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제주도 축산진흥원이 운영하는 제주시 용강동의 마방목지 숲에 서 있던 노루가 인기척에 놀라 쳐다보고 있다. 서귀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제주도 야생노루 추적기
| |
18일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남시험림에서 권진오 박사(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어린 묘목의 노루 뿔질 피해를 방지하는 플라스틱필름을 보여줬다. 강재훈 선임기자
1만7756마리 노루 세상
고구마, 콩밭 파헤친 죄 물어
제주도의회 유해조수로 지정
부정적 이미지에 포획 늘지도 한남시험림서 노루 찾아 삼만리
어린 묘목 죽이는 주범이지만
보호대 둘러 함께 살아가
GPS 추적하니 집 주위만 빙빙
카메라 들이대면 짖으며 줄행랑 새끼를 보살피는 암컷은 특이한 행동을 나타냈다. 지난해 5월9일 포획돼 방사된 5947번은 일주일 만에 새끼를 낳았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김은미 박사는 “새끼를 낳기 전에는 임의로 돌아다녔는데, 새끼 낳고서는 새끼를 특정 공간에 은신시켜 두고서 그 지점을 중심으로 오갔다”고 말했다. 4208번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수목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그물형 울타리에 뿔이 걸린 노루를 구조해 돌려보냈는데, 또다시 걸리고 말았다. 마침 그때가 추석 연휴라서 사람이 적었던지라 그물에 걸린 노루는 발견되기 전에 숨졌다. 6월13일 서귀포시험림에서 포획돼 방사된 5772번은 석달 뒤 서귀포시 상효동 서귀포충혼묘지 주변에서 신호가 두절됐다. 연구팀이 이 일대 500m를 찾아봤지만 노루는 보이지 않았다. 권 박사가 말했다. “이런 일이 흔해요. 로드킬(동물 찻길 사고)을 당한 노루를 금방 사람들이 실어가거든요.” 제주도는 노루를 엄격하게 포획, 관리할 방침이다. 한상기 제주도 환경자산보전과 계장은 25일 “노루는 제주도의 상징동물이고 도민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라며 “총으로 포살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해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곳을 두 곳(제주 및 서귀포) 시범사업지로 선정해 노루를 제주시의 노루생태관찰원과 2015년 완공될 새 시설로 이주시킬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유해조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얻은 뒤 발생하는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영웅 제주환경연합 사무국장이 말했다. “분위기가 이러니 일반인들이 여기저기서 올무나 덫 놓고 그럴까봐 걱정이지요. 사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잡고 있어요. 총을 이용한 밀렵도 이뤄지고, 그물에 걸린 노루를 잡아먹기도 하고요.” ‘포획 뒤 이주’라는 제주도 대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노루는 특정 지역의 노루를 없애면 다른 영역의 노루가 치고 들어오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20년 이상 제주 노루를 연구해온 오장근 한라산연구소 연구원은 “다른 지역의 노루들이 새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 한남시험림과 중산간을 돌아다니면서 노루 여남은 마리를 관찰했다. 많이 봤지만 자세히 관찰하진 못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노루들은 후퇴한 뒤 ‘컹컹’ 짖어댔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꼈을 때 노루가 내는 전형적인 소리다. 19일 중산간의 제주도 축산진흥원 목마장에서 노루를 쫓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노루 사진 많이 찍었느냐고 물어봤다. “아니오.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때 노루가 저만치 도망갔다. “저놈도 며칠 전 총을 든 사람을 봤을 거예요. 그러니까 도망가지. 카메라가 총처럼 생겼잖아.”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