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 가격을 휘발유 수준으로 인상하고, 2035~2040년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전기요금에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발생 비용 등 환경비용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반영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석탄발전 퇴출 시기는 “2045년 또는 그 이전”으로 잡았는데,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해야한다고 촉구해 온 기후·환경단체들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부품회사들의 준비 없이 정부가 탈내연기관 정책의 속도를 낼 경우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은 23일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발표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 가격을 휘발유 수준으로 인상하고, 2035~2040년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석탄발전 퇴출 시기는 ‘2045년 또는 그 이전’으로 하고, 전기요금에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발생 비용 등 환경비용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반영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런 내용의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발표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이날 공개한 제안들은 비전·전략, 수송, 발전, 기후·대기의 4대 분야에서 8개 대표 과제와 21개 일반 과제로 구분한 것들이다. 8개 대표 과제는 △2030년 미세먼지 감축목표 설정 △지속가능발전-녹색성장-기후변화를 아우르는 국가비전 마련 △자동차 연료 가격 조정 △2035~2040년 내연기관차 퇴출 △2045년 이전 탈석탄 △환경비용·연료비 반영한 전기요금 개편 △동북아 국가 협력 강화 △국가통합연구기관 설치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통해 2030년 미세먼지 감축 목표를 세계보건기구 잠정목표 3단계 수준인 15㎍/㎥로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구체적으로는, 2030년 미세먼지 감축 목표를 세계보건기구 잠정목표 3단계 수준인 15㎍/㎥로 강화했다. 지난해 23㎍/㎥에서 강화하는 추세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또 국가비전을 ‘지속가능발전을 향한 탄소중립 녹색경제·사회로의 전환’으로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그린뉴딜’과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에 발맞춰 새로운 녹색 사회로 진입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이를 위해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제정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개정하고 기존 녹색성장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을 통폐합하는 등 관련 정부 조직을 재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통해 미세먼지 발생의 대표적 원인인 경유차 수요와 운행을 줄이기 위한 연료 가격 조정을 요구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이와 함께 미세먼지 발생의 대표적 원인인 경유차 수요와 운행을 줄이기 위한 연료 가격 조정도 요구했다. 수송용 휘발유와 경유 가격 차이를 2018년 기준 100대 88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권고 수준인 100대 100까지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2035~2040년에는 무공해차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을 처음 제안했다. 석탄발전은 2045년 또는 그 이전까지 배출량을 ‘0’으로 감축하되 2040년 이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또 대기오염물질이나 온실가스 배출량 등 환경비용과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환경비용의 반영으로 요금 인상되는 데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환경비용 반영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하고, 소비자를 위한 보호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통해 2045년이나 그 이전에 석탄발전을 퇴출하자고 제안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반기문 위원장)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통해 전기요금에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발생 비용 등 환경비용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미세먼지를 ‘공유’하는 중국·일본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 함께 ‘동북아 미세먼지-기후변화 공동대응 협약’(가칭) 체결을 추진하고, 이를 포함해 기후·대기 연구를 전담할 국가 통합연구기관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기후환경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일반 과제에 포함했다.
환경단체에서는 정책 제안 전반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내연기관차나 석탄발전 퇴출 시점이 다소 늦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2017년에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을 2040년으로 발표한 뒤 지난 17일 다시 2030년으로 수정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경유 가격 인상은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위에서도 권고했는데 기획재정부 등에서 반대하면서 추진되지 못했다. 전기요금 개편도 시민사회나 전문가 그룹이 꾸준히 이야기해왔지만 추진되지 않았는데 이번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제안이 그대로 추진되길 바란다”라며 “다만 석탄발전 퇴출 시점이 2030년이 아닌 2045년 전후인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이는 탈석탄 흐름에 견주면 미흡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린피스도 “석탄발전 종료 시점이 기존 정부안인 2054년보다 앞당겨진 점, 탈내연기관 관련 논의가 시작된 점을 뜻깊게 평가한다”며 “탈석탄, 내연기관 생산 금지 시점을 2030년 이전으로 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등 내연기관차 차종에 유예기간을 주어서는 안 되고 전기차 등 무공해차량만을 대안으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책 중 가장 민감한 주제였던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을 두고 자동차 업계의 해석은 다소 부정적이다. 업계에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량도 내연기관이 포함된 차량이라고 해석하지만, 국가기후환경회의 수송관리과 담당자는 “보통 휘발유·경유·일반하이브리드차량이 내연기관차로 볼 수 있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량은 전기차 충전소 보급이 확대될 경우를 전제로 전기차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도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하면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량을 포함했다”며 그런 해석에 선을 그었다. 다만 무공해차만 생산할 지 내연기관차로도 달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까지 생산할 지는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035년이라는 시점은 현대기아차같은 대기업에서도 빠르다고 느낄 수 있다. 그때에도 신흥국에서는 내연기관차량 소비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량 생산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량이 전체 40%를 차지하는 현재 에너지 구조에서 전기차 생산이 과연 친환경적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등 기존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을 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은 버틴다고 해도 부품업체들 중 도산하는 업체가 늘어날 수 있다. 기존 시장이 줄어드니 전기차로의 전환을 하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 통폐합 등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5월부터 1년 7개월 동안 과제 발굴과 선정을 해왔다. 500여명의 국민정책 참여단과 시민사회·산업계의 토론 등 의견수렴을 거쳐 지난 20일 본회의에서 중장기 정책 제안을 최종 의결했다. 출범 첫해였던 지난해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겨울철에 특히 심해지는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겨울철 관리를 강화하는 ‘계절관리제’를 ‘단기 정책’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중장기 정책 제안이 실제 정부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실제로 이번 제안에는 유류세 조정, 내연기관차와 석탄발전 퇴출 시점, 전기 요금 개편안 등 굵직굵직한 미세먼지·기후변화 대응 과제가 포함됐다.
이날 반기문 위원장은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과감한 체질개선 없이는 탄소경제라는 성장의 덫에 빠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