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단군 신화부터 프로야구 팀의 마스코트까지, 호랑이만큼 한국인의 의식 깊숙이 자리잡은 동물은 없다. 민속학자 천진기씨는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 우러러보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호랑이의 나라’를 자처하면서도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는 한 세기를 바라본다.
1980년 한 석간신문이 서울대공원에서 벵골호랑이를 찍은 거짓 제보 사진을 ‘한국산 호랑이가 57년 만에 나타났다’고 섣불리 보도한 오보 사건도, 한국호랑이가 없는 허전함과 호랑이를 되찾고 싶다는 염원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최근 이항 서울대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호랑이와 아무르호랑이는 같은 아종’이라는 발표는 다시 한번 우리 의식 속의 호랑이 향수를 깨웠다. 이 발표는 애초 한국호랑이란 것 자체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한국호랑이는 아직 살아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 내막을 알아보자.
먼저 한국호랑이에 대한 개념정리. 현재 호랑이에는 6가지 아종이 있는데,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지방에 서식하는 아종을 흔히 시베리아호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식지가 시베리아와 무관한 이 아종을 러시아와 국제 학계는 ‘아무르호랑이’라고 부르며 중국은 ‘동북호(둥베이후)’를 고집한다. 문제는 이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 가운데 하나였던 한반도 개체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독일 학자 브라스는 1904년 아무르호랑이 가운데 한반도에 서식하는 호랑이가 ‘줄무늬가 뚜렷하고 붉은색을 띠며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가죽을 지닌다’며, 별개의 아종인 ‘한국호랑이’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1965년까지 유지되다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별다른 검토 없이 한국호랑이를 아무르호랑이에 편입시키면서, 이미 남한의 야생에서 사라진 한국호랑이는 이름마저 잃고 말았다.
이항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학계의 숙제를 뒤늦게 한 셈이다. 한반도의 호랑이는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부, 그리고 한반도를 넘나들던 유전적으로 동일한 집단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호랑이란 실체가 없어지지만 동시에 한국호랑이가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아무르호랑이가 한반도에 돌아오면 한국호랑이가 복원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스피호랑이는 1815년 멸종했지만 유전적으로 아무르호랑이와 매우 가까워 아무르호랑이를 이용한 복원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항 교수는 아무르호랑이가 우리에겐 ‘호랑이 카레이스키’라고 했다. 우리가 러시아의 고려인을 돌봐야 하는 것처럼 아무르호랑이를 한국호랑이처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르호랑이는 야생에서 1940년대 20~30마리까지 줄어 절멸 직전에 몰렸으나 국제적인 보호운동에 힘입어 현재 400여마리가 남아 있다. 이 호랑이를 구한 것은 호랑이와 아무 인연도 없는 네덜란드, 미국 등 선진국 사람들이었다.
현재 한국범보존기금이 국제적인 아무르호랑이 보호단체인 티그리스재단을 후원하고 있으나, 한국호랑이에 대한 강한 국민적 자부심에 견주면 참여는 미미하다. 통일이 되고 환경을 복원하면 언젠가 아무르호랑이는 한반도 남쪽까지 올 수 있는데 말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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