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위치한 자연방사 양계장 청솔원의 닭들이 방사장에서 자유로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토요판] 닭장 속엔 왕따당한 한 마리만이…
문을 열어놓으니 닭들이 마당으로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닭들은 줄을 지어 숲으로 이동했다. 발로 흙을 고르고 알 낳을 자리를 다지는가 하면 부리로 흙을 콕콕 찧다가 횃대에 올랐다.
지난 13일 경남 하동군 금남면의 청솔원 농장. 평생을 A4 한 장도 안 되는 배터리식 닭장(케이지)에 갇혀 사는 공장식 산란계보다 훨씬 행복한 닭들이 산다. 달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일주일 이상 굶기는 강제환우(털갈이)도 없고, 더 많은 달걀을 얻으려고 밤새 비추는 인공조명도 없다.
강제환우·인공조명 없이
숲에서 뛰고 쪼고 싸우고
청솔원 농장처럼 동물복지형으로 키워지는 산란계를 인증하기 위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기준’이 국내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이 기준에 따라 닭에게 고통을 주는 케이지 감금과 강제환우 없이 사육하는 농장과 달걀에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주어진다. 정부는 다음달께 이 기준을 고시할 예정이어서 ‘동물복지 달걀’은 인증 심사가 끝나는 7월부터 시중에 유통될 전망이다.
청솔원 사육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닭들이 다가왔다. 운동화를 콕콕 찍으며 알은체한다. 바닥에는 왕겨와 미생물 제제가 깔려 있다. 닭들이 사는 이곳은 330㎡(100평)의 케이지가 없는 평사다. 암탉 1400마리, 장닭 90마리가 잠을 자고 비가 올 때나 추울 때 머문다. 벽 쪽으로는 난상(알 낳는 장소)이 있다. 돌아다니다가도 닭들은 제 곳을 찾아 알을 낳는다.
닭들은 매일 아침 9시에 숲으로 나간다. 정진후(50) 청솔원 대표가 말했다. “해가 지면 알아서 제 발로 들어와요. 병아리 때 1~2주일 정도 놔두면 이곳이 집인 줄 알죠.”
산란계 동물복지 축산농장 기준을 보면, 닭들은 뛰어다니거나 날아다닐 수 있는 사육장(평사)에서 키워져야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청솔원처럼 야외 방목장이 제공될 경우 따로 ‘자유방목’이 표시된다. 평사에는 닭이 올라갈 수 있는 횃대와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깔짚이 바닥에 덮여 있어야 한다. 방목장에는 독수리나 매 등 맹금류에 대한 공포심을 줄이기 위해 차양막을 설치하도록 했다.
평사 내 사육밀도는 바닥면적 1㎡당 9마리 이하로 규정하고, 1㎡당 7마리 이하를 권장하도록 했다. 권장기준으로 보면 한마리당 0.142㎡가 보장되는 셈이다. 배터리식 닭장의 적정 사육밀도 0.042㎡보다 3배 이상 크다. 공장식 산란계장에서는 산란율을 높이려고 한밤중에도 불을 켜지만 동물복지 농장의 경우 최소 6시간 이상 불을 끄도록 했다.
케이지에서 해방된 닭들은 사회적 본능을 회복한다. 청솔원의 닭들은 130일째에 초란을 낳는다. 이때쯤 수탉들이 암탉을 두고 경쟁하면서 무리에서 서열이 생긴다. 정 대표가 설명했다. “각 무리에서 ‘으시’라고 불리는 우두머리 장닭이 생깁니다. 무리가 1000마리이든 2000마리이든 으시는 단 한마리죠. 반면에 약한 암탉은 괴롭힘을 당해 왕따가 돼서 구석에 처박혀 있어요.”
‘산란계 동물복지’ 마크 도입
돼지나 소는 부러울밖에
야생방사 산란계의 산란율은 65%다. 공장식 산란계 83~85%에 비하면 훨씬 적다. 왜 그럴까? 주변 환경이 조작돼 모든 에너지를 알을 낳는 데 쓰는 공장식 산란계에 비해 이들은 하루 내내 돌아다니며 사회활동을 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1년 남짓 지나면 닭들의 산란율과 난각의 품질이 떨어진다. 공장식 산란계는 강제환우를 통해 산란율을 끌어올린 뒤 다시 일곱달을 케이지에 가둬 알을 낳게 한다. 반대로 야생방사 산란계는 강제환우 없이 도태시킨다. 어차피 경제적 목적에서 양계장이 운영된다면 고통받는 삶의 연장보다 단호한 도태가 동물복지 측면에서 낫다고 보는 것이다. 정 대표는 “닭은 평생 동안 적게나마 알을 지속적으로 낳는다”며 “될 수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키우도록 분양한다”고 말했다.
산란계 동물복지 기준이 시행되면, 농장의 변화와 ‘착한 소비’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자체적으로 동물복지 달걀을 생산했던 식품업체 풀무원도 정부 인증을 서두르고 있다. 구민회 풀무원 계란사업부 상무는 “현재 15개 농장에서 생산하는 프리미엄 계란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운송과 도축이 동물복지 기준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계라고 동물보호단체들은 지적한다. 닭에게 고통을 주는 부리 자르기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부리 자르기는 좁은 사육장에서 카니발리즘(동족을 잡아먹는 일)으로 이어지는 괴롭힘 현상을 막고자 병아리 때 관행적으로 실시된다. 이원복 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유럽에서는 부리 자르기를 아예 금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돼지와 소에 대한 동물복지 인증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관계자는 “작업장 변경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며 “내년부터 돼지를 대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솔원 농장을 나오는데, 하얀 하이라인 닭 한마리가 조그만 닭장 속에 들어가 있었다. 정 대표가 말했다. “왕따당한 닭이에요. 워낙 괴롭힘을 당해서 털이 다 빠졌길래 무리에서 따로 빼서 두었어요.”
하동/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숲에서 뛰고 쪼고 싸우고
닭 한마리가 알을 낳던 중 외부인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불안해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돼지나 소는 부러울밖에
정부가 동물복지 농장에서 생산된 상품에 부여하는 인증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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