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필드박물관에 전시된 ‘차보 사자’ 표본. 갈기 없는 수컷 두 마리가 협동해 사냥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유명한 동아프리카의 식인 사자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1898년 영국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인도양 해안까지 철도를 놓기 위해 케냐 차보 강에 철교를 건설하고 있었다. 사자가 철도 노동자들을 거의 밤마다 습격했다. 모닥불을 켜 놓고, 숙소에 가시 울타리를 둘러도 사자의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주로 인도인 노동자 135명이 잡아먹혔다. 겁에 질린 노동자들은 달아났고 공사는 중단됐다.
결국 영국에서 파견된 기술자 존 패터슨이 길이 3m의 갈기 없는 수사자를 포함한 두 마리의 ‘악마’를 사살한 뒤에야 공사는 재개됐다. 이 유명한 사자 가죽은 당시로선 거액인 5000달러에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 팔렸고, 사자는 박제로 되살아나 현재도 관람객에게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패터슨의 책은 세계로 팔려나갔고 이를 주제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3편이 나왔다. 그러나 유명해진 차보 사자의 모습엔 편견과 과장이 적잖게 들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차보 사자의 박제를 보관하고 있는 시카고 필드박물관이 그런 신화를 걷어내는 주역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또다른) 패터슨 박사는 2009년 이들 식인 사자가 잡아먹은 사람은 135명이 아니라 35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차보 사자의 털과 뼈, 그리고 케냐의 초식동물과 당시 살았던 사람의 조직 속 동위원소 분포를 비교했다. 사자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먹은 동물의 동위원소 분포는 사자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자 한 마리는 사람 24명을 먹었는데, 식사의 절반은 다른 초식동물이었다. 이 사자는 아래턱 송곳니 부위가 심하게 곪은 상태였다. 다른 한 마리는 11명의 사람을 먹었지만 주 식단은 초식동물이었다. 당시 가뭄과 돌림병 때문에 초원의 먹잇감이 급감하던 상황에서 사자들은 새롭게 몰려든 손쉬운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지만, 사람을 주식으로 한 것은 부상당한 사자 한 마리뿐이었다. 수컷이면서 위엄 있는 갈기가 없는 차보 사자의 모습은 사악한 이미지를 보탰다. 하지만 패터슨 박사는 미국 전역의 동물원 사자의 갈기를 조사해 더운 곳에 사는 사자일수록 갈기가 성글거나 없음을 밝혔다. 차보 지역의 사자는 종종 갈기가 없다.
미디어는 야생동물의 한 측면만을 과도하게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속 사자는, 마치 포르노 영화처럼, 쉬지 않고 극적인 사냥을 거듭한다. 실제로 사자는 하루 평균 21시간을 자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도 비만이 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식인 사자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자의 가장 큰 사인은 사람이나 가축과의 갈등이다. 사자는 지금도 사람을 잡아먹고 있지만, 동시에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귀한 외화를 가져다준다. 유럽이나 미국의 사냥꾼은 3주 동안 사냥을 하면서 수만달러의 돈을 지급하고 죽인 사자 머리를 가져간다. 사자 사냥을 허용함으로써 야생지역을 유지하고 밀렵을 막는 효과도 있지만, 사자 개체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사자 사냥 허용 여부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야생동물의 과장된 한 측면을 ‘소비’하는 동안 수백만년 동안 진화가 이룩한 멋진 최고의 포식자는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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