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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찡이야, 너보다 오래 살아 다행이다

등록 2013-08-16 19:32수정 2013-08-18 17:25

찡이 나이 17살 때 무위도로 떠난 여행 때가 생각난다. 원고 마감 때라 바빴는데 미루지 말자고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지금 찡이가 세상에 없어도, 항상 찡이가 곁에 있다고 느낀다. 김보경 제공
찡이 나이 17살 때 무위도로 떠난 여행 때가 생각난다. 원고 마감 때라 바빴는데 미루지 말자고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지금 찡이가 세상에 없어도, 항상 찡이가 곁에 있다고 느낀다. 김보경 제공
[토요판/생명] 개 고령화 시대
▶ 비틀거리는 다리, 구부정한 허리, 하얗게 백내장이 낀 눈, 윤기 없는 푸석한 털. 맑고 생기 넘치던 내 동생이 나보다 먼저 늙었습니다. 노견과 함께 살면서 사랑을, 이별을 배웠습니다. 떠나는 그날까지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라봄’입니다. ‘나이든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카페 주인이자 <열아홉살 찡이, 먼저 나이 들어버린 내 동생>의 저자인 필자는 전합니다. 누구나 나이 든다고, 그 진실을 아는 우리는 따뜻합니다.

우리 집 개가 열살쯤 되었을 때, 걷는 모습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퇴행성 관절염입니다.”

퇴행성? 관절염? 뜻밖의 답변에 눈만 껌벅였다. 개의 입양을 고민하는 지인에게 개의 수명은 15년 정도이니 그 시간 동안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입양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내가 정작 우리 개의 노화 앞에서 당황했다. 개의 ‘나이듦’이라는 상황이 낯설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노화를 받아들이면 그에 따른 죽음도 인정해야 하니까. 게다가 개의 삶의 속도는 인간보다 빨라서 노화와 죽음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니까.

1993년생인 우리 개처럼 90년대에 태어나 입양된 개들은 이른바 우리나라 반려동물 1세대로 불린다. 마당에 묶여 남은 밥을 먹으며 집을 지키던 개들이 당당히 집 안에 입성했으니 실로 엄청난 신분 상승이었다. 그 뒤 티브이에서 몇몇 동물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반에 반려동물 입양 인구가 또 한번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는 1세대 반려견은 이미 떠났거나 초고령견이고, 2000년대 초반에 대거 입양된 반려견이 노화에 접어든 시기이다. 반려견 사회도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은 우리 집 개 ‘찡이’는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면서 살을 빼고 관절염 약을 몇 달 먹은 덕분에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노화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노견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개가 늙을 때까지 함께 사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관련 정보는 외국 책에서 얻었다. 그리고 나이 든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를 열었다. 우리끼리 정보도 나누고 서로 격려하자는 의미였다.

온라인 카페는 정보만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노견과 함께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다. 나만 해도 사람들이 찡이 나이를 물어서 대답했다가 “질기게 오래 사네”, “그 나이면 어디 갖다 버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적이 있다. ‘사람 살기도 어려운데’ 늙은 개를 뒤치다꺼리하는 걸 이해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같은 마음인 사람끼리 모이는 공간이 필요했다.

1993년에 태어난 아이
10살 때 퇴행성 관절염 앓고
18살 때 백내장으로 시력 잃고
19살 때 허리디스크 앓다 죽어
개나 사람이나 나이 드니 서러워

개가 질기게 오래 사네?
나에게는 아픈 가족인데
남에게는 ‘갖다 버릴’ 짐
반려인이 개보다 먼저 죽으면
늙고 병든 개 돌볼 곳 있을까

노견 카페는 10살짜리 개는 ‘아기’ 취급을 하는, 평균 연령 15살 이상의 반려견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변비에 고생하던 녀석이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는 이야기, 식욕이 없던 녀석이 밥을 잘 먹었다는 이야기에 수십 개의 축하와 응원의 댓글이 쏟아진다. 늘 조용하고 차분한 카페지만 얼마 전 흰둥이의 13살 생일 파티로 카페가 들썩였다. 아픈 아이들이 많아 카페 문을 연 지 10년이 됐는데 아직 정식 모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흰둥이네 가족이 암 투병 중인 흰둥이의 생일 파티에 카페 회원을 초대한 것이다.

