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한반도의 야생 반달가슴곰이 사진이나 흔적이 아닌 실물로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이었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의 총을 맞고 신음하던 곰 한 마리를 확인했다고 <경향신문>이 그해 5월21일치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이다. 구조반이 긴급출동했지만 곰은 이틀 뒤 숨졌다.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곰이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을 재구성한 기사부터 밀렵 실태에 관한 기획기사까지. 밀렵꾼은 납이 든 사제 총탄을 썼고, 부검 과정에서 어른 주먹 크기의 웅담이 나왔는데 공개입찰로 판매할 것이며, 죽은 곰은 10년생 암컷인데 수태한 흔적이 없다는 등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반달가슴곰이 발견되기 며칠 전인 5월18일부터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 사실은 ‘정치 현안’으로만 언급됐을 뿐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17일간의 단식 끝에 김 전 총재가 입원한 뒤에야 보도가 허용됐다.
권위주의 정권과 이에 굴종한 언론사는 종종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데 야생동물을 이용한다. 1971년 박정희-김대중 대선을 앞둔 마지막 황새 보도도 그랬다. 그 결과 멸종위기 동물을 지키는 데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마지막 기회가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다.
단군신화의 주인공이면서도 반달가슴곰이 이 땅에서 받은 대접은 부끄러울 정도다. 일제 강점기에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수십~수백 마리의 반달가슴곰을 죽였다. 해방 이후 전쟁을 피해 살아남은 곰은 웅담을 노린 사냥꾼의 집요한 추적을 받았다.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의 최근 발표를 보면, 지리산에서만 1960년대에 한해 약 4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포획됐다. 대기업에서는 전문 포수를 고용해 지리산에 상주시켰고, 구례를 근거지로 한 윤아무개는 34마리나 잡았다는 것이다.
1972년 곰 사냥이 금지되고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조금씩 개체수가 늘어나던 차에 1983년 설악산 곰 사건이 났다. 생업을 접으려던 밀렵꾼들은 다시 밀렵도구의 먼지를 털었다. 주류 언론이 보여준 변치 않은 웅담에 대한 관심도 이들의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마침내 반달가슴곰의 멸종이 임박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권’보다 ‘곰권’을 더 중시한 정권의 피해자가 곰 보호에 나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200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도입한 새끼 반달가슴곰 6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하면서 곰 보호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다음달이면 반달가슴곰 복원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된다. 현재 지리산에 복원한 반달가슴곰은 31마리이다.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38마리를 도입해 풀어놓았지만 올무에 걸려 죽거나 적응하지 못해 회수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희망적인 것은 이들 가운데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끼가 13마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올해만 5마리가 태어났고 어릴 때 도입한 곰들이 잇따라 가임기에 도달한다. 집단을 지탱할 최소 마릿수인 50마리를 넘어 지리산이 수용할 수 있는 1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의 깃대종이다. 반달가슴곰이 살아야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핵심 종이란 뜻이다. 그런 곰이 불어나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동시에 과제도 남긴다. 무엇보다 연간 280만명이 찾는 탐방객의 사고 가능성과 양봉 등 주민 피해가 심해질 것이다. 일일이 붙잡아 무선발신기를 부착하는 방식 외에 털 유전자를 분석하는 등 새로운 모니터링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단순한 관리를 넘어 생태계 차원의 연구 필요도 커진다. 지난 10년 동안 국도 1㎞ 건설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140억원이 들어간 반달곰 복원예산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댐과 케이블카 건설 등 지리산 개발 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 지리산 생태계를 복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 이를 갉아먹어야 하겠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