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4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 구간 4~5번 지주 사이에서 산양이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문화재청의 ‘설악산-금강산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검토 및 추진방향’ 용역보고서는 설악산이 백두대간에 서식하는 산양 개체군 39.9~60.3%가 사는 핵심 서식지라면서 과도한 관광개발 압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토요판] 생명
설악산 케이블카 불허의 기록
설악산 케이블카 불허의 기록
▶ 1982년 이후 대통령이 여섯번 바뀌었지만 ‘설악산에 케이블카는 안 된다’는 정부 입장이 바뀐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 케이블카 설치로 급선회했고,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 승인을 거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진행 중이다. 마지막 관문은 문화재위원회다.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 현상 변경을 불허하면, 케이블카는 법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 34년 전인 1982년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소신껏 불허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을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이 발굴했다.
1982년 문화재위원회가 자연 훼손을 우려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불허한 과정이 국가기록원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강원도는 당시 불허 결정을 통보받은 구간과 거의 비슷한 오색~끝청봉 구간의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문화재 현상 변경 신청을 이르면 이달 안에 문화재위원회에 낼 예정이다. 문화재 현상 변경 심의는 케이블카 설치 여부를 확정하는 최종적인 법적 관문이어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 통보가 내려지면 케이블카는 곧장 착공에 들어간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는 정부 입장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다.
1982년 문화재위의 ‘불허’
설악산 오색케이블카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는 이유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이기도 하지만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자연경관과 동식물상이 우수한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보호된다. 1965년 4월 전남 홍도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그해 11월 설악산이 두 번째로 지정됐다. 천연보호구역을 지정한 당시 정부 문서를 보면 자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8·15 해방 이후 급격한 인구의 증가와 자연자원 보호에 대한 정책의 미온으로 인하여 삼림의 남벌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어떠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자연계에 대한 멸망의 위기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연상의 피해가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이 설악산과 그 외 수개 지역에 불과할 것이니, 이 지역만이라도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그 뒤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제217호), 까막딱따구리(제242호) 등도 차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은 자연유산이 가장 풍부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설악산에는 1970년 외설악~권금성 구간에 케이블카가 놓인 뒤, 1980년대 들어 다시 ‘제2케이블카 설치론’이 솔솔 피어올랐다. 당시는 국립공원의 성격이 지금처럼 ‘보전’보다는 ‘관광’에 초점이 맞추어진 시대였다. 이에 따라 문화재위원회가 자연유산의 훼손을 막는 규제기관 구실을 했다.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이 19일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내 공개한 당시 회의록과 출장보고서 등을 보면, 문화재위원회는 시종일관 강원도와 건설부가 설치를 요청한 설악산 제2케이블카를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부와 강원도가 케이블카를 건설하기 위해 문화재 현상 변경을 요청한 건 1982년 8월5일이었다. △오색~중청봉 △장사동~울산암 △용대리~백담사 등 세 구간 중 하나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것이었다. 2주일 뒤인 18일 문화재위원회는 ‘불가’ 통보를 내리지만, 건설부와 강원도는 그해 12월3일 다시 용대리~백담사 구간을 제외한 두 구간에 대한 문화재 현상 변경 신청을 한다. 30여년이 흐른 지금과 비슷한 논리였다. △기존 등반로만으로 수용이 포화 상태여서 순환관광이 필요하고 △자연 훼손, 오물 폐기를 막기 위해서는 케이블카가 필요하다는 것.
문화재위원회는 이튿날 심의를 벌인 뒤 16~17일 이숭녕 당시 문화재위원장 등 3명이 설악산 현장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케이블카 설치에 부정적인 위원들의 입장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이튿날 문화재위원회는 최종적으로 케이블카 설치 불가 통보를 내린다. “오색~중청봉 간 케이블카는 내설악의 핵심지역에 설치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이 발굴한 1982년 문서
“내설악 핵심지역이고
자연경관 크게 훼손될 것”
문화재위원들, 두 차례 소신껏 반대 같은 구간 ‘오색케이블카’ 심의
산양 251마리 이르게 한 전환점 된
34년 전의 현명한 결정을
지금의 위원들이 깨뜨릴 건가 때려잡은 산양이 사라질까봐 이렇게 된 데는 산양의 공이 컸다. 1960년대 후반 설악산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면서 산양이 눈 속에 갇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리가 짧은 신체 특성상 폭설은 이 동물의 생존에 치명적이다. 먹을거리가 없어 눈이 깊게 쌓인 골짜기나 안부로 내려온 산양은 떼로 고립되었다. 주민들은 산으로 몰려가 몽둥이를 들고 산양을 때려잡았다. 이른 봄 인제와 양양의 장날이면 약탕용으로 산양 고기가 흔했다는 게 주변 주민들의 말이다. 1970년대 설악산은 자연보호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산양은 인간의 욕심에 사라진 동물로 조명됐다. 산양이 숨을 쉴 수 있어야 설악산도 살아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971년 신문에서는 “남획 결과 지금은 설악산 전 계곡을 통해 1~2마리 정도밖에 발견되지 않는”(<동아일보> 3월26일) 탄식을 볼 수 있고, 산양이 버섯 채취꾼에게 목격되는 일이 뉴스(˝ 1973년 11월17일)가 될 정도였다. 멸종의 벼랑 밑으로 산양은 아스라이 떨어진 듯했다. 그러던 1981년 3월27일 “29일간의 끈질긴 잠복 추적 끝에” “귀때귀골 능선 암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양 한 마리”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다.(˝ 1981년 3월31일) 당시는 강원도와 건설부가 설악산에 제2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설치 계획을 발표하자, 한국자원보전협회 등 자연보호 단체가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대립이 격화되던 시점이었다. 유력 일간지 1면을 장식한 “셔터 소리에 놀란” 산양의 고즈넉한 눈은 그 뒤 진행된 케이블카를 두고 벌어진 국가적 논쟁과 문화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설악산 보전의 강력한 변호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설악산 산양은 정부와 환경단체의 보전 노력으로 251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국립공원관리공단 2015년 7월 자료) 그러나 설악산 산양의 운명에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그간 설악산 제2케이블카 설치에 부정적이었던 정부 입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급변했고, 지난해 8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강원도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정부의 설악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시도도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1995년 9월 정부는 설악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고, 이듬해 4월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현장실사가 이뤄졌다. 