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정부가 발표한 세계 최대·최첨단 ‘케이(K)-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은 세제·금융·인프라·인력 등 전방위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한편,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반도체 산업은 불산·황산·이산화탄소 누출 사고 등 안전 문제가 있어왔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탄소중립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화학물질 규제 완화
먼저 정부는 반도체 생산 설비 신·증설 시 받아야 하는 화학물질 취급 시설 인허가 기간을 절반가량 단축하기로 했다. 화학물질관리법 상 화학물질 취급 시설은 화학사고 예방관리계획서 검토와 시설 설치검사 등을 거쳐야 한다. 기존엔 이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치는 데 통상 75일이 소요됐다. 정부는 예방관리계획서 검토와 설치검사를 병행해 인허가 기간을 30일로 단축할 계획이다.
환경·보건 단체 쪽은 규제 완화 이후 화학물질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한겨레>에 “첨단산업 특징상 현 단계에서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할 순 없으나,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 노동자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게 산업보건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했다. 이어 “화학물질에 대한 심사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큰 문제다. 통상 소요되는 심사 기간을 줄이면 검토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순차적으로 진행하던 인허가를 인력을 더 투입해 병행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검사 내용 자체가 축소될 일은 없다”고 했다.
온실가스 규제 완화
아울러 정부는 온실가스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신·증설 시설에 한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최적가용기법(BAT·배출 오염물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법)을 적용하면 온실가스 배출권 추가할당 혜택을 주기로 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배출권거래제에 따라 국가별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시 기업들에 할당된다. 기업은 할당된 배출량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데, 정부는 거래제 안착을 위해 유상 할당량 비율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는 정부 탈탄소 정책 방향에 맞지 않는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 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은 특혜”라고 했다. 이어 “국제사회에서는 주요 산업들에 대해서도 탄소 감축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앞서가는 산업일수록 선제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수·전력 지원
정부는 이번 케이-반도체 전략에서 용수 확보와 전력 인프라 구축 방안도 제시했다. 먼저 경기 용인과 평택 반도체 단지에 10년치 용수 물량을 미리 확보해 2025년부터 공급하기로 했다. 용인 지역 필요 물량 중 일부는 남한강 여주보에서 끌어오는 것을 고려한다. 또 핵심전략 기술 관련 반도체 제조 시설에 전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전력과 함께 최대 50% 범위 안에서 비용을 공동 분담하기로 했다. 국비와 한전 자금으로 각각 25%씩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반 시설 구축 계획을 두고 정부 정책이 충돌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 특위 부위원장은 “한강의 자연성 회복이 현 정부의 공약이고 자연성 회복의 핵심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 해체다. 여주보 역시 회복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곳을 지칭해 용수 공급에 활용한다고 정하면, 지역 주민들의 보 활용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나아가 정책 충돌처럼 비춰지기 쉽다”고 말했다.
또 전력 인프라 구축 방안에 대해서도 “국가 에너지 전환 기조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지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안재훈 국장은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려면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하지만, 여전히 석탄·원자력 발전은 계속되고 있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어렵게 늘려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업의 자체적인 재생에너지 충당 계획도 없이, 송전망을 깔아주고 그 비용마저 국비와 공기업 자금으로 부담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 애초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최적가용기법(BAT)을 적용한 신·증설 시설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권 유·무상 할당 비율을 조정했다고 적었으나, 유·무상과 별개로 신·증설 시설에 대한 추가 할당량을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돼 해당 내용을 14일 오후 4시28분 수정했습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