작년 대대적으로 발표하신 그린뉴딜로 5년간 줄이는 탄소배출량 1229만톤을 겨우 2년이면 넘어섭니다. 국내 신규 석탄발전소는 매년 5100만톤의 탄소를 배출할 것이고요. 이 막대한 배출량을 놔두고 국민 개개인이 일상의 실천으로, 전기플러그 뽑고 텀블러 사용하고 장바구니 들고 다니고 일회용품 줄여서 상쇄해주기를 바란다면 좀 과한 욕심 아닐까요.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아니 우리 자신을 위한 행동을 결단해주십시오.
대통령님, 말씀처럼 개개인의 작은 실천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존엄을 지켜야 하는 일국의 정부와 국회가, 나아가 세계가 그 실천과 함께 갈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주권이 국민 개인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 개개인한테서 나온다고 말하면서, 우리 위정자들은 기후위기 대응 잘하고 있으니 일상의 실천에 힘써 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기후위기를 막는 데 역행하고 있다면,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그렇다면, 이는 국민 주권에 대한 배신입니다. 나아가 국민의 생명, 안전, 존엄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대통령님, 기후위기는 가엾은 북극곰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민생 현안입니다. 12일차를 맞은 단식 농성장에서 한번 더 요청드립니다. 신규 석탄발전소 10기 백지화를 결단해주십시오. 그런다면 미래세대는 대통령님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후위기를 막아낸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5천만 국민들의 대표자로서, 대통령 개인의 큰 실천으로 국민들의 미래를 지켜주십시오. 때는 더 늦기 전에 2021년 지금입니다. 대통령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17일부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 최근 제주에서 직접 구입한 감귤모자, 우산으로 햇빛과 비를 피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