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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기후변화, 문제는 돈…끝나지 않는 선진국 vs 개도국 책임 논란

등록 2020-12-11 05:00수정 2022-01-12 09:52

기후변화협약 파리협정 채택 5년
‘스턴 보고서’ 뒤 14년…기후변화, 경제 이슈로
역사적 책임·인당 배출량 선진국 책임 크지만
실제 적용하진 않아…향후 논란 커질 가능성
녹색기금 설립에도 선진국 이행 충분치 않아
“선진국들 앞장서 모범 보여야” 지적
지난 2006년 10월30일 영국 런던 왕립학회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스턴 보고서’ 발표 자리에 참석한 니컬러스 스턴 당시 세계은행 수석경제연구원(가운데). 고든 브라운 당시 재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레어 총리(오른쪽)의 모습. EPA
지난 2006년 10월30일 영국 런던 왕립학회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스턴 보고서’ 발표 자리에 참석한 니컬러스 스턴 당시 세계은행 수석경제연구원(가운데). 고든 브라운 당시 재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레어 총리(오른쪽)의 모습. EPA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우리가 하는 행동이 금세기 후반부터 다음 세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그 규모는 양차대전과 20세기 전반의 경제대공황을 합친 것에 버금갈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니컬러스 스턴(당시 세계은행 수석경제연구원)이 2006년 10월 발간한 일명 ‘스턴 보고서’(Stern Review)의 한 대목이다.

이 보고서는 인류가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면 해마다 세계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 비용으로 기후변화 영향을 완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GDP의 20%까지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700쪽가량의 이 보고서는 당시로선 대기과학자나 환경과학자가 아닌 경제학자가 정부(영국) 지원을 받아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수행한 최초의 지구온난화 보고서였다는 점에서 화제였다. 당시 미국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거부하며 그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에 해를 끼친다는 점을 들었던 것과는 다른 시각이었다.

보고서 발간 직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21차 총회(COP12)에 참석한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스턴 보고서를 두고 “환경 이슈로만 생각한 기후변화 문제가 이제 경제적·사회적 위협의 문제임을 제기하는 경제학자들의 관심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보고서 발간 뒤 14년이 지난 지금 기후변화 문제는 그 말대로 경제 분야의 주된 이슈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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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구분했다.

보고서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공평한 노력 배분이 필요하다. 모든 차원의 공평을 만족하는 공식은 없지만, 소득과 역사적 책임, 1인당 배출량에 근거해 계산하면 부유한 나라들이 205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60~80%를 저감할 책임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지금껏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해온 선진국들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올해까지 적용되는 교토의정서 체제가 선진국 등 38개 나라에만 감축 목표를 부여한 이유다.

내년 본격 출발하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은 기후위기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196개 모든 협약 당사국에 감축 의무를 부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선진국-개도국 간 공평 분담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오진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감축 의무량 할당을 1인당 배출량 등의 기준으로 정하자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 그렇게 적용하진 않고 있다.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1~3위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 인도의 입장이 명확히 나뉘기 때문인데, 하지만 (파리협정 체제가 본격 출범하게 되면) 앞으로는 점차 각국의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취지의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G-타워 모습.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이 건물에 사무국을 두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한국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G-타워 모습.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이 건물에 사무국을 두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협약 당사국들이 녹색기후기금(GCF)을 설립한 것도 비슷한 취지다. 역사적 책임에다, 지금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선진국이 돈을 모아 기후변화로 직접 피해를 본 개도국과 가난한 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자는 취지다.

녹색기후기금은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당사국 16차 총회에서 합의돼 2013년 한국 인천 송도에서 사무국이 출범했다. 가장 최근 열린 지난 11월 기금 이사회에선 방글라데시의 에너지 효율화 투자, 브라질 북동부의 생산적 농업시스템 개발, 아프리카 9개국의 에너지 접근성 제고를 위한 금융지원 등의 사업을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승인 사업은 총 159건으로, 모두 72억달러의 자금이 쓰였다.

문제는 기금 공여의무국인 30여개 선진국의 의무 이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기금은 애초 2020년까지 1000억달러 규모로 공여액을 늘려가는 게 목표였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의 자본금이 각각 1937억달러, 1629억달러(2014년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국제금융기구가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실제론 지금까지 초기 재원(2015~19년) 103억달러, 1차 보충 재원(2020~23년) 19억달러로 전부 122억달러가 모였을 뿐이다.

각국이 약정한 공여를 모두 이행해도 2023년 기금은 192억달러 규모로 늘 뿐이다. 녹색기후기금 지원 업무를 맡은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영국(17억달러), 스웨덴(14억달러), 일본(15억달러), 프랑스(12억달러), 독일(11억달러) 등이 10억달러 이상을 냈고,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30억달러를 공약했지만, 실제 10억달러만 공여한 뒤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하며 이 기금 공여 이행을 중단해버렸다.

공여 의무가 없는 한국이 지난해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2억달러를 추가 공여(초기재원 1억달러 공여)하겠다고 공약한 것도 기금사무국 유치국으로서 선진국들의 기금 공여를 독려하자는 차원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이 순조롭게 이뤄지기 위해 선진국들이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14일 스페인 마드리드 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25차 총회(COP25)에서 총회 의장인 카롤리나 슈미트 칠레 환경부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4일 스페인 마드리드 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25차 총회(COP25)에서 총회 의장인 카롤리나 슈미트 칠레 환경부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기후협약 당사국 총회 자리에선 개도국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하고, 선진국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어디까지나 선의로 지원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를 무마하려 든다. 녹색기후기금 역시 1000억달러의 돈으로 개도국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취지였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파리협약의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선 기금 규모가 6000억달러가 돼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기 위해 민간의 돈까지 모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굉장히 미흡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노력 중이라고 할 만하다. 기금의 기능은 앞으로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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