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범고래쇼를 본 뒤 야생범고래 관광을 했다. 지난 9월12일 미국 플로리다의 시월드 올랜도의 샤무쇼. 범고래와 인간 그리고 미디어기술이 결합한 공연이 50년 가까이 이어져왔지만, 2010년 조련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토요판] 생명
고래관광, 극과 극
고래관광, 극과 극
▶ 인간은 왜 동물을 보고 싶어하는 걸까요? 왜 좀더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싶어하는 걸까요? 이런 인간의 욕망에 부응해 자본주의는 동물과 인간의 만남을 상업화시켜 왔습니다. 범고래쇼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해양동물 테마파크인 미국 시월드와 역시 세계 최대의 야생 범고래 관광지인 캐나다 빅토리아섬을 다녀왔습니다. 둘은 각각 ‘나쁜 관광’과 ‘착한 관광’의 대명사로 알려진 곳입니다.
시월드 올랜도 샤무쇼
‘샤무 스타디움’은 ‘돌고래쇼장’이라기보다는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야구장에 가까웠다. 9월12일 낮 12시, 범고래가 공연을 벌이는 중앙무대와 풀장을 감싼 5500석의 관람석은 공연 시작 10분 전 이미 만석이었다. 공연 직전 <비하인드 신>이라는 짧은 영화가 상영됐다. 한 소녀가 아버지와 하이킹하다가 야생고래를 목격한다. 페이드아웃. 어느덧 어른이 된 소녀는 배를 타고 어린이들에게 야생고래를 보여주고 해안가에 좌초한 고래를 구조한다. 이어 나오는 장면은 그가 수족관에서 고래를 돌보는 모습. 소녀는 시월드 조련사가 된 것이다.
‘하나의 바다’(One ocean)라는 샤무쇼가 시작됐다. 1966년 이 쇼가 시작되면서 출연한 범고래 ‘샤무’(Shamu)는 지금까지 시월드 범고래쇼의 이름으로 남았다. 50년 가까이 범고래는 죽고 바뀌었지만, 시월드의 범고래는 언제나 샤무로 불린다. 미국 어린이들은 어릴 적부터 샤무를 보고 자랐고, 시월드는 샤무쇼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해양동물 테마파크로 성장했다.
범고래가 공중에 솟아올랐다. 매끈한 곡선, 거대한 몸집, 반짝이는 얼룩무늬. 가까웠다. 정말로 가까웠다. 나와 다른 거대한 생명체를 마주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묘사하자면, 범고래의 행동과 이를 유인하는 조련사의 먹이주기의 연속 동작일 뿐이었다. 범고래는 점프를 하고 죽은 생선을 받아먹고, 물을 뿜고 죽은 생선을 받아먹고, 꼬리로 관람객들에게 물을 튀기고 죽은 생선을 받아먹었다. 그럼에도 샤무쇼는 조건반사를 이용한 묘기 부리기 수준의 동물쇼가 아니었다. ‘하나의 바다’ 주제곡이 흘러 퍼지는 가운데 무대 중앙 대형 엘시디에서는 미국 서부해안에서 남극까지 야생 풍광이 펼쳐졌고 범고래의 몸은 보잉747처럼 우아하고 느리게 하늘을 갈랐다. 사회자는 여러번 “이 위대한 생명이 당신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먹이주기 등 인위적인 동작은 최대한 ‘비가시적으로’ 처리됐다. 얼핏 보면 샤무쇼는 야생보전을 위한 캠페인처럼 느껴졌다. 태평양의 범고래와 남극의 펭귄 새끼 그리고 인간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바다’라는 샤무쇼의 메시지였다.
공연은 30분 동안 지속됐다. 등지느러미가 구부러진 점(수족관 범고래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제외하곤 야수의 몸은 쉬지 않고 관객의 경탄을 불러왔다. 다만 조련사를 등에 태우고 공중으로 쏘는 등 인간과의 ‘협연’은 생략됐다. 2010년 시월드 조련사가 범고래 틸리쿰의 공격을 받고 숨진 뒤, 미국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이 안전상의 이유로 수중공연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범고래 일곱 마리 중 이날 출연한 범고래는 다섯 마리. 공연장 너머 보조풀장에서 틸리쿰의 것처럼 보이는 함몰된 등지느러미가 빼꼼히 비쳤다.
