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한전케이디엔(KDN) 등 자회사의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고, 직원 2천명을 감원하는 2차 자구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의 한 주택가에 달려 있는 전기계량기의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자회사 지분의 민간 매각,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 감축’.
한국전력공사가 검토하고 있는 추가 자구안의 핵심 내용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조직, 인력 효율화보다 상상할 수 없던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는데, 자구안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불러올 결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일단 담을 수 있는 방안을 모두 담는 데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전이 검토하고 있는 이 자구안은 사상 초유의 200조원대(지난 6월 말 201조4천억원) 부채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5월 부동산 자산 매각 및 임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 등을 통해 총 25조원 이상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자구책을 발표한 데 이어 ‘추가적’으로 나온 것이다.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은 탓에 발생한 문제(2021년 이후에만 47조원 손실)인 만큼 원가를 반영해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답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여당이 ‘방만·부실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한전이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추가 자구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며 추가 자구책을 압박해온 데 따른 것이다.
한전은 지난 5월 1차 자구책에서 부동산 중심의 자산 매각과 전력설비 건설 계획의 조정, 경상경비 절감 등을 담은 데 이어, 이번에는 자회사 지분을 팔고 전체 인력(2만3천여명)의 9% 수준을 감축하는 방안까지 그러모았다.
‘인력 감축안’에 담긴 2천명은 희망퇴직자와 함께 신규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었던 인력을 아우른 숫자다. 한전이 희망퇴직을 실시한 건 창사 이래 2009~2010년 딱 한 차례인데, 당시에도 그 수는 420명에 그쳤다. 이를 훌쩍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 감축을 추진할 경우, 노사 간 격렬한 갈등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남태섭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은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 정부 들어 공공기관 혁신 계획을 통해 이미 (인력) 감축이 이뤄졌다”며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인력과 조직 통폐합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말했다.
추가 자구안에 담긴 한전의 자회사 지분 매각 방안은 전력산업의 시장 개방 흐름과 맥이 닿아 있지만, 재무구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가 좋지 않은 현시점에서 무리하게 지분 매각을 추진하다가 오히려 ‘헐값 매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천구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도 “지분 매각이 거론된 자회사들은 생산성이 좋거나 수익이 높지도 않고, 경영권을 넘기는 것도 아니라 시장 반응이 좋을 리 없다”며 “급하게 내놓게 되면 당연히 헐값 매각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과)는 “집이 망하면 가재도구를 내다 파는 게 맞지만 한전 문제는 (근본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안 해서 생긴 문제지) 자체 부실이나 잘못 때문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느냐”고 비판했다.
한전 자회사의 지분 매각이 전체 전력산업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로, 한전은 한전원자력연료를 지분 매각 대상에 올려놓으며, 애초 발전소 운영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 지분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핵발전의 연료와 노심, 원자로의 설계 등을 맡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한수원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은 추가 자구안에서 최종적으로 빠졌지만, 재무구조 개선에 급급해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한병섭 원자력안전방재연구소장은 “핵발전은 안전이 중요한 산업이라 각 부문 사업자를 분리해 견제·보충하게 한 것”이라며 애초 안대로 발전소 운영 사업자인 한수원으로의 지분 매각이 이뤄지게 된다면 안전 문제가 제대로 통제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개혁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무리한 자구안이 불러올 문제점 등을 고려할 때 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의 ‘정상화’에서 근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전기공학과)는 “다른 나라들도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정부 통제를 받긴 하지만 우리처럼 말도 안 되게 원가를 눌러놓는 경우는 없다”며 “한전이 설사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한전 부채 문제의) 본질은 원가 회수”라고 지적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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