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의 홍도에 취재진이 들어가자 괭이갈매기들이 사람을 둘러싸고 선회 비행을 했다. 홍도는 전국에 흩어진 괭이갈매기 2만 마리가 몰려들어 번식하는 무인도다. 괭이갈매기는 이곳에서 암·수컷들의 번식 준비와 짝짓기, 포란, 부화 그리고 새끼들의 비행 연습 등으로 일년의 절반 이상을 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생명]홍도 괭이갈매기 애정촌
▶ 매년 4~5월 일본 쓰시마섬이 보이는 경남 통영의 무인도 ‘홍도’에서는 괭이갈매기들의 ‘애정촌’이 열립니다. 전국의 괭이갈매기들이 몰려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습니다. 어미와 아비는 번갈아 알을 품고 먹이를 구해옵니다. 홍도에 도착했을 때 마침 올해 첫 새끼 괭이갈매기가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전국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는 괭이갈매기들의 일생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고깃배 쫓고 새우깡 받아먹던
전국 항구의 갈매기가 사라졌다
경남 통영 무인도 홍도로
짝짓기하러 집단이주 떠났다 갈매기가 주인인 섬에
이방인인 인간이 들어서자
똥 공격이 날아들었다2만마리 갈매기군단 이뤄
천적 모두 몰아낸 섬엔
새끼들 무럭무럭 자라고… 우두둑 똥이 떨어졌다. 낯선 존재가 침입하자 귀찮은 듯 공중으로 비상한 갈매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선회 비행을 했다. 노란 오물과 동물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갈매기 우는 소리로 귀가 멍멍했다. 15일 경남 통영시의 무인도 홍도. 하늘과 땅을 하얀 갈매기가 뒤덮었다. 지도에서 경남 거제도에서 일본 쓰시마섬까지 일직선을 그어보자. 중간 지점에 홍도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성채처럼 솟은 섬. 1998년 마지막 등대원이 떠난 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홍도의 주인은 괭이갈매기 2만 마리(추산) 그리고 거기에 붙어사는 매 1~2마리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의 권영수 박사가 말했다. “사람 위에서 오물을 뿌리는 게 공격의 표시예요. 새끼가 갓 생겨 공격적인 괭이갈매기는 사람 머리를 툭툭 치고 지나가기도 하는데… 뭐 맞을 만해요.” 북극제비갈매기처럼 부리로 머리를 쪼지 않으니, 그래도 괭이갈매기는 신사적인 새다. 우비 한 장이면 괭이갈매기를 대적하는 데 충분하다.(북극의 조류 연구자들은 무거운 헬멧을 착용한다.) 서남쪽에 보인다는 쓰시마섬은 안개 때문에 흐릿했다. 이 섬에서 갈매기는 주류였고, 사람은 비주류였다. 갈매기들은 이방인 따위에 겁먹지 않았다. ‘이 섬은 내 땅’이라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이들이 뿌리는 똥은 공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욕설과 야유에 가까웠다. 매 한 마리 있지만 갈매기한테 꼼짝 못해 괭이갈매기는 당신 기억 속에 있는 그 갈매기다. 전국 항구와 바다마을을 점령한, ‘새우깡 받아먹는’ 바로 그 갈매기다. 다음에 갈매기를 목격하면, 찬란한 은빛 배에 현혹되지 말고, 초점을 맞춰 부리 끝을 관찰하라. 코끼리 상아처럼 유연한 곡선의 부리는 세 가지 빛깔의 무지개다. 노란색 부리의 몸통 끝에 검은색 그리고 빨간색이 스타카토처럼 빛난다. 새우깡을 받아먹을 때는 도도한 들고양이 같았는데, 2만 마리가 입주한 홍도에서는 하나같이 공포의 성을 점령한 변신 마법사들 같았다. 섬에 내리니 펼쳐진 풍경은 기괴함과 공포였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처럼 갈매기는 계속 선회 비행을 하며 침입자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땅 아래는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머리가 뜯긴 갈매기의 사체, 미처 부화하지 못하고 껍질 속에서 밤톨처럼 죽은 새끼 등 살아남지 못한 자들도 널렸다. 이것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힘겨운 투쟁의 증거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괭이갈매기들이 홍도로 몰려와 번식을 한다. 주변에서 짝짓기를 해도 되는데, 이토록 먼 바다까지 날아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추정한다. 무인도에서는 고깃배를 쫓아다니지도 못하고 새우깡을 받아먹지도 못하지만, 최대 장점은 안전하게 번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만 마리가 뭉쳐 천적에 대항하는 ‘갈매기의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다. 최대 천적인 사람도 없을뿐더러 알을 훔치고 새끼를 낚아채는 맹금류와 들짐승도 ‘갈매기 대군단’에 배겨나질 못한다. “갈매기 말고 홍도에 사는 유일한 동물이 매입니다. 며칠 쉬다 가는 철새들을 공격하지, 갈매기에겐 쉽게 접근 못해요. 