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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대용량 원전이 재생에너지 발전 보완해 준다고?

등록 2020-09-13 13:59수정 2022-01-13 17:17

대용량에 출력 조절 힘든 ‘경직성’ 탓
재생에너지 발전과는 ‘궁합’ 안 맞아
갈수록 전력망 안정에 부담으로 작용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인근 앞바다에 들어선 해상 풍력발전기. <연합뉴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인근 앞바다에 들어선 해상 풍력발전기. <연합뉴스>

“원자력발전소를 더 만들자고?” “그냥 원전 짓자고 해라”

얼마 전 <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에 올린 ‘올 초 전력망 과부하 위기 올 뻔한 순간 있었다’ 제목의 기사에 이런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에서 전하려 한 것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려면 발전 설비 확충뿐 아니라 전력망의 안정성 확보까지 고려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당연히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는데, 어떤 분들에게는 반대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 기사를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은 분들은 재생에너지가 변동성이 높은 불안정한 에너지인데 반해 원자력은 안정적인 에너지라는 점에 주목한 듯합니다. 두 에너지의 이런 특성은 원자력계에서 특히 강조해온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원전 옹호론으로 연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자력계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안정적 에너지원인 원전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두 차례 지나간 태풍 때 취약성을 드러내긴 했지만, 원전은 안전 문제만 접어 둔다면 매우 안정적인 발전원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원전이 안정적이어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변하는 데 따른 전력망의 불안정을 잡아줄 수 있으려면 잡아주는 쪽도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동과 정지, 출력 조절에 긴 시간이 걸려 대표적인 ‘경직성 전원’으로 꼽히는 원전에는 힘든 일입니다.

국내 전력망에서 원전이 맡아 온 역할은 재생에너지와는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대용량 전력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원전은 초기에 지어진 몇 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1000MW 이상의 출력을 냅니다. 비교적 최근 운전에 들어간 신고리 3·4호기의 출력은 평균적인 석탄화력발전소의 3배인 1500MW에 이릅니다. 바로 이 거대한 용량과 경직성 때문에 원전은 변동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어날수록 전력망 운영에 부담될 것이라는 게 전력계통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지난 2월23일 전국의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줄었을 때 전력망의 과부하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던 것은 그런 미래를 앞당겨 보여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날 흐린 지역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던 하늘이 아침부터 맑게 개 태양광 발전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태양광 설비용량의 약 76%(2019년 기준)에 이르는 미계량 전원의 발전량이 급증해 수요를 충당하면서 전력망에 나타난 순 수요(넷 로드)는 예측치보다 최대 2000MW를 밑돌았습니다.

중앙전력관제센터는 긴급 대응에 나서 가동 중인 발전기들을 정지시키거나 출력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전력 수급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요 감소에 대응해 추가로 더 줄일 수 있는 공급량(하향예비력)은 한때 100MW밖에 남지 않은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100MW는 설비용량 15GW로 추정되는 태양광 발전시설의 발전 효율이 1%만 증가해도 바로 소진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관제센터 근무자들은 수요가 더 줄어들까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각기 평균 1000MW가량의 출력을 내며 돌아가고 있던 19개 원전에 대해서는 아무 조처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날 원전이 1기라도 덜 가동되고, 출력 조절이 쉬운 가스복합과 같은 유연성 발전원이 더 가동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이 증가하면서 나머지 발전기들이 채워야 할 전력망의 순수요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전의 대용량이 장점이 아니라 약점이 됩니다. 출력이 너무 큰 탓에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전력망에 큰 충격을 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2~3일 국내 원전에서 최초로 전력계통 안전 유지 목적의 출력 조절이 이뤄진 것은 대용량 원전이 전력계통의 안정에 부담되는 상황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코로나19로 전력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석가탄신일부터 6일간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 기간 최저 전력수요는 4000만kW대 초반까지 내려갔습니다. 수요 감소에 대응해 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3·4호기를 상대로 2일 오후 7시부터 출력 조절에 들어가 8시간 만에 각각 20%씩 출력을 낮췄습니다.

출력이 각각 1500MW로 국내 원전 중 최대인 두 원전 가운데 하나라도 고장 나 멈춰 서면 전력 품질기준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산업부의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에 따라 전력거래소는 최대 용량의 발전기 1기 고장 때에도 계통주파수가 최저 59.7Hz 이상 유지되게 전력망을 운영해야 합니다. 두 원전 중 어느 하나가 멈춰 설 경우 전력망에 가해질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미리 다른 원전 수준으로 출력을 줄여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선제적인 원전 출력 조절은 앞으로 점차 잦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대용량 원전의 경직성이 갈수록 전력망에 부담된다는 것은 원자력계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기존 원전의 10분의 1 규모의 소형 원전은 물론 수 메가와트급 초소형 원자로를 곳곳에 지어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까지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1000MW가 넘는 대형 원전 대신 100MW 수준의 원전을 많이 만들어 출력 조절이 쉽도록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은 기술적 타당성도 문제지만,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나하나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시설을 더 많이 전국 곳곳에 짓자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전력계통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에너지 문제를 들여다보는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과정에서 원전은 자연스레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탈원전을 하려고 무리하게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린다는 일부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변동성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의 이런 관계를 전력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계통 안전 측면에서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 간단히 정리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은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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