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예보’ 발표를 앞두고 오후 4시30분께 기상청 예보관들이 상황실에 모여 국내외 관측 자료와 위성 및 기상레이더 영상, 슈퍼컴퓨터의 수치예보 모델 결과 등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상청이 올해 기상서비스에 대한 국민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만족도(77%→76%), 신뢰도(75.6%→74.7%), 유용도(82.1%→81.0%)에서 모두 지난해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의 강수예보 정확도는 92%인 데 비해 국민이 체감하는 정확도는 62.3%에 불과했다. 전문가의 체감정확도도 67.4%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감사원은 지난 7월 기상청 예보 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미국 기상청 예보관의 강수량 적중률은 수치예보보다 높은데 우리나라 기상청 최종 예보의 강수량 정확도는 수치예보보다 연평균 0.8%포인트 낮아 예보관의 예보 능력이 미흡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진단했다. 기상청도 지난해 여름철의 오보 파동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책에서 예보관 능력 향상이 중요하다고 보고 예보관 자격제 도입, 기상기후인재개발원 설립 등 여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예보관의 교육만으로 예보 정확도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상청 분석으로 예보 역량에 영향을 주는 관측자료 수준, 수치예보 모델 성능, 예보관 예보능력 등 3개 요소의 기여도가 10년 전에는 각각 32%, 40%, 28%였으나 현재는 각각 20%, 50%, 30%로 달라졌다. 기상청 내부 평가여서, 예보관들 스스로 예보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똑똑한’ 수치예보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수치예보는 온도·습도·기압 등 현재 대기 상태의 관측값을 넣어 컴퓨터 프로그램(모델)으로 계산해 미래 기상현상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수치예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루이스 프라이 리처드슨이 1922년 수작업으로 수치를 계산해 일기예보를 만든 데서 시작됐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안다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바람·온도·습도 등 대기현상을 덧셈과 뺄셈으로 계산하면 미래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리처드슨의 논리였다. 컴퓨터가 없던 당시에는 6시간 동안의 날씨를 예보하기 위해 6만4천명이 동원돼 덧셈과 뺄셈을 해야 했다. 홍성유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은 “대기과학은 영어(atmospheric sciences)에서 복수로 표현한다. 일기현상의 이해와 예측, 지구 환경의 핵심 문제들을 연구하는 융합학문으로, 수학·물리·생물·화학을 포괄하고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학문적으로 수치예보는 수학과 기상학의 만남이다. 날씨를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공기의 무게는 1㎥당 1㎏이나 된다. 국어사전 1개와 맞먹는다. 수치예보는 이런 공기가 움직이는 물리법칙을 계산해 향후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날씨를 알려면 우선 현재의 관측값을 알아야 한다. 한국 기상청만 해도 지상과 해양, 고층상공, 우주에 모두 22종 1369개의 관측장비가 하루 2천만개 이상의 각종 관측값을 실시간으로 쏟아낸다. 수많은 관측값을 일정 간격의 격자를 만들어 수식에 대입하는 자료동화 과정이 수치예보 계산의 첫 단추다. 지구모델의 격자 수만 10억개, 변수만 20여개다. 세계에서 각종 데이터를 수신받고 자료동화를 하는 데만 2~3시간이 걸린다. 이때부터 슈퍼컴퓨터가 1시간 남짓 수치예보 모델을 돌려 일기도 등 분석용 자료를 만들어낸다. 예보관들은 이를 토대로 분석해 일기예보를 작성하고 누리집과 언론 등에 배포한다. 이런 작업이 하루에 4번씩 반복된다.
1999년 슈퍼컴퓨터 1호가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1초당 2240억번 계산할 수 있었다. 수치예보보다는 예보관의 ‘감’이 중요하던 시절이다. 현재 운용 중인 슈퍼컴퓨터 4호기는 1초당 5800조번을 계산한다. 그만큼 예보 생산에서 수치예보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기상청 예보관들은 특히 동네예보(3시간~3일)처럼 예보생산 주기가 짧을수록 수치모델 자료에 많이 의존(50~60%)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이 수치예보를 도입한 지는 20년이 됐다. 처음에는 일본 기상청 모델을 쓰다 2010년부터는 영국 기상청 모델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영국 모델은 예측 강수량을 실제 강수량보다 과다하게 산출하는 경향이 있는 등 기상조건이 다른 외국의 수치예보 모델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를 보여왔다. 더욱이 한해 2억3천만원의 사용료를 내면서도 한국 기상조건에 알맞도록 프로그램을 고쳐 쓰려면 일일이 협의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상청이 2011년부터 10년에 걸쳐 946억원을 들여 수치예보 모델의 국산화에 나선 배경이다.
현재 세계에서 수치예보 모델을 기상예보에 활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많지만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운영하는 국가는 유럽연합, 영국,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중국 등뿐이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수치예보 모델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가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영국 모델은 성능 면에서는 두번째다. 홍성유 단장은 “지난 4월 업그레이드한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한수예)을 영국 모델과 비교해보면 95% 정도의 성능이 나온다. 8월 한반도 강수 관련 지수를 보니 영국 모델에 견줘 손색이 없었다. 올해 말께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개선하면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는 예보관들이 현업에서 한국형 모델과 영국 모델을 병행해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2년 동안 성능 시험을 한 뒤 2020년 1월부터는 한국형 모델만으로 기상예보를 한다.
하지만 한국형 모델이 본격 가동되더라도 당장 동네예보 날씨가 잘 맞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개발하는 건 전지구 모델이기 때문이다. 동네예보나 중기예보에 적용하려면 격자가 훨씬 촘촘한 지역 모델과 국지 모델을 추가로 개발해야 한다. 이들 모델을 개발하는 데는 4~5년의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기상학계에서는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량하기 위해서는 대기과학연구원 등 별도의 연구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