당시 이 단체 조사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설악산은 세계자연유산 기준의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않는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다름 아닌 케이블카 설치 같은 개발 압력이었다. 평가보고서는 케이블카, 모노레일, 신규 호텔 같은 향후 관광개발 제안과 관광객 연간 약 400만명의 영향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국립공원 당국이 대응 노력을 하고 있으나 위 위협 전부가 현장실사 기간 확인되었으며 향후 더 많은 보전 관리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런 평가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철회했다. 지난해 문화재청은 설악산과 금강산을 묶어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6300만원을 들여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되면 1995년의 사례처럼 세계유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위원회의 설악산 문화재 현상 변경 심의는 매달 한 번씩 개최된다. 문화재청은 4월까지 설악산 오색지구에서 산양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7일 “아직 강원도에서 현상 변경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현장조사 자료 등을 근거로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철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 행동실장은 “애초 환경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한 공언과 달리 조사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소신껏 케이블카 불허 결정을 내린 이는 이숭녕 문화재위원장과 이창복 서울대 교수, 원병오 경희대 교수 등 6명의 문화재위원이었다. 그때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면 설악산은 251마리가 사는 ‘산양의 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34년이 흘렀다. 문화재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황인철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 행동실장(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이 지난 15일 문화재청 앞에서 문화재위원회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엄정한 심의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내설악 핵심지역이고
자연경관 크게 훼손될 것”
문화재위원들, 두 차례 소신껏 반대 같은 구간 ‘오색케이블카’ 심의
산양 251마리 이르게 한 전환점 된
34년 전의 현명한 결정을
지금의 위원들이 깨뜨릴 건가 때려잡은 산양이 사라질까봐 이렇게 된 데는 산양의 공이 컸다. 1960년대 후반 설악산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면서 산양이 눈 속에 갇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리가 짧은 신체 특성상 폭설은 이 동물의 생존에 치명적이다. 먹을거리가 없어 눈이 깊게 쌓인 골짜기나 안부로 내려온 산양은 떼로 고립되었다. 주민들은 산으로 몰려가 몽둥이를 들고 산양을 때려잡았다. 이른 봄 인제와 양양의 장날이면 약탕용으로 산양 고기가 흔했다는 게 주변 주민들의 말이다. 1970년대 설악산은 자연보호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산양은 인간의 욕심에 사라진 동물로 조명됐다. 산양이 숨을 쉴 수 있어야 설악산도 살아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971년 신문에서는 “남획 결과 지금은 설악산 전 계곡을 통해 1~2마리 정도밖에 발견되지 않는”(<동아일보> 3월26일) 탄식을 볼 수 있고, 산양이 버섯 채취꾼에게 목격되는 일이 뉴스(˝ 1973년 11월17일)가 될 정도였다. 멸종의 벼랑 밑으로 산양은 아스라이 떨어진 듯했다. 그러던 1981년 3월27일 “29일간의 끈질긴 잠복 추적 끝에” “귀때귀골 능선 암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양 한 마리”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다.(˝ 1981년 3월31일) 당시는 강원도와 건설부가 설악산에 제2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설치 계획을 발표하자, 한국자원보전협회 등 자연보호 단체가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대립이 격화되던 시점이었다. 유력 일간지 1면을 장식한 “셔터 소리에 놀란” 산양의 고즈넉한 눈은 그 뒤 진행된 케이블카를 두고 벌어진 국가적 논쟁과 문화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설악산 보전의 강력한 변호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설악산 산양은 정부와 환경단체의 보전 노력으로 251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국립공원관리공단 2015년 7월 자료) 그러나 설악산 산양의 운명에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그간 설악산 제2케이블카 설치에 부정적이었던 정부 입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급변했고, 지난해 8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강원도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정부의 설악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시도도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1995년 9월 정부는 설악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고, 이듬해 4월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현장실사가 이뤄졌다. 당시 이 단체 조사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설악산은 세계자연유산 기준의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않는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다름 아닌 케이블카 설치 같은 개발 압력이었다. 평가보고서는 케이블카, 모노레일, 신규 호텔 같은 향후 관광개발 제안과 관광객 연간 약 400만명의 영향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국립공원 당국이 대응 노력을 하고 있으나 위 위협 전부가 현장실사 기간 확인되었으며 향후 더 많은 보전 관리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런 평가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철회했다. 지난해 문화재청은 설악산과 금강산을 묶어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6300만원을 들여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되면 1995년의 사례처럼 세계유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위원회의 설악산 문화재 현상 변경 심의는 매달 한 번씩 개최된다. 문화재청은 4월까지 설악산 오색지구에서 산양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7일 “아직 강원도에서 현상 변경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현장조사 자료 등을 근거로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철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 행동실장은 “애초 환경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한 공언과 달리 조사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소신껏 케이블카 불허 결정을 내린 이는 이숭녕 문화재위원장과 이창복 서울대 교수, 원병오 경희대 교수 등 6명의 문화재위원이었다. 그때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면 설악산은 251마리가 사는 ‘산양의 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34년이 흘렀다. 문화재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