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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길고양이를 부탁해

등록 2012-07-06 17:18

김보경 출판인
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긴 여름해가 지고 골목에 사람들이 뜸해져서 밥 주는 길고양이들을 데리고 골목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윗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분이 알은체를 하며 다가온다. 순간 움찔. 길고양이와 관련해서는 험한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방어모드가 먼저 작동한다.

“고양이랑 산책을 하세요? 신기하네요.”

“아, 네~에.”

상황을 파악하려면 말을 아끼는 게 상책이다. 내가 말을 아끼니 그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이사 오자마자 지붕에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밥을 주고 있단다. 가뭄 중의 단비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길고양이 동지를 만나다니!

대체로 5, 6월은 동네마다 ‘아깽이(새끼고양이) 대란’이다. 봄에 태어난 길고양이 새끼들이 사람들의 눈에 자주 띄기 시작하는 시기. 새끼들이 단체로 야옹거리는 소리에 사람들의 불평이 높아지고, 허약한 어미가 출산 후에 새끼만 남기고 죽거나, 어미를 따라 거처를 옮기다가 길을 잃은 새끼가 길 위에서 헤매기도 한다. 이 시기 사람들의 고민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새끼를 구조해야 하는지, 포획은 어떻게 하는지, 어미는 어떻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지 등등 늘어나는 고민만큼 내게도 도움 요청이 쇄도한다.

가장 많은 질문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게 옳은가?’이다. 사료를 챙겨주는 게 그들의 야생성을 빼앗는 게 아닐지, 세 들어 사는 처지라 이사를 갈 텐데 무책임한 게 아닐지 고민한다. 경험상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길고양이는 서너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 정도가 죽지 않고 그해 겨울을 맞고, 성묘가 된 뒤에도 사고, 영역다툼, 전염병, 사람들의 해코지 등으로 짧은 삶을 산다. 동물단체에서는 길고양이 수명을 3년 이하로 보는데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 정도이니 길에서 사는 아이들은 자기 수명의 채 5분의 1도 못 사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짧은 삶 중에 안정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비록 사람들의 전세 기간인 2년이더라도 큰 축복이니 밥을 챙겨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또한 챙겨주는 밥이 없으면 도시의 길고양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뿐이니 야생성을 뺏는다는 죄책감 또한 갖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민인 중성화 수술. 유기적으로 연결된 신체 부위를 인위적으로 떼어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고민이다. 나도 같은 고민을 했는데 어느 해, 봄에 새끼를 낳은 길고양이가 가을에 또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니 내 고민은 사치였다. 수술이 안 된 경우 1년에 두세 번씩 임신, 출산을 반복하다가 죽어가는 암컷이 많다. 어미는 임신, 출산만 반복하다가 죽고, 새끼들은 태어나 채 1년도 못 살고 죽는 것 또한 자연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중성화 수술을 시킨 암컷 중에는 출산을 너무 많이 해서 자궁이 심하게 상했다는 녀석,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또 임신을 했더라면 출산하다가 죽었을 거라는 녀석도 있었다. 두 녀석은 수술 후 모두 건강하게 우리 골목에서 살아가고 있다. 길고양이 밥 주다가 욕먹는 일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동네에서 동지를 만나다니, 나 아무래도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보다.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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