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도 미세먼지가 지속되면 민간에도 차량 2부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정부가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조치를 하는 게 정부의 책무”라며 행정부에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민간 차량 2부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한다는 등 반론과 문제제기가 많아 정부 입장에서 무 자르듯 ‘한다, 만다’ 판단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라면서도 “1급 발암물질인 고농도 미세먼지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지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비록 기본권을 침해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그러면서 “(민간 차량 2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어떤 방향이 나올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미세먼지특별법)에 의해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때 공공부문에 한해 차량 2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조 장관의 이날 발언은 정부가 민간에도 차량 2부제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미세먼지특별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기본권 침해 논란 등을) 다 따져서 하기엔 선택폭이 좁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면서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도움이 된다면 여러가지 효과가 있는 정책과 방법을 찾아 시행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집무실에서 조 장관에게 50분간 긴급보고를 받은 뒤 “국민들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는 정부가 장기적인 대응책에만 머물지 말고 즉각적으로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며 신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 때문에 유치원과 학교에서 실내활동이 늘어난 점을 고려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공기정화기를 설치하고 있으나 너무 용량이 적어서 별 소용이 없는 곳이 많다”며 “대용량의 공기 정화기를 빠르게 설치할 수 있도록 공기 정화기 보급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각 부처 차관들이 참석한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 부처 장차관을 중심으로 솔선수범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지시했다. 또 지난 1월 실시해 실패로 결론 난 인공강우를 통한 미세먼지 저감 실험을 다시 준비하기로 했다. 도심지 주요 도로변 살수차 운행 확대, 지하철·역사 등 다중이용시설 주변에 출퇴근 시간을 앞뒤로 대대적인 물청소를 하기로 했다.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하는 화력발전소 상한제약(가동조정)의 대상과 기간도 추가적으로 확대하는 게 가능한지도 검토한다.
긴급 점검회의에 앞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자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든, 이런 사태에 정부나 지자체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행정부와 지자체가 미세먼지 대책에 발 벗고 나설 것을 주문했다.
6일에도 전국 17개 지자체 가운데 부산과 울산을 뺀 나머지 15개 시도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됐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세종·충남·충북은 사상 처음으로 내리 엿새째에 해당하고 대전은 닷새째이다. 강원 영동 지역에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숨 막히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의 고농도 미세먼지는 기압차가 작은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에서 계속 버티면서 대기 순환이 정체돼 나타나는 현상인데, 앞으로도 많은 비나 바람을 예상하기 어려운 탓이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대륙 고기압의 확장으로 6일 밤부터 일부 지역에 비와 눈이 오고 7일 아침부턴 북서풍이 강하게 불면서 대기 정체가 일시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8일부터 다시 이동성 고기압으로 바뀌면서 대기가 정체되고 이달 중순까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10일께 한반도 남쪽으로 지나가는 저기압의 북상 정도에 따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종휘 김보협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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