“흰둥아, 생일 축하해. 내년에도 꼭 생일 파티에 초대해줘.”

마감중이던 나도 부족한 잠을 쫓으며 2시간을 달려가 진심으로 흰둥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암을 이겨내기를 응원했다. 노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내년 생일상도 차려주고 싶은 가족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가슴 뭉클한 자리였다.

개가 느끼는 삶의 속도는 인간의 그것보다 빠르다. 노화 역시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아파 쓰러진 뒤에야 부모님이 함께 가자던 여행을 미룬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나는 노견과 함께 살며 그런 감정을 배웠다. 길어야 20년짜리 짧은 삶 속에서 생로병사를 모두 겪는 아이들과 살다 보면, 매순간의 일상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개의 노화를 받아들이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내 경우 종종 ‘노견과 함께 사는 법’ 등을 주제로 강연할 때가 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반려견의 노화를 또다른 시작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사료를 계속 먹일지, 직접 만들어 먹일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산책 횟수 및 시간에 어떤 변화를 줄지 노견의 처지에서 생각해봐야 하고, 개의 식욕과 체중, 행동습관의 변화도 관찰해야 한다. 함께 떠나는 여행이 노견에게 무리일 수 있고, 새로 들인 가구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 기억을 더듬어 걷는 개에게 재앙일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암과 투병중인 흰둥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였던 흰둥이의 13번째 생일 파티. 김보경 제공
암과 투병중인 흰둥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였던 흰둥이의 13번째 생일 파티. 김보경 제공

개도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약해진다. 분리불안 증상이 있는 개들과 달리 찡이는 가족이 안는 것도 싫어하는 독립적인 개였는데 15살 때 내가 한 달간 집을 비운 사이 마비 증상을 보였다. 신나게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쓰러지던 증상은 6개월 뒤에야 사라졌고 주치의는 나의 부재로 인한 심인성질환 판정을 내렸다. 그 후 나는 여행을 포기했다. 포기하는 것이 여행만은 아니다. 친구와의 약속은 물론 회식 자리에서도 빠져나오기 바쁘다. 언젠가 사람들이 기다린다며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친구에게 “가족이 아프다는데 나와서 술 먹으라는 네가 미친놈이지”라며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 노견은 나이 들어 아픈 가족, 남에게는 그저 개다.

개의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각종 질병도 요주의 대상이다. 병의 종류도 사람과 비슷하다.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생기고, 암도 많고, 관절염도 생기고, 안과 질환도 많다. 찡이의 경우 17살까지 온 동네를 휘젓던 건강 체질이었는데 18살 때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보이지 않으니 가구나 벽에 쿵쿵 부딪치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18년 동안 행복했던 공간에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만을 바랐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는 연민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19살에는 허리디스크가 와서 뒷다리에 힘을 못 주고 주저앉기도 했다. 허리디스크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 또한 허리가 안 좋아 “개나 사람이나 나이 드니 아픈 게 똑같네” 하며 동병상련을 나눴다.

찡이와 더불어 살며, 나는 개의 수명이 짧은 이유를 알게 됐다. 반려인이 개보다 먼저 죽는다면, 나이 들고 병든 개를 중간에 떠맡아 가족처럼 돌봐줄 사람이 있을까. 사람도 늙고 병들면 가족도, 사회도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현실에 개의 수명이 짧아서 다행이다. 이 말은 개가 인간보다 수명이 짧아서 다행이라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개보다 수명이 길어서 다행이라는 의미임을 누군가 소중한 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반려동물 문화도 성숙했고, 예전 같으면 포기했을 병든 노견을 정성껏 돌봐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들었다고 버리고, 노견을 돌보는 것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젊을 때처럼 생기 넘치지 않지만 노견 또한 절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그런 노견을 돌보는 반려인을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보통 이웃으로 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늙고 약한 존재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누구나 다 늙을 테니.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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