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혹한을 나무껍질 속에서 어른벌레 상태로 나는 거저릿과 딱정벌레 우피스 세람보이데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물연구소 제공
[토요판/생명]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항온동물인 인간은 추위에 매우 약하다. 체온이 2도만 떨어져도 저체온증이 시작된다. 열이 쉽게 빠져나가는 물속에서는 더 취약하다. 10도는 땅 위에선 버틸 만한 온도이지만 그런 물에서 1시간만 있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빙점의 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물에 빠진 사람들은 15~30분 만에 대부분 사망했다.
하지만 영하의 물속에서 거뜬히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다. 남극이빨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바다에 사는 물고기이다. ‘메로’라고도 불리는 파타고니아이빨고기와 사촌쯤 된다. 길이 2m, 무게 150㎏에 50살까지 사는 이 물고기는 수심 2000m의 차고 캄캄한 심해에서 6초에 한번씩 심장을 박동하며 느릿느릿 산다.
이 물고기의 몸에는 항동결 단백질이 있다. 빙점 이하 온도가 치명적인 까닭은 몸속의 수분이 얼면서 세포 안 용액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세포막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백질은 얼음 결정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거나 얼음이 생기더라도 큰 덩어리로 뭉치지 못하도록 해준다.
흔히 얼음이 얼지 않도록 하려면 빙점을 낮추는 방법을 쓴다. 눈 온 비탈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해 뿌리는 제설제나 자동차의 부동액은 액체에 ‘소금기’를 넣어 어는 온도를 낮추는 보기이다.
하지만 항동결 단백질은 자동차보다 한 차원 높다. 극히 적은 양의 특수 단백질로 얼음 결정 표면의 구조를 바꾸어 결빙을 막는다. 항동결 단백질의 존재는 북극 물고기에서 이미 1950년대에 알려졌지만, 분자 차원의 원리를 규명하는 작업은 요즘 한창이다. 이식용 장기의 보관시간을 늘리는 등 응용분야가 넓다.
항동결 단백질을 보유하는 생물은 남·북극의 물고기 말고도 곤충, 박테리아, 곰팡이, 빙산 틈바구니에 사는 규조류 등에서 발견됐다. 포유류에도 이 단백질이 있어 세포의 동해를 막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동물은 곤충이다.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의 추운 지방에 사는 희귀한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한겨울에 알에서 깨어나는데 항동결 물질 덕분에 영하 27도에도 살아남는다.
아마도 추위를 이기는 챔피언은 알래스카 딱정벌레일 것이다. 이 딱정벌레는 어른벌레 상태로 영하 60도까지 견딘다. 특히 다른 동물과 달리 항동결 물질이 단백질이 아닌 당분과 지방산으로 이뤄진 ‘자일로마난’이란 전혀 새로운 물질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이 곤충은 산불로 그을린 자작나무 둥치에서 번식하는데, 산불을 통제하면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남극이빨고기가 속한 남극암치과의 물고기도 남극이 따뜻하던 시절에 살던 종이 수백만년 동안 추위에 적응해 100여종으로 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람 등 포유류는 체온을 유지한 덕분에 대부분의 변온동물이 포기한 추운 곳을 정복해 나갔다. 하지만 체온 유지에 실패하는 순간 치명적 위기가 찾아오는 건 피할 수 없다.
저체온 현상이 심각해지면 사람은 핵심 장기로만 혈액을 보내 파랗게 질리다가 나중엔 뇌 기능마저 손상돼 환각과 기억상실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동사자 상당수는 혼란에 빠져 옷을 벗어 던진 상태로 발견된다. 추위는 항온동물에게 도전의 기회이지만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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