세계 최대의 시월드 범고래쇼
야구장 같은 거대한 스타디움
매끈한 범고래 만남 보장
거대한 몸체에 압도됐지만
볼수록 그들의 불행이 느껴져 고래가 와주어야 볼 수 있는
캐나다 야생의 범고래 관찰
착한 관광 불리지만
상업화와 생태 교란 우려도
어떤 만남을 선택할 것 세일리시해 범고래 관광 지금 ‘샤무쇼’ 이름의 기원이 된 샤무는 1965년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그리고 미국 시애틀을 잇는 국경 해역 세일리시해(Salish Sea)에서 포획됐다. 이 바다는 과거 공연용 범고래의 사냥터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의 야생고래 관광지다. 이 지역 태평양고래관광협회(PWWA)에 가입한 캐나다와 미국의 업체만 33개다. 9월23일 오후 2시30분 캐나다 빅토리아의 이글윙투어의 고래관광선에 올랐다.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흩뿌리는데도 관광객이 열명 남짓 모였다. 선장인 크리스 베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 남쪽으로 가볼게요. 레이스 록스 등대에 가면 바다사자들이 많아요.” “범고래는 볼 수 있어요?” “재수 없지만 않으면요.” 선장은 하와이 고래 조사에 참여한 해양포유류 ‘준전문가’다. 새·바다사자·물범이 나타나자, 가이드인 데릭 스털링의 입에서도 이들의 종, 서식지, 생태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 일사천리로 새어나왔다. 예고된 관찰목록에 추가로 낫돌고래 100여마리, 혹등고래 2마리를 본 뒤, 범고래를 찾아 미국 해역에 진입했다. 얼마 뒤 칼처럼 예리한 검은 등지느러미가 안개에 싸인 수평선을 갈랐다. “케이(K)-21, 별명은 카푸치노! 등지느러미가 워낙 곧아서 눈에 쉽게 띕니다. 보통 소나타와 함께 다녀요.” 과연 몇 분 뒤, 케이-35, 소나타의 등지느러미도 떠올랐다. 선장은 엔진을 껐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가 규정한 고래 관찰 가이드라인에 따라 배는 고래 반경 200미터(미국 해역에서는 100미터)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이보다 더 가까이서 고래를 볼 수 있느냐는 고래에 달렸다. 고래가 오면 볼 수 있고 오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이날 혹등고래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낫돌고래는 우리 배와 경주를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나중에서야 안심이 됐는지, 30여분의 조용한 유영 끝에, 카푸치노와 소나타는 10미터 앞까지 다가와 스파이호핑(고래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는 행동)을 했다. “멋진 장면입니다. 운이 좋네요.” 선장이 말했다.
어떤 만남인가
시월드에서 스펙터클은 범고래의 몸 자체로 존재한다. 조련사와 고래 그리고 첨단 미디어기술이 한편의 집체극을 완성하지만, 역시 쇼의 중심은 낯설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거대한 범고래의 몸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루 두 번 정해진 쇼 시간에 고래를 만날 수 있다. 반면 야생고래 관광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져 스펙터클이 완성된다. 날씨(파도가 낮아야 배가 뜬다), 동물의 의도(고래가 와주어야 볼 수 있다) 등 불확실성이 인간과 동물의 만남을 지배한다. 범고래를 가까이서 보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어떤 관광을 선택할 것인가? 시월드 1일권에 95달러(약 10만원), 야생범고래 4시간 투어에 125캐나다달러(약 12만원). 고래와의 만남 보장, 보장할 수 없음. 각각 나쁜 관광, 착한 관광의 대명사. 두 고래관광은 다르면서도 미묘하게 닮았다. 첫째, 같은 점.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여성주의 연구자인 칠라 벌벡 애들레이드대학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이르러 인간과 동물의 만남이 ‘에코’나 ‘보전’, ‘친환경’ 등의 외피를 둘러쓰고 고도로 ‘상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기 자본주의가 죽은 고래의 기름과 고기를 이용했다면(고래기름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살아있는 고래의 몸을 시각화해 이윤을 창출한다. 일반적인 돌고래쇼와 달리 범고래쇼는 규모와 비용 면에서 그 자체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시월드는 올랜도와 샌디에이고, 샌안토니오 등 미국에만 세 곳에서 23마리의 범고래를 가두고 샤무쇼를 보여준다. 캐나다의 고래관광 또한 야생에서 고래와의 만남을 ‘상업화’시켰다. 업체의 난립으로 부작용도 나타난다. 