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생명 /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애완동물이 본래의 모습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학대 수준이다. 진정한 동물권이란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아닌가?”
며칠 전 인터뷰를 온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마당에서 남은 밥을 먹던 동물이 어느 날 집안으로 들어와 ‘가족’ 대접을 받는 것이, 힘없고 돈 없으면 사람도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니 반려동물 문화라는 것이 한가한 노릇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주장은 개, 고양이가 인간과 맺어온 1만년 가까운 긴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라 동의할 수 없다. 그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학대받는 애완동물’이 애완동물로 살고 있는 야생동물이라면 동의한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수입된 야생동물, 희귀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소개되는 애완동물화된 야생동물을 보며 과연 저 동물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포획·반입·검역·판매된 것인가 의심한다. 장판에 미끄러지는 사막여우, 쇠줄에 묶인 채 집안 살림을 어지르는 원숭이, 좁은 수조에 갇힌 대형 뱀을 보며 나는 웃기가 힘들다. 도대체 왜 저 야생동물들이 한국의 아파트에 갇혀 살아야 하나?
사실 외래종 야생·희귀동물과 함께 살려면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2008년 발생한 대량 살모넬라균 감염사태의 주범은 판매 금지된 애완용 거북이였다. 또한 원숭이 천연두를 사람에게 옮긴 프레리도그도 판매가 금지됐다. 과학저널 <바이올로지스트> 최근호에도 외래종 애완동물 수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질병 확산을 우려하는 논문이 실렸는데 우리는 관련 규제가 없다.
동물의 습성을 잘 모르고 키웠다가 버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 출판사에서 매년 열고 있는 유기동물을 입양한 사람들을 위한 작은 행사에 작년에 처음으로 페럿(유럽긴털족제비)이 참가했다. 페럿은 버려져 거리를 헤매다 길고양이와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캣맘(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때 구조되지 못했다면 도시의 페럿이 맞을 결말은 뻔하다. 실제로 희귀동물의 습성을 잘 모르고 입양했다가 버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희귀동물, 야생동물을 키우는 것이 추세라면 당국의 철저한 수입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 우리나라는 야생동물의 애완동물화 수준이 외국에 비하면 우려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북미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 호랑이’ 수만 무려 1만5000마리이다 보니 종종 집에서 키우던 사자, 호랑이가 탈출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2009년에는 친구 집에서 키우던 침팬지에게 공격을 당한 여성이 얼굴이 다 허물어지고 시력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인간과 함께 살기 어려운 야생동물을 사유화한 끔찍한 결과다.
야생·희귀동물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가늠하기는 어렵다. 희귀한 동물과 교감하려는 사람, 부를 과시하고픈 부자, 특정 동물한테 애정을 가진 사람,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특별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하다. 다만 동물이 살 환경이 그 동물의 생태와 동떨어져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야생동물 보호의 중요한 한 걸음은 그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보경 출판인
※ 집에서 키우는 야생동물을 반려동물로 보기 어려워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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