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서울대공원의 홍학이 날지 못하는 ‘슬픈 이유’

등록 2013-08-02 19:54수정 2013-09-02 15:32

동물원의 동물에게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동물행동화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물보호단체는 국내 동물원이 이러한 사육기준을 지키지 못한다고 지적해왔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이 호랑이의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모습. 과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동물원의 동물에게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동물행동화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물보호단체는 국내 동물원이 이러한 사육기준을 지키지 못한다고 지적해왔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이 호랑이의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모습. 과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생명] 국회 통과 ‘동물원법’은 ‘동물 복지’ 가져올까
‘동물 감옥’ 부술 순 없지만 쾌적하게는 만들어야
▶ 동물원의 재산은 동물입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느냐는 중요했지만, 동물의 사육 환경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담은 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사육시설 관리를 뼈대로 하는, 일명 ‘동물원법’이 2014년이면 시행됩니다. 미래의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동물 전시와 종 보존, 상업적 목적과 동물복지라는 서로 다른 가치는 양립할 수 있을까요?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사자나 벵골호랑이, 반달가슴곰이 사는 곳에는 나무가 적다. 몸을 숨길 공간을 찾지 못한 동물들은 불안한 듯 뱅뱅 돈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홍학 쇼’를 하는 홍학들은 날지 못한다. 균형을 잡지 못하도록 한쪽 날개의 깃털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의 사설 테마동물원 쥬쥬의 원숭이 사육장 면적은 7㎡(2평)가 채 되지 않는다. 양, 돼지, 토끼 등 동물 만지기 체험 행사는 ‘시간 제한 없이’ 계속된다.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에 있는 북극곰은 사육장 구조상 관람객들을 올려다본다. 먹이를 던져주면 받아먹는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이 지난달 18일 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에버랜드 동물원, 테마동물원 쥬쥬 등을 현장조사한 이 단체는 동물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과 환경을 동물원에서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 처음으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법률 제정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데 이어 동물원 동물의 사육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시행령 제정 작업이 진행중이다.

이번에 개정된 법은 동물원 운영자들을 직접 규제할 수 있는 최초의 법이어서 ‘동물원법’이라고도 불린다. 2014년 7월 안에 시행령이 확정되면 각 동물원은 호랑이, 코끼리, 북극곰 등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시설 및 사육 기준을 지켜야 하고, 증식 및 사후 관리도 규제받게 된다.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동물의 대다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이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각 동물원은 멸종위기종을 수입할 때 지방환경청에서 허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동물원 사육시설에 관한 기준과 동물 사육 기준이 없어서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됐다.

이 법을 발의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의원(민주당)은 “2008년 어린이대공원에서 새끼 물개가 수조 정화조에 빨려 들어가 죽었고, 2011년 서울대공원에서 침팬지가 세균 전신감염으로 죽었다.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11마리의 샴크로커다일이 폐사하는 등 2008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신고된 폐사 건수가 1800건을 넘는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입 이후 사후관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법안의 내용은 선진적이다. 멸종위기종의 국내 반입과 수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멸종위기종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 사육시설을 타인에게 양도할 경우 현행법으로는 양도 신고만 해도 가능했지만, 양도와 양수에 대한 신고를 모두 하도록 해 관리주체의 책임도 명확히 했다.

동물원이 사육시설에 대한 관리기준을 위반할 경우 정부는 등록을 취소하고 사육시설을 폐쇄할 수도 있다. 지난해 호랑이 ‘크레인’으로 알려진 강원도 원주 드림랜드 동물원처럼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될 경우 동물원에 강제 조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밖에 멸종위기종이 국내에 들어와 출산 혹은 부화를 할 경우에도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특정 종의 인공 증식을 위해서는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일부 동물원에서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번식 장사’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동물원법은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 가두고 있는 일부 사설동물원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적 환경을 견디는
우리 속 동물들에게 희소식
이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령 제정작업 한창이다

호랑이·코끼리·북극곰 등
멸종위기종 반입과 수출,
사육시설 규제가 강화되고
위반시 동물원 취소도 가능
구체적 시설·사육기준 두고
동물보호단체-동물원 신경전

역사적으로 동물원은 동물원 운영자의 자발적인 노력에 기대어 관리되어 왔다. 대부분의 동물원은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 World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와 같은 민간 동물원 스스로 국제 기준을 세워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강제성 없는 자정능력의 한계를 지적해 왔다. 실제로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는 동물원 코끼리 한 마리를 위해 50평의 야외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규정한다. 야생 코끼리가 활동하는 공간보다 수천배 작은 공간이다.

