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
애벌레는 성체가 되기 전의 미숙한 생물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멧누에나방이 가짜 눈이 달린 머리를 곧추세우면 영락없이 독사 같다.(위 왼쪽) 으름밤나방 애벌레는 새의 배설물을 흉내 내 천적을 피한다.(위 오른쪽)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올 한해에만 1천종 가까운 애벌레를 기르면서 불모지인 애벌레 생활사와 분류 연구에 기여했다. 이 연구소 애벌레 사육 및 분류 시설(아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한해 동안 1천종 가까이 애벌레를 기르면서 “미치지 않으면 이렇게 못 키운다”고 말하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국내에 소개 안 된 나방 애벌레 153종을 모아 최근 펴낸 도감 <캐터필러Ⅰ>.
유일하게 채집하고 키우고 연구 이강운 소장이 사비 털어 20년 운영
신종·미기록종 발견 수두룩 올해 1천종 가까이 길러
최근 국내 미소개 153종 도감 펴내 변신 전의 미성숙한 생물일 뿐?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방이 1주일 산다면 애벌레 삶은 한달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독자적 행동 영양가 풍부해 생태계 포식자 주 표적
숨고 속이고 겁주는 등 ‘생존의 달인’ 이강운 소장(농학박사)이 올 한해 채집해 사육한 애벌레를 과별로 기록한 상황판을 가리켰다. 3월26일부터 11월3일까지 986종의 애벌레를 길렀다. “미치지 않으면 이렇게 못 키운다”고 그는 말한다. “1천종 가까운 애벌레 가운데 무사히 성체까지 자란 것은 100종도 안 됩니다. 폐사율이 높습니다. 곰팡이에, 천적에, 먹이 식물을 몰라 굶겨 죽이기도 하고….” 그가 올해 이곳에서 기른 명나방과 애벌레는 168종인데 국내에 기록된 명나방과 나방은 130종이다. 수십종이 국내 미기록종이란 얘기다. 이 소장은 지난 20년 동안 나비목 애벌레를 기르면서 신종 1종과 미기록종 8종 등 9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를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 사비를 털어 해왔다. 취미로 나비 애벌레 한두 종 기르기라면 몰라도 이처럼 대규모로 애벌레를 사육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알이나 애벌레 또는 나방을 채집해야 하고, 애벌레마다 대개 독특한 먹이 식물을 싱싱한 상태로 공급해야 한다. 연구소 주변에만 860종의 식물이 있는 산속에서나 다양한 먹이 조달이 가능하지 도시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영하 35도에서 살아남는 비밀 애벌레 사육은 이 소장의 부인 이정옥씨를 비롯한 연구원 7명이 맡아 한다. 이씨는 “애벌레 기르기가 꼭 아기 돌보듯 손이 많이 간다”고 말한다. 사육 상자에는 신선한 먹이 식물을 넣고 바닥에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까는데, 몇 시간마다 배설물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기 십상이다. 이씨는 “채집할 때는 멀쩡해 보이던 애벌레 몸을 뚫고 기생한 맵시벌 새끼가 나오기도 한다”며 “기생벌이 침입하면 애벌레마다 몸속에 알을 낳기 때문에 사육장에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사육장 밖에서 여전히 활동하는 애벌레가 있었다. 한지성 나비로 유명한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요즘 알에서 깨어나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연구원들이 “오늘 새로 29마리가 깨어났다”고 말한다. 이 애벌레에는 동결을 막는 단백질이 있어 영하 35도에서도 생존한다. 갓 태어난 1~2㎜ 길이의 검은 애벌레가 말라버린 기린초에서 돋아나는 미세한 새싹을 갉아먹는 모습이 앙증맞다. 이씨는 멸종위기종인 이 나비의 대량 증식에 성공했고 내한성을 규명해 국제학술지에 투고 중이다. 영양가 많고 버릴 것 없는 애벌레는 생태계 포식동물의 주식이다. 그런 만큼 생존을 위해 숨고, 속이고, 겁주는 다양한 전략을 진화시켰다. 이강운 소장의 말대로 “애벌레는 생존의 달인”이다. 가시가지나방은 몸을 구부리면 완벽한 새똥 모양이다가 길쭉하게 펴면 나뭇가지로 변신한다. 멧누에나방은 독사가 노려보는 것 같은 가짜 눈 무늬를 지녔다. 이보다 한 수 위 애벌레도 많다. 암청색줄무늬밤나방은 온몸을 흔들어 상대를 위협하고 천적의 공격 초점을 흩트린다. 이 소장은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쐐기풀이나 왜모시풀에 매달려 몸을 흔들고 소리를 내면 사람도 깜짝 놀란다”고 말한다. 대왕박각시나방은 몸이 큰데다 공격을 받으면 옆구리의 숨구멍에서 바람을 빼면서 쉭쉭 소리를 내는데 화들짝 놀랄 정도로 소리가 크다. 산왕물결나방은 섬모가 아주 긴데다 지지직 하는 전자음을 내고, 털북숭이인 흑백알락쌍꼬리나방은 기름 성분으로 온몸을 미끌미끌하게 만들어 포식자의 입맛을 달아나게 한다. 해 끼치는 나방은 4천종 중 극소수 애벌레가 징그럽다는 말에도 연구자들은 억울해한다. 이 연구소 이재록 연구원은 “애벌레에는 예쁘고 귀여운 것들도 많다”며 “으름덩굴을 먹는 으름밤나방 애벌레는 짙은 벨벳에 은하수를 수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추나 배추 등에 해를 끼치는 나방도 있지만 그런 나방은 전체 4천여종 가운데 극소수라고 이 소장은 강조한다. 오히려 이들 애벌레가 다른 동물을 먹여 살리는 생태적 기능이 더 클 것이다. “도시농업이 점점 중요해지는데 농약을 치지 않고 피해를 줄이려면 곤충의 생활사를 알아야 천적을 이용하거나 특정 시기에 소량의 농약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이 소장은 말한다. 그는 또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돼 생물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곤충은 신물질을 개발하는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처럼 애벌레는 미래 인류의 소중한 식량자원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나비목에는 3784종이 기록돼 있고 이 가운데 나방은 93%인 3505종이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블로그 http://m.blog.naver.com/holoce58 전자우편 holoce@hecri.re.kr 전화 (033)345 2254/010-3993-2254 횡성/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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