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바다동물관에서 북극곰 얼음이가 전시관 내실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얼음이는 썰매가 죽은 뒤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토요판] 북극곰 썰매의 죽음
마산 바닷가를 한없이 바라봤지
보잉747이 하늘을 날듯이
400㎏의 거구로 수영을 했고
새끼를 기다렸지만 실패만 했어
어느날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더니…
마산 바닷가를 한없이 바라봤지
보잉747이 하늘을 날듯이
400㎏의 거구로 수영을 했고
새끼를 기다렸지만 실패만 했어
어느날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더니…
북극곰 썰매(수컷·29살)가 갔다. 얼음이(암컷·18살)를 두고 갔다. 지난 2일 오전 10시10분 서울시 능동 어린이대공원 바다동물관의 어두컴컴한 내실에서 배가 붙도록 큰 숨을 들이켜고 갔다.
썰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어린이대공원으로 오기 전 썰매가 살던 동물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북극의 바다얼음에서 태어났든지, 지구의 어느 동물원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왔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북극곰은 동물원에서 번식률이 낮으므로,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기 전이어서, 썰매를 수입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썰매는 얼음이와 함께 1982년 문을 연 경남 마산 앞바다의 돝섬해상유원지에서 살았다. 이재용 어린이대공원 동물관리소장은 그때 바닷가에 고즈넉이 앉아 있던 둘을 기억한다고 5일 말했다. “썰매와 얼음이는 남해를 바라보고 살았어요. 바닷가 쪽으로 사육공간이 있었고 관람객이 안쪽에서 보는 구조였죠.”
두산그룹이 운영하던 돝섬유원지가 2001년 문을 닫자, 썰매와 얼음이는 오랑우탄, 인도표범, 남생이 등 다른 동물 23종 77마리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으로 거의 무상으로 넘겨졌다. 이 소장은 “지금은 캐나다가 반출을 금지하는 등 구하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북극곰은 귀한 동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썰매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9월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집에서 쉬던 나는 걸어서 40~50분 걸리는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매일 썰매를 봤다. 얼음이는 항상 썰매를 핥아주고 있었다. 곰팡이성 피부염에 걸렸다고 관람객의 이해를 구하는 안내판도 기억난다.
이듬해 1월 본 썰매는 헤엄을 쳤다. 물속에서 그 유연한 몸놀림이란. 육중한 보잉747이 하늘을 날듯이, 400㎏의 거구 썰매는 풀장을 유영했다.(동영상 참조) 그리고 추위에 언 얼음조각을 와삭와삭 씹어 먹었다. 지난가을 이후, 썰매가 그렇게 건강해 보인 적이 없었다.
사육사들은 썰매와 얼음이의 성격이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썰매는 적극적이지만 얼음이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무엇이든 썰매가 먼저 해야 얼음이가 따라 했다. 오전 9시 북극곰 전시관 내실을 열면, 둘은 풀장이 딸린 전시공간으로 나왔다. 썰매는 곧잘 헤엄쳤지만 얼음이는 자주 주저했다. 오후 2시엔 사육사가 던져주는 양미리와 고등어를 받아먹었다. 오후 5시 들어갈 시간이 되면, 사육사들은 내실 안쪽에 저녁밥을 놓아 둘을 유도했다. 썰매가 들어가고 나서야 얼음이는 한참 눈치를 보고 따라 들어갔다.
사육사들은 새끼를 기다리고 있었다. 썰매와 얼음이는 매년 5~6월 자주 교미를 했다. 그래서 2009년 전시관 내실에 커다란 얼음 모양의 시멘트 굴을 만들었다. 눈밭에 굴을 파고 어두운 곳에서 새끼를 낳는 야생 북극곰처럼 얼음이가 이곳에 들어가 새끼를 낳길 바랐다.
물론 얼음이가 썰매의 새끼를 뱄는지 사육사들도 몰랐다. 북극곰 어미는 250~300㎏에 이르지만, 갓 태어난 새끼는 600g에 불과해 어미의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육사들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얼음이는 한번도 굴에 들어가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코끼리, 돌고래, 유인원과 함께 북극곰을 ‘동물원 전시 부적합종’으로 꼽는다. 동물원 북극곰은 한쪽 방향으로 걷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똑같은 지점을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이런 행동은 의미와 목적이 없다. 야생 북극곰의 서식 영역은 2만~30만㎢. ‘물범을 찾기 위해’ 최대 32㎞ 밖의 냄새를 감지해 수백㎞를 걷고 헤엄친다(한 번도 쉬지 않고 687㎞를 헤엄친 기록이 있다).
야생방사가 수십 차례 실행된 돌고래와 달리 북극곰은 야생방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바다얼음이 줄어드는데다 사냥 습성이 남아 있는 북극곰이 동물원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시설을 개선해도 북극곰의 정형행동을 막기는 힘들다고 동물보호단체는 주장한다.
에어컨으로 찬바람을 만들고, 인공제설기로 눈을 내리고, 풀장에 얼음을 넣는 게 최신 해양동물관의 트렌드다. 미국 시월드 샌디에이고는 수백만달러를 시설 개선에 투자했지만 북극곰의 정형행동을 막을 수 없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시월드 골드코스트도 마찬가지였다고 동물원 감시단체 ‘주체크 캐나다’는 말한다. 그래서 야생 밀렵과 포획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형행동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썰매와 얼음이는 심하지 않은 편이었어요.”
이 소장은 이들이 건강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가끔씩 관람객들에게 전화가 왔다. 썰매가 누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13일엔 누워 있는 상태가 심각했다. 오후 5시엔 내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썰매는 계속 엎어져 있었다. 썰매가 들어가지 않으니, 얼음이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흘 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전시공간에는 오물이 쌓였다. 결국 사육사들은 가림막을 치고 오물을 치운 뒤 썰매를 내실로 들여보냈다.
6월 말부터 썰매는 내실에 살았다. 먹이를 받아먹긴 했지만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내실 밖 전시공간엔 얼음이가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알아챈 얼음이도 며칠 전부터 밖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썰매의 신장은 돌처럼 굳고 있었다. 수의대 교수들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편히 보냅시다.”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로 잠시 새어나온 빛처럼 썰매는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29살 생애 거의 전부를 아파트 한 칸 남짓한 동물원에서 살았다. 썰매의 임종을 지켜본 이상범 사육사가 사흘 뒤 겨우 입을 뗐다. “배를 들썩들썩하며…숨을 참 힘들게 쉬었지.”
그날 밤늦게까지 얼음이는 전시관 내실로 이어지는 철문을 쾅쾅쾅 쳤다. 물범을 잡기 위해 북극의 바다얼음을 혼신의 힘으로 깨듯이 쳤다. 얼음이의 격한 숨소리가 썰매가 떠난 곳을 울렸다. 그 뒤로 얼음이는 철문을 열어줘도 썰매가 죽은 내실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난해 2월 북극곰 썰매(앞쪽)와 얼음이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썰매에 비해 얼음이는 수영을 주저하는 편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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