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지 44일 된 보리 뿌리의 자기공명영상 사진. 대부분의 뿌리는 화분 바깥으로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 요나스 뷜러 제공
[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방 안에서 화초를 재배하거나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 접하기 힘들어진 자연을 집 안에서 만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공기 속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메마른 실내에 습기를 공급하는가 하면 아이들에겐 소중한 생태 공부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화분에서 기르는 식물과 어항에서 기르는 물고기는 과연 행복할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야 내 마음도 편할 터이다. 식물이 자라면서 화분은 점점 비좁아진다. 분갈이를 해 주지 않으면 뿌리가 더 자랄 공간이 없어 화분 모양으로 뭉치기도 한다. 분재로 키울 게 아니라면 더 큰 화분에 옮겨 주어야 잘 자란다.
비좁은 화분 속에서 식물은 갑갑해할까?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식물은 뿌리가 장벽을 만나면 성장속도를 늦추고 그로부터 도망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독일의 한 식물학자는 의학 진단용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이용해 화분 속 뿌리가 자라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보리와 사탕무의 뿌리는 2주도 안 돼 화분에 도달했다. 그러자 뿌리가 줄기에 무슨 신호를 보낸 것처럼 광합성이 줄어 식물의 성장속도가 뚝 떨어졌다. 흥미롭게도 식물 뿌리의 4분의 3은 화분의 바깥쪽 절반 공간에 있어, 마치 틈만 있으면 화분 바깥으로 도망치려는 형태였다.
그는 화분의 크기를 두배로 늘리면 식물의 무게는 43% 커지며, 화분의 크기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화분 용량 ℓ당 식물의 마른 중량이 2g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가정에서 기르는 화분은 이 기준에 비춰보면 터무니없이 작다.
수조 속에서 관상어는 먹이도 잘 먹고 번식을 하며 경쟁자와 싸움도 벌일 만큼 활기차다. 잡아먹힐 위험에 늘 노출되는 자연보다 나은 환경인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미국의 한 생태학자는 인기있는 관상어인 미다스 시클리드를 대상으로 관상어의 공격성을 연구한 결과 가정에 널리 보급된 크기의 수조로는 이 물고기의 스트레스를 막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수조 속의 물고기는 먹이를 차지하거나 새끼를 지키느라 사나워진다. 넓은 호수라면 먹이를 찾고 헤엄치고 숨느라 서로 싸울 틈이 없겠지만 좁은 수조 안에선 공격적일수록 먹이를 먼저 많이 먹고 더 빨리 자랄 수 있다. 비좁은 환경이 공격성을 부추기는 것이다. 공격성은 부상을 부르고 힘없는 물고기는 스트레스로 병에 쉽게 걸린다. 물론 관상어 매장처럼 물고기를 고밀도로 넣으면 싸움은 줄겠지만 동시에 자연적 행동도 사라진다.
이 연구자는 적은 수의 미다스 시클리드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380ℓ 용량(폭이 150㎝는 되는)의 상당히 큰 수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어항에 뚜껑을 덮고 수조 속에 복잡한 구조물이나 돌, 수초 등을 배치하면 공격성이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식물이나 물고기가 자연에서처럼 살라고 집 안에 거대한 화분과 수조를 들여다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장제 축산의 문제점을 알았다고 당장 채식주의자가 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처지에서도 생각하는 것이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