최근 들어선 유럽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동물복지 보장을 위해 정부가 동물원 규제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은 동물원 운영지침을 제정해 각국에 동물원을 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1981년 동물원면허법을 도입한 영국은 ‘현대 동물원 운영기준’을 마련해 먹이와 물 관리, 사육장 크기, 의료행위 제공 등 세세한 기준을 세웠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은 동물복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적절한 시설, 재원, 전문지식을 갖춘 책임있는 자에 한해서만 양도가 가능하며, 동물원을 운영하려면 종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면허가 있어야 한다. 새로 도착한 개체 수, 출생이나 부화한 개체 수, 죽은 동물의 수, 매각되거나 번식·임대한 개체 수 등 동물에 대한 기록도 매년 지방정부가 점검한다.

뉴질랜드에서도 동물원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준이 있다. 동물원은 모든 동물을 매일 최소 한번 이상 점검해야 한다. 오물이 축적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살아 있는 먹이를 제공해선 안 된다. 개체 수를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전기설비 등 시설은 동물에게 위해를 끼쳐선 안 된다. 또한 정부가 선임한 감사관은 동물원을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동물원 직원들은 교육 이수가 권고된다.

이번 법안 개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원에 대한 공적 규제가 가능해졌다. 다만 시행령에서 정해질 구체적인 시설 및 사육 기준을 두고 동물보호단체와 동물원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원법에서 동물원과 수족관 감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이원창 정책국장은 “동물원과 수족관은 폐쇄적이라 어떻게 운영되는지 외부인이 알지 못했다. 사육시설에 대해 운영자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들이 동물의 생태습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원은 외부인의 연구에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의 공정성이 담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이하 카자)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동물원 내 동물복지, 시설 개선 요구 등 사실상 이 법이 ‘동물원 규제법’이 될 것이라며 반발한다. 규모와 처지가 동물원마다 다른데 모든 동물원을 하나의 기준에 맞추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법 통과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소위원회에서는 ‘동물원 인증제 도입과 관련해 국내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감시를 시민단체가 아닌 카자에서 맡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카자는 테마동물원 쥬쥬, 63씨월드, 에버랜드 동물원,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코엑스 아쿠아리움 등 국내 동물원과 수족관 19곳, 수송업·건설업 3곳 등 22개 회원사를 두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하위 법령을 위한 국내외 사례 조사 및 실태 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연구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연구용역을 통해 어떤 수준의 동물원 시설 기준과 동물 사육 기준이 나올지 동물보호단체와 카자는 주시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엄격한 시설 및 사육 기준으로 동물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동물원 쪽은 현실론을 내세우며 비교적 느슨한 기준을 원한다. 이와 관련해 카자가 연구용역에 참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환경부는 용역에 카자를 참가시키지 않도록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곽종근 “윤석열, 정확히 ‘의원’ 끌어내라 지시…의결정족수 언급” 1.

곽종근 “윤석열, 정확히 ‘의원’ 끌어내라 지시…의결정족수 언급”

[단독] 이진우, 윤석열 폭음 만찬 직후 ‘한동훈’ 검색…11월 계엄 준비 정황 2.

[단독] 이진우, 윤석열 폭음 만찬 직후 ‘한동훈’ 검색…11월 계엄 준비 정황

오늘 퇴근길 최대 10㎝ 눈…입춘 한파 일요일까지 3.

오늘 퇴근길 최대 10㎝ 눈…입춘 한파 일요일까지

계엄날 국회 투입 707단장 “총기 사용 가능성 있었다” 4.

계엄날 국회 투입 707단장 “총기 사용 가능성 있었다”

707단장 “곽종근, 일부러 소극 대응…내란은 김용현 탓” 5.

707단장 “곽종근, 일부러 소극 대응…내란은 김용현 탓”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