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충북 보은군 속리산국립공원 부근 임시계류장에 있는 방사 꽃사슴들이 밥을 주러 온 직원을 경계하고 있다. 외래종 속리산꽃사슴은 앞으로 복원할 토종 대륙사슴의 종 보존을 위해 2010년부터 포획·격리되고 있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 속리산 외래종 꽃사슴 포획
▶ ‘속리산 국립공원’에서는 매년 겨울 속리산에 사는 꽃사슴을 포획하고 있습니다. 속리산 꽃사슴은 법주사에서 방사했던 외래종 사슴인데요, 앞으로 복원할 토종 사슴의 종 보존을 위해서 격리해두려는 계획이지요. 그물망을 열어 꽃사슴을 잡고 있는 현장에서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속리산 꽃사슴 이야기를 통해 외래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이 생태계에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슴들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몸길이 1m 남짓으로 다 자란 사슴 12마리와 새끼 2마리였다. 몸에 하얀 점이 드문드문 박힌 꽃사슴이다.
6일 오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국립공원 유스타운 옆에 있는 꽃사슴 임시계류장을 찾았다. 하루에 한번 사슴에게 밥을 주러 온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사무소 김태헌 계장과 직원들에게로 사슴의 시선이 꽂혔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사슴들은 모두 암컷 같았다. 머리 위가 맨송맨송했다. 계류장으로 오기 전 수컷의 자랑인 크고 단단한 뿔은 톱으로 자르기 때문이다. 좁은 계류장에서 서로 다투다 뿔에 찔려 한 마리가 복부 천공으로 폐사한 적이 있다. 김씨가 말했다.
“서울숲에 있는 꽃사슴은 곁으로 다가오잖아요. 이 사슴들은 안 그래요. 야생 그대로죠. 흩어져 있지 마시고 몰려다니시는 게 좋아요.”
사슴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거리를 유지했다. 한발 다가가자 몇몇 사슴이 갑자기 내달렸다. 달각거리는 발굽 소리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크기 300㎡의 좁은 계류장 둘레를 정신없이 빙빙 돌더니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어 달리는 녀석도 있었다.
속리산국립공원에는 꽃사슴이 산다. 속리산사무소는 국립공원 안 야생에 머물던 꽃사슴들을 포획해 이곳 계류장으로 옮겨 왔다. 꽃사슴 포획작업은 주로 겨울에 이뤄진다. 사무소 쪽은 지난해 11월 말 속리산 안에 먹이로 유인하는 둘레 150m, 높이 3m의 그물망 포획틀 6개를 설치했다. 보통 눈이 내린 뒤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지면 꽃사슴은 포획틀에 걸려든다. 12월 말부터 이듬해 땅이 녹고 순이 올라오는 3월 말 이전까지 4개월 동안이 집중적으로 꽃사슴을 잡는 기간이다. 현재 재작년 겨울에 포획한 7마리(1마리는 계류장에서 출산한 새끼)와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현재까지 잡은 7마리를 합쳐 14마리가 계류장에 머물고 있다.
속리산꽃사슴을 포획하는 이유는 뭘까. 2009년 6월 충북대학교 고흥선 교수가 작성한 ‘속리산 방사 꽃사슴의 유전자 특성 및 계통분류 연구’를 보면 속리산국립공원의 사슴들은 대만사슴 또는 대만사슴과 일본사슴의 잡종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원래 서식하던 대륙사슴(환경부 1급 보호종)과 분류학적으로 다른 아종이며 유전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외래종이라는 의미다. 이미 대륙사슴은 일제 때 마구잡이 포획으로 수가 크게 줄어들다 1960년대 들어 남한에서는 멸종했다. 한반도에는 북한 북부 산간지대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사무소 자원보전과 김대현 과장이 꽃사슴과 대륙사슴에 대해 설명했다.
“외래종은 대량 확산되는 시기가 있어요. 추이를 보니 꽃사슴이 슬슬 우점종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꽃사슴의 천적이 없으니까 개체수 조절이 어려워요. 앞으로 복원할 대륙사슴 유전자 보존을 위해서라도 꽃사슴을 포획하고 관리하는 게 필요합니다.”
아종끼리는 교배가 가능하다. 대륙사슴 복원에 성공한다 해도 순종 대륙사슴의 유전자가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에 속리산꽃사슴은 포획 대상이 되었다. 대륙사슴 복원 사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강원도 인제와 전라북도 장수에서 진행중이다.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대륙사슴을 들여오는 방법이 검토되었으나 구제역 위험과 남북관계 변수로 중단됐다.
속리산꽃사슴의 역사는 짧지 않다. 외래종 사슴들은 정부가 농가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수입해 들여왔다. 이 사슴들이 속리산국립공원에서 뛰어놀게 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속리산 내 법주사에서 종교 행사의 일환으로 꽃사슴을 방사한 게 시작이었다.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으로 부처님이 처음 설법한 곳이 녹야원(사슴농원)이다. 절에서 사슴은 길한 동물로 꼽혀 음력 사월 초파일이면 방사 행사를 자주 열었다. 동물을 야생에 방사하면 무조건 좋은 줄 알던 시절이었다. 외래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문제나 대륙사슴 복원까지 깊게 고려하지 못했다. 법주사의 꽃사슴 방사는 2002년까지 계속됐다. 20~30마리의 꽃사슴이 속리산 야생에 풀렸다.
