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포풀. 사진 윤석민 제공
[조홍섭의 물바람 숲]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병리학 교수였던 랠프 가필드 밀스(1884~1944)는 20세기 초 10년 동안 조선에 머문 미국인 의사였다. 그는 흔한 배앓이가 회충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등 기생충, 풍토병, 식생활, 전통의학 등을 주로 연구했다. 특히 식물에 관심이 많아 “짬만 나면 식물채집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해, 무려 1만5000여점의 식물 표본을 남겼다. 그는 1914년 6월12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포풀’이라는 식물을 서울에서 채집했다. 고 이영노 박사는 나중에 그 지점을 영등포로 보고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처음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등포풀이 다시 영등포에서 확인됐다. 국내에 드물게 관찰되는 멸종 위기종이 국내 최대 규모로 고향인 서울 한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작은 습지식물인 등포풀이 살아남은 곳은 영등포구에 속하는 한강의 윗밤섬이다.
지난 3일과 12일 윤석민 한강유역환경청 전문위원의 안내로 밤섬을 찾았다. 윤씨는 지난해 생태계 변화 관찰 조사 중 등포풀과, 마찬가지로 밀스가 이곳에서 1914년 채집한 희귀식물인 대구돌나물의 자생을 확인했다. 여의도 서강대교 남단에서 배를 타고 윗밤섬으로 향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윤씨가 자갈과 모래가 깔린 물가를 가리킨다. 짐작한 것보다 등포풀은 더 작았다. 물별이끼, 물벼룩이자리, 뚝새풀(둑새풀) 틈에서 새끼손가락만한 개체를 찾았다. 주걱 모양의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2~3㎜의 앙증맞은 흰 꽃이 달렸다.
썰물로 물이 빠진 윗밤섬과 아랫밤섬 사이 고랑을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강에서 보기 힘든 자연하천과 습지의 모습이 오롯이 펼쳐졌다. 새끼 물고기가 큰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도망쳤다. 고랑 양쪽에 드러난 기슭에서 여러 개체의 등포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랑을 따라가자 키 큰 갈대와 부들에 숨겨진 호수가 나타났다. 팔뚝만한 잉어들이 물방울을 튀기며 몰려다니며 산란행동에 바빴다. 관목과 물쑥, 갈대밭에 파묻혀 있노라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가 자동차 소음과 앰뷸런스 경적이 도심임을 일깨워줬다.
밤섬은 한강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주민 62가구 443명이 강 건너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되고 1968년 2월10일 폭파돼 섬의 형체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등포풀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등포풀과 대구돌나물 모두 물가에 사는 한해살이풀이어서 생존전략이 덧없으면서도 강인하다. 큰물이 나면 자생지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휴면 상태의 씨앗은 땅속에서 기회를 기다리다 일시에 자라 번식한다. 여의도 윤중제를 쌓느라 밤섬의 바위와 토사를 모두 들어냈지만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습지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근근이 삶을 이어왔을지도 모른다.
밤섬 폭파 당시의 신문 기사는 밤섬 마을을 “500년 동안 수돗물과 전깃불 모르고 살아온 마을” 등 도심 속 낙후지로 그리고 있다. 요즘 밤섬을 ‘도심 속 무인도’ ‘도심의 생태계 보고’로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밤섬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다. 권혁희씨는 2012년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조선시대부터 폭파되기까지 밤섬의 역사를 더듬었다. 특히 밤섬과 여의도의 운명적 관계는 흥미롭다. 평상시에 밤섬과 여의도는 한강 하중도에서 연결된 두 지점이었다. 홍수 때만 밤섬의 용바위와 여의도 양말산(현 국회의사당 자리)이 물 위에 드러났다. 밤섬은 조선시대 동안 주점만 700곳에 이르던 조선 최대 포구 마포와, 조선 각지의 세곡이 하역되던 서강 포구 사이에 자리잡아 드나드는 수많은 배를 고치고 만들던 요충이었다. 반면 여의도는 국가 제사에 쓸 가축을 기르던 곳이었다.
최고의 상권과 오랜 전통 속에서 잘나가던 밤섬은 이름 자체가 ‘너나 가져라’란 뜻의 여의도에 몸을 내주고 사라지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자연은 밤섬을 버리지 않았다. 퇴적물이 쌓여 밤섬은 반세기 만에 몸집을 6배나 불렸다. 생태계도 살아났다. 밤섬 주민들도 고향을 잊지 않았다. 주민들은 2년마다 한가위에 밤섬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이제 등포풀이 이들을 반길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