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기후변화법 제정 운동’ 펼치는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기후변화 문제에는 과학, 정책, 경제, 국제 관계 등 복잡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구성하는 특정 분야 전문가들은 적지 않지만 기후변화의 전체 그림을 설명해 줄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안병옥(51)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기후변화 문제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민간 전문가로서 눈에 띈다. 그는 독일에서 하천생태 연구로 박사학위를 한 생태전문가이지만, 뒤늦게 기후변화 문제에 눈을 떠 6년째 화두로 붙잡고 있다. 그의 주도로 2009년 6월 창립된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환경운동에 뿌리를 두고 시민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대처하기 위한 행동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대표적 민간 기후변화연구소다. 안 소장은 대학원을 마치고 환경운동에 투신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까지 지낸 386세대 환경운동의 대표주자이기도 했다. 최근 국민발의 기후변화법 제정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14일 정부서울청사 뒤 용비어천가 오피스텔 14층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저탄소보다 성장에 방점 찍혀
새로운 기후변화 관련법 필요 최근 내놓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
온실가스 문제 검토도 안해
장기목표도 정해져 있지 않아 국민발의 기후변화법 제정 나서
시민 의견들 담아 내용 채워
내달엔 국회서 공청회 열 계획 -산업계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같은 것을 해서 스스로 족쇄를 채울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데요. “20년째 반복하는 이야깁니다. 일본과 중국 사례를 드는데, 사실 중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하는 나라로 평가가 바뀌었어요. 일본도 얼마 전 감축목표를 낮췄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고 1인당 배출량이 적어요. 그런데 감축목표 바꿨다는 것만 딱 가져와서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죠.” -국제사회에서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달성 방안을 논의 중인데요, 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꽤 있지요? “이론적으론 달성 가능하다고 봅니다. 각 국가가 다 차를 몰고 이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운전대를 탁 틀어서 다른 방향으로 가면 돼요. 근데 못 틀고 있죠. 모두 다 튼다는 확신이 있으면 되는데 ‘나만 하면 손해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국제기구에서 나온 보고서들 보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경제적으로도 당장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분석까지 나와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그에게 환경운동은 고향 같은 곳이다. ‘환경단체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설명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좀 있는 거 같아요. 내적으로는 환경운동을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주지 못한 지가 아주 오래됐어요. 그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거든요. 또 활동가들이 부족한 부분은 전문가들이 채워주고 전문가들이 잘 모르는 현장은 활동가들이 채워주고 하는, 활동가와 전문영역의 동맹 체제가 허약해진 것도 문제입니다. 밖에서 환경운동을 약화하는 데는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결정적 구실을 했습니다. 내부 역량을 키우는 운동을 하려다가도 새만금, 4대강 같은 문제가 던져지면 엔지오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동원체제로 가서 그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거든요. 유럽에서라면 학계를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 걸러졌어야 할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다 엔지오한테 떨어지는 게 문제인 거지요.” -활동가와 전문가 관계가 왜 허약해졌을까요? “80년대는 환경 문제라면 다들 무서워서 얘기를 못 할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해했던 분위기가 있었죠. 지금은 누구나 환경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은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활동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건 환경운동이 그분들이 더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못 만들어준 탓도 있겠지만, 저는 학계가 경제계와 정부의 포로가 돼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부는 신분이 보장된 교수들을 제외한 전문가들에게 언제든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정부와 갈등이 심해지면 빠지거나 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 약간의 불신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죠.” 안병옥 소장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안철수 후보 캠프의 환경분야 대선공약 개발을 총괄했다. 그해 10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대선후보 환경·에너지 정책 토론회’에서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윤성규 박근혜 후보 환경특보는 지금 환경부의 수장이 돼 있다. -직접 정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웃음) 정부 정책을 보면서 답답할 때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환경정책을 도와달라 할 때 그것까지 안 하겠다 한다면 책임방기가 되겠죠.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정부나 구조 속에 들어가서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옛날 엄혹했던 시절에 크리스찬아카데미가 그랬듯이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젊은 활동가들을 훈련하는 일을 하고는 싶은데 연구소 운영에 매여 발걸음을 확 떼지를 못하고 있죠. 누가 연구소를 맡아주면 그렇게 하려 합니다.” -연구소를 맡을 분을 찾고 있나요? “찾고 있죠. 근데 없어요, 적당한 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인터뷰/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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