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신간 출간이 코앞이라 교정지를 들고 디자인팀과 사무실을 오가는 게 일이다. 그날도 교정지를 껴안고 버스 구석에 앉아 부족한 잠을 청하고 있는데 뒷좌석 어르신들이 큰 소리로 자꾸 잠을 방해한다.
“그러게 그놈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 된다니까.”
하마터면 “누가 되든 하루아침에 × 되기야 하겠어요. 잠 좀 잡시다” 하고 끼어들 뻔했다. 큰 선거가 코앞이니 대화 주제가 되는 건 이해하지만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하긴 대통령 한명이 나라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대선은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다.
작년에 물거나 짖는 등 문제가 있는 개의 행동을 교정하는 내용의 개 교육서를 냈는데 한 독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원서의 ‘리더’(leader)를 왜 우두머리로 번역했느냐는 것이다. 리더가 흔히 통용되는 단어여도 대체하기 적합한 우리말이 있어서 우두머리를 썼다고 답했는데 아마도 단어가 주는 어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의 생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서열, 우두머리 등의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상명하복, 승자독식의 인간사회와 연결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의 무리는 인간과 다르다. 힘세고 건강하고 경험이 많은 우두머리 부부를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되지만 수직구조라고 볼 수 없다. 개의 우두머리는 무리의 모든 걸 지배하지만 무리가 위험에 빠지면 위협에 맞서 싸워 무리를 보호할 책임이 더 크다. 우두머리의 임무는 오로지 무리의 생존이고, 무리는 ‘같이 살자’는 동업자 의식이 강하다.
따라서 개의 무리는 각자 자기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유지하면서 우두머리를 신뢰하는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구조이다. 물론 우두머리만 번식의 기회가 있기는 하다. 이는 건강한 자손을 낳아 무리를 유지하기 위함인데 이를 두고 인간 수컷들이 전혀 수평적이지 않다고 흥분하면 할 말은 없다. 또한 개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 우두머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일관성과 온화함이다.
개는 불공정함을 인지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다. 지금도 내 책상에는 4년 전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연구팀의 실험 사진이 붙어 있다. 연구진은 두마리 개에게 손을 달라고 요구한 뒤 응하면 똑같이 간식을 주었는데 한번은 같은 상황에서 한마리 개에게만 간식을 주었다. 그러자 간식을 받지 못한 개는 다음번 “손!”이라는 요구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똑같은 행동에 옆의 개만 보상을 받자 황당해하는 표정과 연구진을 외면하는 성난 표정이 압권이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언젠가 나도 반려견 찡이, 조카와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있었다. 셋이 둘러앉아 ‘찡이 한번, 조카 한번, 나 한번’ 이런 순서로 계속 먹다가 내가 한번 더 먹고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갑자기 찡이가 눈 흰자위를 드러내고 희번덕거리며 온몸으로 말했다.
“우리 공정하게 먹읍시다!”
공정하지 못한 우두머리에 대한 항의 표시이다. 나는 늘 동물에게 배우는 편이니 이번에도 개에게 배운 대로 공정함을 기준으로 우두머리 뽑기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결과든 동업자 의식을 갖고 살아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 선거에서 그들이 손을 내밀 때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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