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반려동물과 사는 일은 행복한데 왜 내 칼럼은 만날 우울하고 피로감을 몰고 다닐까. 아무래도 유기, 학대, 식용 등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많아 대변인 노릇을 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행복감 충만한 일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일어서는데 누군가 그랬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었네.” 아직 반려동물과 사는 행운을 못 만난 분이구나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웃기, 놀기, ‘멍 때리기’ 등 정신활동 최고의 경지인 무념무상의 달인이 바로 ‘멍 선생’인 반려동물인 것을.
반려동물과 살다 보면 도덕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생각했다가(사실 인간이 고등동물이라고 우쭐했던 게지) 그들도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른 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유기동물, 실험실이나 농장의 동물은 물론 관심 없었던 인간 사회의 다른 약자에게까지 연민이 퍼지게 된다. 밀란 쿤데라도 한 인간의 도덕성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인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선진국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반려인구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만큼 버려지는 동물도 많지 않겠느냐고 지레 걱정을 한다. 물론 역기능도 있겠지만 순기능이 많을 것이다. 충분히 긍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춘 존재들이니까.
고맙게도 최근 반려인의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제 개랑 살아”, “고양이 입양했어요” 하며 휴대폰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 휴대폰 사진을 내밀며 강아지 자랑을 하던 지인은 두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엄마다. 친정엄마는 두 아이 맡는 것도 힘든데 ‘개××’까지 맡기느냐며 처음에는 펄펄 뛰셨다고 한다. 하지만 멋대가리 없는 사내 녀석들만 돌보다가 사랑 넘치는 반려견과 살다 보니 몇 달 사이에 홀딱 빠지셔서 불평은커녕 개 대변자가 되셨단다. “사람은 세 끼 먹으면서 야박하게 개는 왜 두 끼만 주라고 하냐? 나는 세 끼 줄란다.” 고양이와는 절대 살지 않겠다던 우리 엄마가 종종 고양이 앞에서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사랑해”를 남발하는 모습과 겹친다.
지인의 친정엄마가 반려동물과 살기 기초과정 중이라면 몇 년째 반려동물과 사는 후배는 이제 초급을 지나 중급으로 갈 시기였다. 그래서 먹을거리에 대해 넌지시 말을 붙였다. “사료도 좋지만 가끔은 직접 만들어서 먹이면 개가 건강해져.” 아이 둘의 엄마로 엄마, 주부, 직장인의 역할을 해내는 ‘생계형’ 슈퍼우먼인 후배가 쏘아붙였다. “선배, 나는 인간용 사료가 있으면 우리 가족도 사료 먹였으면 좋겠는 사람이야.” 워워, 선행학습은 부작용을 부른다.
반려인에게 공공의 적은 중년의 남자다. ‘살아온, 알아온’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꿀 의지가 가장 미약한 인간군. 얼마 전 우리 집과 맞닿은 축대 위에서 나무를 정리하던 아저씨들이 마당에서 길고양이들과 노닥거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끼어든다. “거, 고양이들 다 임신한 거요?” 헉, 온통 중성화 수술을 한 녀석에, ‘상남자’인 수컷들에게 임신이라니. 잔뜩 경계하며 변명을 하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아저씨들끼리 수다다. 키우는 고양이가 추우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푸념,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버리려고 했다가 키웠는데 지금은 귀가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서 반긴다는 이야기 등등. 중년의 아저씨들이 동물 얘기로 수다를 떨다니 반려인으로 가득 찬 유토피아가 멀지 않았구나.
몇 해 전 가을, 함께 사는 개, 고양이와 함께 골목 산책을 나갔다. 슬렁슬렁 걷는데 바람이 휙 불었다.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려다가 두 녀석이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따라 봤더니 색색의 나뭇잎이 춤을 추듯 흩날렸다. ‘아, 행복하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구나, 행복도 천국도 찰나구나. 두 녀석이 아니었다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묻었을 것이다. 삶의 작은 즐거움에 두려움 없이 몸을 맡기는 존재들. 그래서 나처럼 삶이 서툰 사람들은 이들 곁에 꼭 붙어살아야 한다.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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