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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길고양이 심야식당

등록 2013-01-11 21:04

출판인 김보경
출판인 김보경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엄마는 겨울에 들어설 때면 늘 ‘없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계절이 왔네’ 한다. 그런데 올해는 더 혹독하다. 새해 첫날에도 새벽에 눈이 많이 내려 신정 쇠는 큰집인 우리 집에 오는 친척들이 아침부터 고생을 했다. 친척들이 돌아가고 마침내 찾아온 평화의 밤. 자기 전에 창고에서 자는 길고양이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뜨거운 물을 담은 통을 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또 눈이 내리고 있다. 그런데 쌓인 눈 위로 난 고양이 발자국.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눈 오는 이 밤에 밥을 찾아 왔을까.’

빗자루를 들고 마당의 눈을 쓸기 시작했다. 밤늦게 찾아온 고양이 손님들 발이라도 시리지 말라고. 눈을 탁탁 털며 들어오니 엄마가 오밤중에 왜 눈을 쓸고 난리냐고 묻는다. 추운데 눈 맞으면서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가 마음 아프다고 했더니 엄마는 추운데 언제라도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다. 아, 역시 엄마는 인생의 고수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이 배가 고플 때 ‘언제라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길고양이 심야식당이 되자고 새해 포부를 다졌다.

최근 길고양이 식당이 꽤 많이 문을 열었다. 심야식당, 24시간 식당, 이동식 식당 등. “저도 길냥이들 밥 챙겨요”라는 고백이 넘친다. 확실히 캣맘이 늘어난 걸 체감한다. 물론 여전히 캣맘의 속은 애면글면하다. 기껏 챙긴 길고양이 밥을 날마다 길에다 쏟아붓는 사람들 때문에 속을 썩고, 밥 주던 길고양이가 아픈 것 같더니 끝내 떠나버려 눈물바람에, 밥이 안 줄어도 걱정, 밥이 모자라도 걱정. 사서 하는 마음고생이라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마음끼리 자꾸 뭉친다. 지난 연말 고양이 시인이라 불리는 황인숙 선생님이 사람들을 모았다. 다친 길고양이의 치료비를 위해 아는 사람들끼리 매달 돈을 걷어서 모아두자는 것이다. 일종의 ‘길고양이 치료비 두레’인 셈. 이것을 최초로 제안한 분은 수중에 돈이 정말 없던 어느 날 길에 길고양이가 다쳐서 쓰러져 있는데 순간 고민했단다. 구조할지 말지.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 돈 때문에 망설였던 그 마음이 미안해서 제안하게 됐다고. 다친 길고양이를 보며 다들 한번씩은 해봤을 고민에 선뜻 뭉쳤다.

지난해 티엔아르(TNR·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시술을 마친 뒤 원서식지에 방사하는 관리 프로그램)를 마친 새끼 고양이가 삼청동에 버려져 죽은 사건 이후 우리 동네 종로구 캣맘도 뭉쳤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선생님이 말한 좋은 삶의 기준 중 하나는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였다. 우리는 모여서 ‘지역사회 길고양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로 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버스에 탄 고양이의 모습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길고양이가 종점에서 탔는데 날씨가 춥다 보니 기사님이 계속 태우고 다니는 중이라고. 혹한에 길고양이에게 무임승차를 허락한 기사님과 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우리 사회의 길고양이에 대한 배려 온도가 좀 높아졌나 싶다. 언젠가 매일 아침 같은 버스를 타고 생선가게로 출근하는 런던의 길고양이 기사를 보고 부러웠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며칠 전 라디오에서는 출근하려는데 차 엔진룸에 길고양이가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했다는 사연도 소개됐다.

날씨는 춥지만 난데없는 따뜻한 소식들에 녹진녹진해진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한다. 이 분위기가 쭉 이어져 올 한해 길고양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기를. 전국의 길고양이 식당도 대박나기를!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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