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종종 동물 관련 기사를 보며 생각한다. 분석도 없고, 해법도 없는 기사. 특히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제목은 지겨울 정도다. 동물들의 몸값이 비싸도, 병원비가 비싸도, 명품 브랜드의 반려동물 용품의 출시됐을 때도 제목은 온통 ‘개 팔자가 상팔자’이고, 기사 내용은 자기표절에 가깝게 반복된다.
물론 나도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느낀 적이 많다. 나는 우리 개가 10살쯤 되면 마감 때 내 대신 의자에 앉아 키보드라도 두드려줄 줄 알았다. 벌어 먹이고 온갖 수발 다 했는데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새벽까지 일하는 내 뒤에 벌러덩 누워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기 일쑤다. 덩달아 고양이는 책상 위에 뛰어올라 와서 아예 키보드를 깔고 누워버린다. 이런 젠장. 니들 팔자가 상팔자 맞구나.
똥줄 빠지게 바쁜 날이면 불쑥 찾아드는 부러움에 내가 그들의 팔자가 상팔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사 속 상팔자는 주로 돈과 관련이 많다. 나의 표현이 애정이 담긴 것이라면, 기사는 대부분 동물과 반려인을 희화화하고 조롱한다. 제대로 된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와 변해가는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분석 기사를 찾기가 어렵다.
‘개 팔자가 상팔자’ 류의 기사에 최근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개 유치원’이다. 비용과 상관없이 개 유치원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벌써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개에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을 시키지 않는 무책임한 반려인 문화와 개들의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개 운동장 하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반려인이 관심을 갖고 잘 교육시키면 수십만원이라고 기사에 나온 청담동 개 유치원 따위는 보내지 않아도 된다.
미용도 오해가 많다. 야생의 개는 미용 없이도 살았다. 하지만 인간이 보기 좋으라고 털이 긴 장모종을 만들어내면서 정기적으로 털을 자르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됐다. 그러니 동물 미용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수제간식과 비싼 사료 또한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한 변화다. 값싼 사료, 간식은 사람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와 같다. 매일 패스트푸드 먹이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랄 수 없지 않나. 또한 수백만원짜리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소개하기 전에 매장은 불법, 쓰레기봉투에 넣는 게 합법인 현행 반려동물 사체 처리 문제를 다뤄보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소형견의 화장 비용은 대체로 20만원 내외이다.
엠아르아이(MRI), 시티(CT) 등 검진비를 비롯한 고액의 의료비도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보험이 없는 반려동물 진료비는 반려인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지만 관점이 다르다. 사람도 감기 걸리면 동네 병원에 가다가도 큰 병 걸리면 대형병원을 찾듯, 동물도 그래야 하지 않나. 10년 전쯤 반려견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종합병원이라는 곳에 가서도 원인을 못 찾아 쩔쩔맸다. 그때 의사가 그랬다. “현재 우리나라 수준이 이렇습니다. 시설도 부족하고, 원인을 찾아도 뇌쪽이면 수술할 의료진이 없어요.” 그냥 죽기를 기다리라는 말 같아서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희망을 걸어볼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지키고픈 생명이 있다면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반려동물 병원비를 다루고 싶다면 부가가치세 문제를, 동물병원에 대해 다루고 싶다면 프랜차이즈화되는 최근의 동물병원의 지형 변화가 대기업의 골목 상권 진입과 같은 모습이 아닌지 알아보는 게 맞을 것이다.
미디어가 반려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티브이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정 여사 수준이다. 언제쯤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희화화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줄까. 최근 한 언론사의 외부 필자는 글에서 좋은 개를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가격이 낮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썼다. 글쓴이의 표현력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문제의식 없이 활자화하는 언론의 생명의식 수준도 함께 봤다. 그럴 때면 소리치고 싶다. “브라우니, 물어!”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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