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경남 창녕군 길곡면과 함안군 칠북면 경계에 위치한 창녕함안보 일대 낙동강에서 녹조가 관찰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가 물 관련 최상위 계획인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해 하천의 자연성 회복과 관련한 사항을 모두 삭제하려고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변경된 국가물관리계획은 4대강 및 하천의 자연성 회복이 아닌 대규모 하천 공사의 시행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또 국가물관리계획을 바꾸려면 각 유역물관리위원회와 협의해야 하지만, 위원들에게 하루 동안 이메일 의견을 듣고 ‘졸속’ 처리하려는 행태도 보여 적법성 논란도 일 전망이다.
■ ‘자연성 회복’ 빠지고, ‘하천 시설 개선’ 추진
한겨레가 20일 입수한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 변경안’을 보면, △자연성 회복을 고려한 댐 운영 △불필요한 하천 구조물 철거 △하천 지형의 자연성 회복 등 자연하천으로 복원·관리하는 등의 기존 계획의 자연성 회복 내용이 삭제됐다. 환경부가 2021년 작성해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의 밑바탕이 됐던 ‘우리 강 자연성 회복 구상’은 기존 국가물관리계획에 포함돼 있었으나 통째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성에 기반을 둔 하천 관리는 댐과 보의 설치를 최소화하여 강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강가에 습지와 모래밭 등 넓은 홍수터를 확보하는 등 자연하천과 가깝게 관리하는 기법이다.
변경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는 기존 계획에 있던 ‘자연성 회복’이라 쓰인 구절을 ‘하천 유역의 지속 가능성 제고’라는 말로 바꾸고, ‘불필요한 하천 구조물 철거’는 ‘하천시설 개선’으로, ‘자연성 회복을 고려한 발전용댐 운영 고도화 및 현대화 사업 추진’은 ‘발전용댐 운영 고도화 및 현대화 사업 추진’으로 변경하는 등 대규모 하천 공사 시행의 근거를 마련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이날 국가물관리위원회(공동위원장 한덕수 총리, 배덕효 세종대 총장)는 지난 정부 때 이뤄진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해체 및 개방)이 과학적 분석이 결여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검토한 결과, 이 방안을 취소한다고 의결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이번 변경안 추진을 지난 4일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감사원 결과를 토대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해체 및 개방)’을 취소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변경안을 살펴보면, 금강, 영산강은 물론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었던 ‘한강, 낙동강 보 처리방안 마련’ 항목까지 죄다 빼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강과 낙동강은 금강, 영산강과 달리 보 수문을 열면 취수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문제 때문에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21년 확정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는 “사회·경제, 이수·치수, 수질·생태 등 다양한 측면의 모니터링과 면밀한 평가를 통해 한강, 낙동강 11개 보의 처리방안을 마련한다”고 방향성만 밝힌 채 미뤄뒀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특위 부위원장은 “감사원은 금강·영산강의 절차적 하자만 지적했는데도, 환경부는 금강·영산강은 물론 관련 연구나 용역도 없이 다른 강의 재자연화 추진 방침까지 다 없애버렸다”며 “이는 적법한 절차를 넘어선 환경부의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 2년 동안 만든 계획, 한 달 만에 바꿔
환경부가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는 변경안에 대해서 절차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4일 각 유역물관리위원회 지원단에 변경안을 보내면서, 불과 열흘 만인 25일에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 유역물관리위원회 위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물관리기본계획 변경안을 보내주더니, 내일 오전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며 “과거 2년에 걸쳐 만든 계획의 중요한 방향을 바꾸는 건데, 아무리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논의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행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환경부가 2019년부터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지자체, 유역물관리위 등의 의견을 수렴해 2021년 국가물관리위에 올려 최종 확정됐다. 현행 계획은 △물환경의 자연성 회복 △지속가능한 물 이용 체계 확립 △물 재해 안전체계 구축 등 6대 분야별 추진 전략을 뼈대로 하고 있다.
‘보 철거를 위한 금강·영산강 시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는 당초 계획대로 금강과 영산강 보를 해체하고 상시 개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바꿀 때도 환경부 장관은 유역위원장을 비롯해 관계 부처 장관과 협의하도록 물관리기본법은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는 공청회 직후 국가물관리위에 바로 변경 안건을 올릴 계획이어서,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뒤 불과 한 달여만에 자연성 회복 방안이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 환경단체 “행정소송 하겠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우리나라 강의 자연성 회복 방안을 모두 삭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유럽연합은 자연복원법을 제정해 기후·생물다양성 위기 대응 해법으로 자연성을 강조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각 유역 주민을 원고로 하는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물관리기본법에서 유역위원회 의견을 들으라는 것은 해당 지역 주민과 전문가에게 필요한 내용이 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검토하라는 취지”라며 “(하루 만에 이메일을 받아) 구색 맞추기로 진행하라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국가물관리위의 의결 사항을 반영한 정도로 바뀐 게 많지 않다고 본다”며 “유역물관리위 의견을 취합해 변경안을 보완하고, 추가로 유역위원장 대상으로 설명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