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영하의 날씨에도 여의도 한강공원을 거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갑갑한 애완견이 보채서였을까, 개를 데리고 나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참 귀엽네. 춥지 않니?” 개 두 마리 모두에게 예쁜 옷을 입힌 주인은 “얼음판 위에서 놀아도 추운 기색은 전혀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개는 왜 발이 시리지 않을까. 개의 발은 털이나 지방층으로 덮여 있지도 않은데다 얼음처럼 찬 땅과 접촉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가 동상에 걸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개 발에 땀 났다는 얘기처럼.
얼마 전 <문화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의 황제펭귄이 떠올랐다. 영하 50도의 얼음판 위에서 몇 달을 먹지도 않고 버티며, 게다가 발 위에서 알까지 부화시키는 놀라운 동물. 사실 나는 그 펭귄의 발이 더 경이로웠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연구결과를 한 일본인 수의과학자가 발표했다. 놀랍게도 개의 발은 황제펭귄의 발과 마찬가지 원리로 추위를 이긴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이런 원리는 북극여우, 늑대와 같은 갯과 동물은 물론이고 고래·물개 등 추운 곳에 사는 동물, 그리고 새와 사람 등에게도 널리 채용되어 있단다. 이른바 역방향 열 교환이다.
한 실험실에서 기온을 영하 35도로 낮춘 뒤 털북숭이 북극여우를 풀어놓았다. 한참 지난 뒤 발의 온도를 재니 영하 1도로 발의 조직이 손상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역방향 열 교환의 핵심은 이처럼 찬 곳과 접하는 부위의 온도를 최대한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조직이 유지되려면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심장에서 나온 더운 피를 곧바로 발로 보내면 마치 구멍 난 주머니에서 물이 새어 나가듯이 몸의 열은 혈액을 타고 땅바닥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심장에서 온 따뜻한 피를 담은 동맥은, 발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피가 흐르는 정맥에 열을 전달해 주고 어느 정도 식은 상태에서 발바닥으로 향한다. 반대로 발바닥에서 온 차가운 정맥은 동맥에서 열을 얻은 뒤 심장으로 향한다. 동맥 주변에 그물처럼 정맥을 배치하면 이런 효과적인 열 교환이 가능해진다.
이런 기발한 발명을 다른 동물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얼음판 위에서 느긋하게 잠을 자는 오리나 기러기도 그 수혜자이다. 비록 발은 좀 차겠지만 체온은 사람보다 높게 유지한다. 한 발로 얼음을 딛는 것은 열 손실을 절반으로 줄이는 추가 요령이고, 열이 새어 나가는 통로인 부리를 깃털 속에 파묻는 것도 팁이다.
꼭 추운 곳에 쓰란 법도 없다. 열에 약한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포유류의 고환은 이 원리를 이용해 높은 체온이 고환에 전달되지 않도록 한다.
개와 펭귄에게 배운 것은 아니지만, 산업계에서도 이런 열 교환 방식을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아주 간단한 예가 패시브하우스 등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주택에서 쓰이는 기계식 열 회수 장치이다. 방안의 덥고 더러운 공기를 내보낼 때 바깥의 차고 신선한 공기와 내용물은 섞이지 않고 열만 전달해,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장치이다. 생물을 흉내 내면 효율을 얻는다. 그래서 생물흉내학(바이오미메틱스)이란 학문도 있지 않은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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