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27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 백악관에서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가운데)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22~23일 취임 후 첫 세계기후정상회의를 주재한다. 한국을 포함해 40개국 정상이 초청된 이번 화상회의에서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감축 목표(NDC)와 석탄 금융, 에너지 전환 등 주요 기후변화 의제에 대한 각국 계획이 제시될 전망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국제사회 논의 수준이 탄소중립 목표 설정 단계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배경이다. 기후정상회의 쟁점과 한국 기후변화 대응 현주소를 짚어봤다.
① 한국도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하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 감축’으로 상향해 제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지난달 미국 민주당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가 발의한 청정미래법안에도 이같은 감축 목표가 담겼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각국 정부는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세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해야 하는데, 미국 기존 목표는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이었다.
한국의 2030년 감축 목표는 아직 2015년 설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한 2030년 목표는 ‘2017년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 대비 24.4% 감축’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제출한 목표(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와 절대량은 같다. 이에
유엔기후변화협약은 한국을 비롯해 낮은 수준의 목표를 제출한 국가들에게 감축 계획을 다시 제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해 발표하면 한국 정부도 감축 목표 상향 압박을 받게 된다.
피트 오그던(Pete Ogden) 유엔재단 에너지·기후·환경 담당 부대표는 지난 1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엄청난 기회를 낳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 투자자들, 금융기관들,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한국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세계기후정상회의에서 감축 목표 상향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석탄 금융 문제도 이번 회의 주요 쟁점으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26일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회의 주요 의제에는 ‘공공 및 민간부문 금융을 동원하여 탄소 제로(0) 전환을 추진하고, 취약국들이 기후 영향에 대처하도록 돕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잘 알고 있는 오그던 부대표도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번 회의 때 석탄 금융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선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 축소나 중단계획이 제시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영국·독일 등은 자국 개발은행의 석탄발전 금융지원을 금지했고 다자개발은행을 통한 지원도 중단했다.
한국에선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원칙’을 밝혔고, 일부 금융기관도 탈석탄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투자축소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공적 금융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은 아직 탈석탄 방침을 내놓지 않았고, 민간 금융기관의 탈석탄 선언도 신규 투자 중단에 그쳐, 기존에 진행하던 해외 석탄산업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독일 환경단체 우어게발트 등이 낸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Global Coal Exit List)에 따르면, 한국은 회사채 및 주식 투자별 석탄 투자 규모 순위에서 세계 9위에 올랐다.
다만 우리 정부는 이번 세계기후정상회의 때 해외 석탄산업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박경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해외 석탄 공적금융 지원 중단 등에 대해서 아마도 말씀을 하실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③ 탄소국경세, 개발도상국 지원 논의 가능성도
탄소국경세 도입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탄소국경세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적은 국가로 상품을 수출할 때 적용되는 관세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 2023년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했다.
지난달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변화 특사가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유럽을 찾았을 때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탄소국경세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케리 특사와 회담 이후 “미국 정부와 탄소국경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케리 특사는 “탄소국경세는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며 도입 시기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국내 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지난 1월 작성한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유럽연합, 미국, 중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철강·석유·전자 등 국내 주요 업종에서 해마다 6천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한 자금 지원 문제가 이번 회의에서 다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7일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개발도상국들이 지구온난화에 적응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수용하도록 돕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미국과 중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협력하겠다며 18일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개발도상국이 고탄소 화석에너지에서 녹색·저탄소·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