단체로 몰려가 쫓아내거든요. 들고양이 한 마리도 돌아다녔는데, 3년 전부터 안 보여요. 여기서 버텨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등대로 올라가는 시멘트 계단 위에도 갈매기들은 둥지를 틀고 있었다. 물기가 채 빠지지 않은 새끼 두 마리가 쪼르르 걸어갔다. 권 박사가 “올해 처음 보는 새끼들이다. 알을 깨고 나온 지 사나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안 돼 흥미로운 광경이 포착됐다. 일행이 다가가자 두 마리 새끼를 품던 어미가 날갯짓을 하며 1~2미터 물러섰다.(홍도의 갈매기들은 절대 멀리 도망치지 않는다.) 두 마리 새끼는 어미가 사라지자 허둥지둥 헤맸다. 그중 한 마리가 약 50㎝ 떨어진 이웃 둥지로 걸어갔다. 거기서 알을 품던 이웃 어미는 이 새끼를 바라보더니 날개를 펴고 받아들였다. 새끼는 이웃 어미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권 박사가 말했다. “음… 얘네들은 이상하네요. 보통 다른 새끼가 자기 둥지로 오면 극심하게 쪼아 죽입니다. 그래서 새끼 때 갈매기들이 많이 죽지요.” 동물의 세계는 알 수 없다. 자기 새끼를 살려서 섬에서 내보내기 위한 생존경쟁이 극심하지만 때로는 동정과 연대의 행동도 관찰된다. 권영수 박사는 1997년 처음 조사를 시작한 이래 매년 번식기 때마다 홍도를 찾았다. 텐트를 치고 석 달 동안 산 적도 있었다. “매년 똑같은 자리에서 둥지를 틀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어느 놈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잘 알아요. 암컷과 수컷의 부부관계도 지속돼요(일부일처제). 가끔 바뀌는 커플도 있는데, 그때는 아마 한쪽이 죽어서 그랬겠죠?” 그런데 올해 평소 등대 옆에서 둥지를 틀던 한 쌍이 오지 않았다.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다리가 잘려서 평소 애틋하게 지켜보던 커플이었다. 2002년부터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도래했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번식능력이 다해서 오지 않았든지 아니면 뭍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든지.
서식지와 번식지 오가는 과정은 미스터리
권 박사팀은 올해 초 ‘큰 발견’을 했다. 홍도에 괭이갈매기가 도래하는 첫 시점을 알아낸 것이다. 괭이갈매기는 보통 4월께 홍도에 들어왔다가 5월에 포란, 부화를 하고 7~8월께 육지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섬에 설치한 녹화 카메라가 알려준 바는 달랐다. 권 박사가 말을 이었다.
“한겨울인 1월5일, 마치 가창오리가 군무를 하듯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집단적으로 섬으로 건너왔어요. 그렇게 일찍 올 줄 몰랐습니다. 일단 섬에 건너와서 주변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거예요.”
그는 “동시에 왔다”는 말을 서너번 더 했다. 그러니까 그 많은 갈매기가 어느 시점에 모여서 동시에 섬에 착륙한 것이다. 흩어져 있던 갈매기들이 말이다.
괭이갈매기들의 주거지는 전국 항구와 마을이다. 그렇게 흔한 갈매기들이 번식기가 되면 자신의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중 한 곳이 홍도다. 이밖에 알려진 대규모 번식지는 칠산도(전남 영광), 난도(충남 태안), 독도(경북 울릉) 등 세 곳이 있다. 독도를 빼곤 모두 무인도다. 군소 번식지 여러 곳에서도 갈매기들이 번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전국의 괭이갈매기들은 봄~초여름 사이에 일제히 사라지는 걸까. 권 박사가 말했다.
“자세히 보세요. 번식기가 되면 전국 항구의 괭이갈매기가 잘 안 보여요. 서울 한강에서 보이던 괭이갈매기도 싹 없어지죠. 그러곤 10월에 다시 나타났다가 이듬해 초에 다시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다. 괭이갈매기의 서식지와 번식지는 알지만, 갈매기들이 두 곳을 어떻게 오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를테면 어느 곳에 사는 갈매기들이 어디에서 한 집단으로 뭉쳐 바다를 건너오는지, 어떤 신호에 의해 ‘준비 땅’ 하고 번식지로 이동을 시작하는 건지 아니면 날씨와 기온에 따라 본능적으로 몰려오는 건지 등 모르는 게 아직도 많다. 전국에 흩어진 괭이갈매기가 먼바다 외로운 섬들로 드나드는 과정은 가설조차 세우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다.
국립공원연구원 등은 홍도에 들어온 괭이갈매기 수백 마리에 가락지를 부착해 날려 보냈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상태다. 전국 항구와 해안에 갈매기가 워낙 많으니 잘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권 박사는 “홍도 건너편 거제시 다대리와 인천시 백령도에서 각각 발견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섬에선 부부생활, 뭍에선 별거?
