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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내가 유해동물? 도망만이 살길이야

등록 2013-03-29 20:49수정 2013-03-30 09:19

19일 제주도 축산진흥원이 운영하는 제주시 용강동의 마방목지 숲에 서 있던 노루가 인기척에 놀라 쳐다보고 있다. 서귀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9일 제주도 축산진흥원이 운영하는 제주시 용강동의 마방목지 숲에 서 있던 노루가 인기척에 놀라 쳐다보고 있다. 서귀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제주도 야생노루 추적기

▶ 한겨울 노루 떼가 민가로 내려오면 마을사람들은 몽둥이로 때려잡았습니다. 사냥총과 올가미 등을 이용한 밀렵으로 노루는 한때 멸종위기 근접선까지 떨어졌다가 1980년대 이후 먹이주기, 밀렵방지 캠페인으로 1만마리 이상으로 불었습니다. 동시에 과거 야생동물의 천국이던 중산간은 목장과 임야로 개발됐습니다. 노루는 한라산 아래로 내려오고 인간은 한라산 위로 올라갑니다. 조그마한 섬 제주도에서는 지금 인간과 노루의 ‘영역 전쟁’이 한창입니다.

제주도의 생태계는 육지와 다르다. 예부터 호랑이나 반달가슴곰 등 맹수가 살지 않았다. 육지의 골칫덩어리 고라니도 없다. 멧돼지는 1900~30년 사이에 멸종됐다가 2004년 처음으로 발견됐다.

제주도가 이렇게 다른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번성한 동물이 있다. 노루다. 노루는 포식자의 위협과 경쟁자 없는 무주공산에서 번성을 구가했다.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의뢰로 오홍식 제주대 교수(과학교육)가 2011년 추정한 노루의 개체 수는 1만7756마리. 2000년대 들어 농민들은 노루가 들끓는다며 항의를 시작했다. 노루가 고구마, 콩, 배추 밭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결국 2월28일 제주도의회는 노루를 ‘유해조수’로 지정하는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5일 제주도에 가기 전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루를 보고 싶은데요.”

“노루 생태관찰원에 가 봐요.”

“아니, 거기 말고요. 동물원 같잖아요. 진짜 야생 노루를 보고 싶다고요. 야생 노루!”

“야생 노루?”

“네. 그러니까 어디 가면 볼 수 있죠?”

“음. 글쎄….”

모두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러던 중 국립산림과학원 산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권진오 박사가 ‘이리 오라’고 자신있게 소리쳤다. “우리 연구소가 관리하는 한남시험림 주변에만 대충 40~50마리 삽니다. 순찰을 돌다 보면 한번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쉽지 않았다. 18일 오후 우리들은 1시간째 노루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평소 노루가 ‘상존한다’는 한남시험림 주변 목장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했으나, 노루는 이날 ‘부재중’이었다. 이번엔 한남시험림 숲 임도를 따라 노루를 찾아 헤맸다. 나무 빽빽한 등성이에서 노루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갓 나기 시작한 뿔에 하얀 엉덩이.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자 노루는 몸을 돌리고 숲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노루를 몇 마리 봤지만, 사람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았다. 노루가 설정한 경계 거리는 대략 50m 정도였다. 몸을 숙이고 낮은 포복을 해도 노루는 이내 내뺐다.

18일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남시험림에서 권진오 박사(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어린 묘목의 노루 뿔질 피해를 방지하는 플라스틱필름을 보여줬다. 강재훈 선임기자
18일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남시험림에서 권진오 박사(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어린 묘목의 노루 뿔질 피해를 방지하는 플라스틱필름을 보여줬다. 강재훈 선임기자
지난해부터 권진오 박사팀은 노루를 연구하고 있다. 사실 한남시험림도 노루 때문에 골탕을 먹는 참이었다. 권 박사가 갓 심은 어린 묘목을 보여주었다. 줄기에 오목한 상처가 나 있다. “노루가 뿔질을 하거든요. 뭐, 우리 시험림 안 묘목은 노루에 다 상납했다고 봐야지.”(웃음)

연구소는 고육지책으로 노루의 뿔질 피해를 막는 도구 개발에 나섰다. 묘목 지대를 둘러 울타리를 쳐보고, 묘목마다 철제 보호대를 싸보기도 했다. 가장 효과가 좋아 현재 사용하는 것은 플라스틱 필름이다. “하지만 송악은 안 거둬요. 노루 좋아하니까 먹으라고 놔둬요. 어차피 숲이 노루와 함께 사는 거니까요.”

