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3일간의 한파로 2조3천억원의 경제 피해가 발생했고, 2018년엔 31.4일의 폭염으로 48명이 숨졌다. 지난해엔 한반도에 역대 최다인 7개 태풍이 상륙해 18명이 숨지고 2천억원의 재산 손실이 있었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28일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인명·재산 피해를 일으키는 이상 기상·기후 현상들이 미래에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한낮 뜨겁게 달궈진 서울 여의대로(왼쪽)와 2018 년 8월 강원 춘천시 인근 북한강에서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승용차가 고립된 모습(오른쪽).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춘천/연합뉴스
28일 환경부와 기상청이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이 전망하는 미래는 잿빛이다. 폭염과 가뭄, 폭우와 폭설 등 지구적 변화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아이와 노인, 만성질환자, 장애인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부터 위기에 놓인다. 모기나 진드기가 옮기는 열대감염병은 늘고, 벼나 감자, 옥수수 등 식량 생산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취약계층부터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폭염 등 극한기상에 민감한 취약집단은 65살 이상 노인, 유아·어린이, 심뇌혈관 질환이나 호흡기계 질환 등 만성질환자, 장애인, 노숙인, 직업상 노출이 많은 사람들이다. 현재 수준대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가정의 시나리오인 대표농도경로(RCP) 8.5에서 2040년대 한국 내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곳은 대구였고, 그중 평리2동과 서구에서 이런 이들이 위험에 처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온과 습도가 오르면 진드기 개체수가 폭증하는데, 이들이 매개하는 쓰쓰가무시증이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은 농촌 지역 노인들이 가장 위험도가 높았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이런 위협에 대항할 주거 환경을 갖추기 어렵고, 기술 활용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할수록 열대지역의 감염병이 한국에서 풍토병이 될 수 있다. 1월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는 2050년에 뎅기열·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 성충의 동면이 가능해진다. 현재는 흰줄숲모기의 알은 동면할 수 있지만 성충은 겨울에 얼어죽어 버린다. 기온이 올라 성충의 동면이 가능해지면 열대지방의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진다. 이 경우 부산의 동래·연제·부산진·수영·해운대, 울산 서쪽 지역, 군산, 무안 남쪽, 제주 남쪽 지역이 뎅기열 위험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재해는 도로, 항만 등 국가기반시설에 피해를 유발한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안지역 침수 위험도 올라간다. 국토연구원의 연구(2012)에서 홍수는 서울·강원·경남이, 폭설은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충북·전북·경남이 취약할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 상승은 남해안(전남 진도·신안군 등)과 서해안(충남 태안군 등) 일대 지자체가 취약지로 꼽혔다. 기상 재해로 인한 지역별 사망자는 대도시보다 중소도시나 농어촌의 사망률이 높았다. 특히 중소도시와 농어촌, 해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대도시 내륙 사람보다 11배 이상 기상 재해에 취약했다.
극한 기후와 대기오염은 산업계의 변화도 요구한다. 등산, 자전거 타기 등 야외 레저활동이 줄면 관련 산업이 위축된다. 식음료·가전·패션 업종도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난방 사용이 줄고 냉방에 쓰는 에너지가 늘면 에너지 업계 대응도 필요하다. 식량 생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21세기 말 한국의 벼 생산성은 4분의 1 이상 준다. 사과 농사는 남한 전체에서 불가능하게 된다. 감자의 경우 2060~2090년대 여름감자는 30% 이상, 가을감자는 10% 수확이 준다. 수온 상승이 지속되면 양식 대상인 어류·해조류의 종류와 해역도 변한다. 참가리비는 1980년대 이전엔 포항 연안이 남방 한계였지만 2000년대 후반엔 강원 북부 해역으로 이동했다. 조만간 남한에선 양식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는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후 슬레이트 주택처럼 안전과 위생이 확보되지 않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폭설 등에 대비해 자연재해 위험지역을 정비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안전하게 주택을 개보수하는 ‘그린 리모델링’도 대대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이명주 명지대 교수(건축학)는 “그린 리모델링은 취약계층이 기후 위기 상황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극지대 고산식물, 북극곰 등 취약한 생물종부터 공격한다. 과거 지구 역사에서 벌어진 ‘다섯번째 대멸종’ 때 먹이사슬 가장 꼭대기에 있던 공룡이 사라졌듯, 여섯번째 멸종이 진행되면 극지방 생물에 이어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을 겨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선 세대의 이기심 때문에 미래 지구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청소년·청년들은 분노하고 있다. 지금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멈추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는 ‘찜통 계곡’에 빠지는데도, 인류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 한 세기 이상 꾸준히 진행되어온 ‘변화’가 되돌릴 수 없는 ‘위기’로 치달아가고 있다는 판단에, 과학자·환경단체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화석연료로 지탱해온 ‘성장’ 담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미래인간과학스쿨 특임교수는 “아직은 기후위기가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2030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세계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면 공급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는 파국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량생산·소비·폐기하며 에너지를 과소비해오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경제가 모든 것의 우선순위였다면 이제 그 패러다임이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