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 관련 공론조사를 위해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지난 주말 연 종합토론회가 발표자와 토론자도 공개되지 않은 채 ‘깜깜이’로 진행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박근혜 정부 때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재검토하기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한 공론조사 기구다. 재검토위는 전 국민을 대표하는 시민참여단 501명의 숙의 과정을 거쳐 8~9월께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칙 등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와 같은 까다롭고 논쟁적인 주제를 대상으로 한 공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원칙은 ‘숙의성’이다. 참여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치우침 없이 제공 받아 심사 숙고한 뒤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론화 원칙에 비춰 보면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간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재검토위의 종합토론회는 공론화 과정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다.
시민참여단의 숙의에 도움을 줄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평소 어떤 의견을 피력해왔는지는 공론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재검토위는 토론회의 발표자와 토론자 등을 사전에 공지해 토론회에서 균형 잡힌 정보가 제공될 수 있을 지 검증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 절차는 무시됐다.
재검토위는 비공개로 진행한 이유에 대해 보도자료에서 “개인정보 보호 및 숙의 과정에 부적절한 영향 배제,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다만 재검토위 이윤석 대변인도 공론화 원칙에 맞는 것이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공론조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도 이 과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재검토위는 토론회 영상 자료를 이번 주중 위원회 누리집에 공개할 예정이다.
재검토위원회가 진행하는 공론화 작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 다양한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못했다는 탈핵시민사회계와 원전 주변 주민 등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구성된 재검토위원회에 반원전 진영의 참여가 배제되고, 산업부가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앞세우면서 탈핵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 지속돼 왔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대통령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공약도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지난 달에는 기존 재검토위 해체를 촉구하며 정정화 전임 재검토위 위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당시 정 전임 위원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이해 관계자와의 소통과 사회적 합의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난제인데도, 산업부가 포화가 임박한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확충에만 급급하다는 탈핵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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