숲을 보호하려면 먼저 노루를 알아야 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노루 6마리를 포획해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 목걸이를 채워 돌려보냈다. 놀랍게도 노루는 멀리 이동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터를 철저히 지키는 ‘영역동물’이었다. 작게는 1㎢ 안에 머물렀고 넓어야 4㎢를 넘어서지 않았다. 동네 안을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맹수 위협 없는 제주 땅은
1만7756마리 노루 세상
고구마, 콩밭 파헤친 죄 물어
제주도의회 유해조수로 지정
부정적 이미지에 포획 늘지도

한남시험림서 노루 찾아 삼만리
어린 묘목 죽이는 주범이지만
보호대 둘러 함께 살아가
GPS 추적하니 집 주위만 빙빙
카메라 들이대면 짖으며 줄행랑

새끼를 보살피는 암컷은 특이한 행동을 나타냈다. 지난해 5월9일 포획돼 방사된 5947번은 일주일 만에 새끼를 낳았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김은미 박사는 “새끼를 낳기 전에는 임의로 돌아다녔는데, 새끼 낳고서는 새끼를 특정 공간에 은신시켜 두고서 그 지점을 중심으로 오갔다”고 말했다.

4208번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수목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그물형 울타리에 뿔이 걸린 노루를 구조해 돌려보냈는데, 또다시 걸리고 말았다. 마침 그때가 추석 연휴라서 사람이 적었던지라 그물에 걸린 노루는 발견되기 전에 숨졌다.

6월13일 서귀포시험림에서 포획돼 방사된 5772번은 석달 뒤 서귀포시 상효동 서귀포충혼묘지 주변에서 신호가 두절됐다. 연구팀이 이 일대 500m를 찾아봤지만 노루는 보이지 않았다. 권 박사가 말했다. “이런 일이 흔해요. 로드킬(동물 찻길 사고)을 당한 노루를 금방 사람들이 실어가거든요.”

제주도는 노루를 엄격하게 포획, 관리할 방침이다. 한상기 제주도 환경자산보전과 계장은 25일 “노루는 제주도의 상징동물이고 도민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라며 “총으로 포살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해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곳을 두 곳(제주 및 서귀포) 시범사업지로 선정해 노루를 제주시의 노루생태관찰원과 2015년 완공될 새 시설로 이주시킬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유해조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얻은 뒤 발생하는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영웅 제주환경연합 사무국장이 말했다. “분위기가 이러니 일반인들이 여기저기서 올무나 덫 놓고 그럴까봐 걱정이지요. 사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잡고 있어요. 총을 이용한 밀렵도 이뤄지고, 그물에 걸린 노루를 잡아먹기도 하고요.”

‘포획 뒤 이주’라는 제주도 대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노루는 특정 지역의 노루를 없애면 다른 영역의 노루가 치고 들어오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20년 이상 제주 노루를 연구해온 오장근 한라산연구소 연구원은 “다른 지역의 노루들이 새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 한남시험림과 중산간을 돌아다니면서 노루 여남은 마리를 관찰했다. 많이 봤지만 자세히 관찰하진 못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노루들은 후퇴한 뒤 ‘컹컹’ 짖어댔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꼈을 때 노루가 내는 전형적인 소리다. 19일 중산간의 제주도 축산진흥원 목마장에서 노루를 쫓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노루 사진 많이 찍었느냐고 물어봤다.

“아니오.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때 노루가 저만치 도망갔다.

“저놈도 며칠 전 총을 든 사람을 봤을 거예요. 그러니까 도망가지. 카메라가 총처럼 생겼잖아.”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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