괭이갈매기 미스터리 괭이갈매기의 생활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 최근 미스터리 하나가 풀렸다. 그동안 전국 해안가의 괭이갈매기가 연초에는 줄어들었는데 과연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갈매기 전문가들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추위를 피해 일본 등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추정도 있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경남 통영시 홍도에 설치된 무인카메라로 조사한 결과, 괭이갈매기는 올해 1월5일 번식지인 홍도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번식기 직전인 4월이 되어야 홍도에 들어와 넉 달을 머문 뒤 8월께 서식지인 전국의 해안가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권영수 박사(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장)는 “칠산도, 난도, 독도 등 다른 대규모 번식지의 경우도 시기가 약간 다르겠지만 비슷할 것”이라며 “우리 생각보다 훨씬 일찍 번식지에 도착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풀린 미스터리는 또다른 미스터리를 낳았다. 도대체 왜 괭이갈매기들은 번식기보다 넉 달이나 앞서 번식지인 홍도에 들어왔을까? 1월 중순 홍도에 도착한 괭이갈매기들이 둥지를 세우고 정착한 시점은 약 석 달이 지난 4월13일이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둥지 정착 직전까지 괭이갈매기들은 섬에 앉았다가 주변 바다로 먹이활동을 하러 나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권영수 박사는 “괭이갈매기 2만 마리가 집단적으로 그런 행동을 보였다. 육지에 있으면 먹을 게 많은데도 석 달이나 미리 번식지에 도착한 것은 신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갈매기들의 이런 집단행동의 목적은 알 수 없다. 굳이 추정해본다면 괭이갈매기가 미리 와서 일년 전 번식지를 확인한 뒤 짝을 만나고 둥지를 재보수하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고 권 박사는 덧붙였다. 괭이갈매기 사회는 일부일처제다. 한번 배우자를 만나면 번식에 실패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하지 않는 한 매년 동일한 짝과 번식한다. 홍도의 둥지를 관찰해보면, 매년 똑같은 짝이 똑같은 자리로 도래해 알을 품는다. 그럼, 홍도에서 번식을 마친 괭이갈매기의 짝은 뭍에 있는 서식지에서도 같이 다닐까? 이 또한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권영수 박사는 “번식을 마치고 홍도를 떠난 뒤엔 암컷과 수컷이 제각기 다른 곳에 갔다가 이듬해 홍도에서 다시 재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에서 연구된 다른 갈매기과 조류의 경우 서식지에서 헤어졌다가 번식지에서 재회하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통영 홍도/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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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갈매기 미스터리 괭이갈매기의 생활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 최근 미스터리 하나가 풀렸다. 그동안 전국 해안가의 괭이갈매기가 연초에는 줄어들었는데 과연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갈매기 전문가들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추위를 피해 일본 등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추정도 있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경남 통영시 홍도에 설치된 무인카메라로 조사한 결과, 괭이갈매기는 올해 1월5일 번식지인 홍도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번식기 직전인 4월이 되어야 홍도에 들어와 넉 달을 머문 뒤 8월께 서식지인 전국의 해안가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권영수 박사(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장)는 “칠산도, 난도, 독도 등 다른 대규모 번식지의 경우도 시기가 약간 다르겠지만 비슷할 것”이라며 “우리 생각보다 훨씬 일찍 번식지에 도착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풀린 미스터리는 또다른 미스터리를 낳았다. 도대체 왜 괭이갈매기들은 번식기보다 넉 달이나 앞서 번식지인 홍도에 들어왔을까? 1월 중순 홍도에 도착한 괭이갈매기들이 둥지를 세우고 정착한 시점은 약 석 달이 지난 4월13일이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둥지 정착 직전까지 괭이갈매기들은 섬에 앉았다가 주변 바다로 먹이활동을 하러 나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권영수 박사는 “괭이갈매기 2만 마리가 집단적으로 그런 행동을 보였다. 육지에 있으면 먹을 게 많은데도 석 달이나 미리 번식지에 도착한 것은 신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갈매기들의 이런 집단행동의 목적은 알 수 없다. 굳이 추정해본다면 괭이갈매기가 미리 와서 일년 전 번식지를 확인한 뒤 짝을 만나고 둥지를 재보수하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고 권 박사는 덧붙였다. 괭이갈매기 사회는 일부일처제다. 한번 배우자를 만나면 번식에 실패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하지 않는 한 매년 동일한 짝과 번식한다. 홍도의 둥지를 관찰해보면, 매년 똑같은 짝이 똑같은 자리로 도래해 알을 품는다. 그럼, 홍도에서 번식을 마친 괭이갈매기의 짝은 뭍에 있는 서식지에서도 같이 다닐까? 이 또한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권영수 박사는 “번식을 마치고 홍도를 떠난 뒤엔 암컷과 수컷이 제각기 다른 곳에 갔다가 이듬해 홍도에서 다시 재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에서 연구된 다른 갈매기과 조류의 경우 서식지에서 헤어졌다가 번식지에서 재회하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통영 홍도/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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