데이비드 루소 영국 애버딘대학 교수 등은 2009년 고래관광선 등 잦은 선박의 왕래로 먹이활동 시간이 줄어드는 등 야생고래 관광이 세일리시해 범고래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둘째, 다른 점. 그럼에도 두 고래관광을 동격에 위치시킬 순 없다. 시월드 샤무쇼를 본 뒤, 내리 두 번을 더 지켜봤다. 생명에 대한 경이는 반감됐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고래들은 종종 딴청을 피웠다. 다섯 마리가 출연한 첫번째 쇼는 ‘잘된’ 공연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본 쇼에 출연한 세 마리는 비협조적이었다. 조련사가 시키면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를테면, 관람석 앞에 가 물을 튀기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어떤 고래는 귀찮은 듯 한번만 튀기고 돌아와 입을 벌렸다. 범고래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먹이를 담보로 한 대가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이 연출하는 경이로움은 타율적이고 인위적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범고래들은 적어도 자기결정권이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배에 다가왔다. 당신은 고래를 꼭 만나고 싶은가? 그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올랜도(미국)·빅토리아(캐나다)/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야구장 같은 거대한 스타디움
매끈한 범고래 만남 보장
거대한 몸체에 압도됐지만
볼수록 그들의 불행이 느껴져 고래가 와주어야 볼 수 있는
캐나다 야생의 범고래 관찰
착한 관광 불리지만
상업화와 생태 교란 우려도
어떤 만남을 선택할 것 세일리시해 범고래 관광 지금 ‘샤무쇼’ 이름의 기원이 된 샤무는 1965년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그리고 미국 시애틀을 잇는 국경 해역 세일리시해(Salish Sea)에서 포획됐다. 이 바다는 과거 공연용 범고래의 사냥터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의 야생고래 관광지다. 이 지역 태평양고래관광협회(PWWA)에 가입한 캐나다와 미국의 업체만 33개다. 9월23일 오후 2시30분 캐나다 빅토리아의 이글윙투어의 고래관광선에 올랐다.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흩뿌리는데도 관광객이 열명 남짓 모였다. 선장인 크리스 베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 남쪽으로 가볼게요. 레이스 록스 등대에 가면 바다사자들이 많아요.” “범고래는 볼 수 있어요?” “재수 없지만 않으면요.” 선장은 하와이 고래 조사에 참여한 해양포유류 ‘준전문가’다. 새·바다사자·물범이 나타나자, 가이드인 데릭 스털링의 입에서도 이들의 종, 서식지, 생태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 일사천리로 새어나왔다. 예고된 관찰목록에 추가로 낫돌고래 100여마리, 혹등고래 2마리를 본 뒤, 범고래를 찾아 미국 해역에 진입했다. 얼마 뒤 칼처럼 예리한 검은 등지느러미가 안개에 싸인 수평선을 갈랐다. “케이(K)-21, 별명은 카푸치노! 등지느러미가 워낙 곧아서 눈에 쉽게 띕니다. 보통 소나타와 함께 다녀요.” 과연 몇 분 뒤, 케이-35, 소나타의 등지느러미도 떠올랐다. 선장은 엔진을 껐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가 규정한 고래 관찰 가이드라인에 따라 배는 고래 반경 200미터(미국 해역에서는 100미터)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이보다 더 가까이서 고래를 볼 수 있느냐는 고래에 달렸다. 고래가 오면 볼 수 있고 오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이날 혹등고래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낫돌고래는 우리 배와 경주를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나중에서야 안심이 됐는지, 30여분의 조용한 유영 끝에, 카푸치노와 소나타는 10미터 앞까지 다가와 스파이호핑(고래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는 행동)을 했다. “멋진 장면입니다. 운이 좋네요.” 선장이 말했다.
9월23일 세일리시해 고래관광선에서 목격한 범고래 카푸치노(K-21)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관찰하는 ‘스파이호핑’을 하고 있다. 세일리시해 남쪽의 범고래는 제이(J), 케이(K), 엘(L) 무리가 있으며, 카푸치노는 가장 작은 집단(19마리)인 케이 무리에서 살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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