300㎡ 속리산 임시계류장에는
외래종 꽃사슴 14마리가 산다
농가 소득 증대 위해 수입됐다
법주사 방사로 야생에 나왔지만
먹이를 찾다 그물에 걸려들었다 토종 대륙사슴 복원 시작하면서
순종 유전자 보호하기 위해
일단 포획해 임시로 가둬뒀지만
데려가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꽃사슴은 점차 수가 늘어났다. 3년생 이상 암컷은 매년 1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2008년 속리산국립공원 야생동식물보호단은 배설물 조사를 통해 속리산국립공원 안에 약 50마리의 꽃사슴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꽃사슴이 외래종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인 2009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법주사와 주민, 전문가와 협의해 이듬해부터 포획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법주사에 6000㎡의 계류장을 만들어 법주사가 사슴을 관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3년 만인 2012년 법주사 계류장의 문은 닫혔다. 2012년부터 속리산사무소의 임시계류장에 사슴들을 데려다 두고 있다. 학계에서는 생태계 자원 보존의 중심적 구실을 하는 국립공원인 만큼 외래종의 서식지가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은 “야생에서 외래종이 (복원한) 순종과 교배할 경우 유전자가 오염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생물종이 살아가려면 서식지가 필요해요. 공간 싸움이죠. 자생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외래종은 없애는 게 맞아요. 살아 있는 생명이니까 포획해서 죽일 수는 없고 인위적인 공간에서나마 수명이 다하도록 격리하는 수밖에 없죠.” 속리산꽃사슴의 포획률보다 개체수 증가 속도가 빠른 만큼 포획과 격리의 과정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또 이미 야생에 적응한 개체를 굳이 잡아 동물원이나 농가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대안이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의 한 관계자도 그 점을 걱정했다.
“외래종이기 때문에 포획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아요. 그러나 포획만이 적절한 대응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야생에서 살던 애들이니 야생에서 살게 놔둬야 하지 않겠어요? 잡는다고 잡힐까요? 다는 못 잡는다고 봅니다. 인간의 개입으로 망가진 생태계에 또 한번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속리산꽃사슴을 포함한 외래 동식물 관리의 어려움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도 어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외래종 관리계획을 갖고 있지만 동물 800종, 식물 309종에 이르는 외래종의 특성이 다 다른 만큼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재 속리산꽃사슴은 ‘방사동물’로 지정돼 있다. 뉴트리아,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큰입배스처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돼 있진 않지만 교란 위험도가 높은 자연보존지구나 섬에서는 우선제거 대상이다. 환경부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외래생물에 대한 중장기 관리계획을 만들어 3월 중에 발표할 방침이다.
잡힌 꽃사슴들은 계류장을 떠나 어디로 갈까. 포획을 시작한 2010년부터 2013년 12월까지 모두 53마리의 꽃사슴이 잡혔다. 종복원기술원(설악산)에 3마리를 입양 보냈고, 전주동물원과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에도 7마리를 전시용으로 보냈다. 법주사에서 자체적으로 처분한 10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포획과정 전후 또는 계류장 안에서 폐사했다. 2012년 봄 발신기를 부착해 재방사한 암수 한쌍 중 수컷은 지난해 1월 속리산국립공원 안 수정암 부근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곳 근처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음식물쓰레기를 먹다 급성식체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계류장이 아닌 속리산국립공원 야생에는 현재 150여마리의 꽃사슴이 서식한다. 모두 포획해 국립공원 밖으로 이주시켜야 할 대상이다.
계류장 위로 속리산에는 겨우내 내린 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임시계류장은 사슴들이 노닐기에 다소 비좁아 보였다. 김태헌 계장이 말했다.
“조금 좁아요. (사슴들을) 보낼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사슴농가들에 연락해보려는데, 요즘은 꽃사슴보다 뿔이 큰 엘크(말코손바닥사슴)를 많이 키운대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동물원 사업자들의 모임인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에 공문을 보내 꽃사슴을 전시용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꽃사슴은 인기 있는 동물이 아니다. 답변이 온 곳은 없었다. ㈔한국양록협회에 따르면 꽃사슴은 관상용이 많은데, 수지가 맞지 않아 사육을 줄이는 추세라고 한다. 외래종 속리산꽃사슴이 갈 곳은 어디일까.
보은/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외래종 꽃사슴 14마리가 산다
농가 소득 증대 위해 수입됐다
법주사 방사로 야생에 나왔지만
먹이를 찾다 그물에 걸려들었다 토종 대륙사슴 복원 시작하면서
순종 유전자 보호하기 위해
일단 포획해 임시로 가둬뒀지만
데려가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꽃사슴은 점차 수가 늘어났다. 3년생 이상 암컷은 매년 1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2008년 속리산국립공원 야생동식물보호단은 배설물 조사를 통해 속리산국립공원 안에 약 50마리의 꽃사슴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꽃사슴이 외래종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인 2009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법주사와 주민, 전문가와 협의해 이듬해부터 포획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법주사에 6000㎡의 계류장을 만들어 법주사가 사슴을 관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3년 만인 2012년 법주사 계류장의 문은 닫혔다. 2012년부터 속리산사무소의 임시계류장에 사슴들을 데려다 두고 있다. 학계에서는 생태계 자원 보존의 중심적 구실을 하는 국립공원인 만큼 외래종의 서식지가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은 “야생에서 외래종이 (복원한) 순종과 교배할 경우 유전자가 오염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생물종이 살아가려면 서식지가 필요해요. 공간 싸움이죠. 자생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외래종은 없애는 게 맞아요. 살아 있는 생명이니까 포획해서 죽일 수는 없고 인위적인 공간에서나마 수명이 다하도록 격리하는 수밖에 없죠.” 속리산꽃사슴의 포획률보다 개체수 증가 속도가 빠른 만큼 포획과 격리의 과정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또 이미 야생에 적응한 개체를 굳이 잡아 동물원이나 농가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대안이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의 한 관계자도 그 점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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