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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생후 2개월’의 죽음

등록 2012-08-17 21:03수정 2012-08-17 21:04

김보경 출판인
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지난 7월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850g의 새끼 고양이가 죽은 채 길에서 발견되었다. 배에는 개복 수술의 흔적이, 귀는 일부 잘린 중성화 표지가 남아 있었다. 5일 뒤인 26일 같은 지역에서 550g의 새끼 고양이가 같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550g, 850g이면 생후 2개월가량으로 사람으로 치면 3~4살 된 아이들이 길고양이 티엔아르(TNR·포획해서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는 것)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이 급하게 모였고, 종로구 캣맘인 나도 참석했다. 사실 이번 일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다만 증거만 없었을 뿐. 고양이 카페에는 밥 주던 동네 길고양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고양이 잡아가라는 민원에 대량 포획을 한 것일 텐데 사라진 고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길고양이를 유기묘로 분류해 10일 동안 입양 공고한 뒤 안락사시켰거나 중성화 수술 후 엉뚱한 곳에 방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술한 길고양이를 살던 곳이 아닌 곳에 방사하면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수술한 고양이의 몸 상태를 살피면서 밥과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캣맘이 없기 때문이다. 6월에도 봉천동에서 중성화 수술 부위의 감염이 심각한 고양이가 발견되었다. 이는 ‘살처분’과 다를 바 없다.

캣맘 회의 후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으로 8월11일 캣맘과 동물보호단체, 종로구청 담당자와 티엔아르 담당 업체가 모여 회의를 했다. 종로구는 이른 시일 안에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고, 길고양이 티엔아르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서울시에 건의하겠다고 했다. 회의 결과가 얼마나 책임있게 진행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새롭게 바뀐 담당자가 반려인이라 개선에 의지를 보이는 게 희망이다. 지역경제과, 산업환경과 소속인 구청 담당자들은 여러 업무 중의 하나인 동물 문제에 대체로 관심이 없다.

2008년 서울시에서 시작된 길고양이 티엔아르 사업은 원죄를 안고 있다.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넘치는 길고양이 민원에 떠밀려 만든 사업이기 때문이다. 고양이 잡아가라는 민원은 넘치고 그렇다고 무작정 잡아 죽일 수도 없으니 도입한 사업이다. 지금도 캣맘의 중성화 수술 요청보다는 고양이 잡아가라는 민원이 두 배나 많은 상황. 그러다 보니 사업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없고, 담당 업체의 이해도도 낮다. 2008년도에 만들어진 ‘길고양이 티엔아르 지침서’에 명시된 수술 가능한 기준인 ‘생후 3개월’을 수의사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어린 고양이는 수술 없이 다시 방사해도 되는 것을 모르는 수의사도 많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관리를 하지 못하는 서울시의 문제다. 시민들은 자기가 낸 세금이 생명을 죽이는 데 쓰이기를 원치 않는다. 길고양이 티엔아르에 대한 올바른 지침서가 필요하고, 공무원과 담당 업체는 물론 일반인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길고양이는 이미 도심생태계의 일원이고 티엔아르 사업을 통해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교육이. 다행히 조만간 서울시에 동물복지과가 신설된다니 기대해볼 일이다.

두 번째 발견된 550g짜리 고양이는 발견 당시 다행히 숨이 붙어 있었는데 손쓸 틈도 없이 죽고 말았다. 태어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인간 손에 잡혀 배를 가르는 수술을 당하고 냉한 도시의 거리에 버려진 생명. 수술을 당하고 귀를 잘리고 더 무엇을 내주어야 인간은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할까. 제발 소중한 생명을 ‘민원받이’로 쓰지 마라.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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