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에 ‘2050 탄소 제로’를 선언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 제공
“한국이 이 지역(아시아)에서 ‘넷 제로(Net-Zero)’ 목표를 설정하는 세번째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내년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유엔 기후변화협약 26차 당사국총회(COP26) 특사 존 머튼이 지난 26일 일본의 넷-제로 약속을 전하며 올린 트윗글입니다. 넷 제로는 온실가스 배출 양과 흡수·제거되는 양이 같아져 온실가스 농도가 더이상 증가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탄소 중립, 기후 중립도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8년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에서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르지 않으려면 2050년께 넷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존 머튼은 내년 당사국총회(기후회의) 의장을 맡을 알록 샤마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과 함께 이번에 방한했습니다. 내년 기후회의 성공을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등을 촉구하려고 한국에 온 것입니다.
일본 스가 총리는 26일 일본 국회에서 한 첫 소신표명 연설에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등 온실가스 실질 배출을 제로(0)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지난 달 유엔총회에서 2060년 이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지난해 ‘2050년 기후 중립’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2050 탄소 중립’을 공약했습니다. 지난해 유엔에 넷 제로 대신 ‘80% 삭감 목표’를 제출해 비판을 받아온 일본이 여기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을 기대하는 세계의 눈은 이제 한국에 쏠리게 됐습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모든 당사국에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2050년까지의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제출 시한이 올해 말까지입니다. 정부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15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해 엘이디에스(LEDS) 제출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유엔에 제출할 엘이디에스에 ‘2050년 넷 제로’ 목표가 담겨야 한다는 요구가 높습니다. 국회는 이미 지난달 이런 요구를 담은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를 통과시켰습니다. 우원식, 김성환, 양이원영, 이소영 의원 등 ‘국회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와 민주당 ‘미래전환 케이(K)뉴딜위원회’ 참여 의원들은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이들은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온실가스 연배출 세계 7위, 누적배출량 17위인 우리나라는 탄소제로 선언을 주저하고 있다”며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에 ‘2050 탄소 제로’ 목표를 반드시 포함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정부는 엘이디에스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저탄소 비전 포럼을 운영하고 온라인 설문조사, 전문가·산업계·시민사회 합동 토론회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지난 17일에는 국민토론회도 열었습니다. 이렇게 수렴된 사회적 논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한 정부안은 다음 달 중순 공청회를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변화 대응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지구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엘이디에스에 2050년 넷 제로 목표를 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에 이은 일본의 넷 제로 공식화는 이런 환경부 입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50년 넷 제로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넷 제로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치러야 될 비용, 대응을 통해 얻게 될 효과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50년 넷 제로는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를 조기 퇴출시키고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막대한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의 기후중립재단 등 3개 싱크탱크는 최근 ‘기후 중립 독일’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2050년 기후 중립’ 달성을 2차 세계대전 뒤 독일이 이룬 ‘경제 기적’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독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국에 2050년 넷 제로는 더욱 큰 도전일 수 있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목표를 확정하기 위한 산업계 설득에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