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은 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방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단순히 (현장을) 둘러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은 한국 정부가 시찰 이후 실질적으로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가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위한 일본 정부의 명분 쌓기에 들러리를 섰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 합의를 발표하며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국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하고 있다”며 “일본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IAEA 최종보고서 반영해 절차 진행”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고 현장 내 물탱크에 보관해온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정화 처리한 뒤 올여름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화 처리로도 걸러내지 못하는 삼중수소(트리튬) 농도가 안전기준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오염처리수를 바닷물로 희석해서 내보내겠다는 방침이지만, 환경단체들은 인체 암 유발 가능성 등 삼중수소의 생물학적 농축 등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며 무조건 방류를 추진하는 건 섣부르다며 반대해왔다.
특히 방사능 오염 분야의 저명 학자인
티머시 무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삼중수소와 관련한 과학 문헌 70만여 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사실상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이 단순한 시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고려해 일대일로 별도의 시찰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의 건강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찰단에) 어떤 구성원이나 과학적 기법이 채택될지는 논의해봐야 하겠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방법을 참고하고 문제 될 수 있는 성분을 조사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두 나라 정상의 합의에 따라 한국 시찰단이 오는 23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선 오염수의 해양 방류와 관련한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 그룹의 최종보고서 발표 시점(6월 목표)에 맞춘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021년 국제검증단을 구성한 국제원자력기구는 지난 6일 방류 계획이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중간보고서를 내는 등 오염수를 희석 방류할 경우 농도가 미미하다는 일본의 주장에 우호적인 편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국제원자력기구의 ‘국제 검증’을 여론의 방패막이로 삼아왔다.
기시다 총리가 이날 회견에서 “국제원자력기구 최종보고서를 반영시켜 국내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그때 한국과도 의사소통하면서 이런 움직임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한 것도 국제원자력기구의 결론을 기반으로 방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비쳤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가 오염수 방류에 대해 면죄부를 주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에 관련한 압박을 재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가 당면 과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먼저 이 문제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며 “이 부분이 논의될 기회가 있다면 후쿠시마 오염수와 같은 입장으로 접근하게 될 것 같다”고만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합의를 두고,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들러리를 서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한·일 양국 정상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 중단을 선언하고, 장기 보관 해법을 논의했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은 외교적 성과를 위해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의 명분을 쌓아주는 공범으로 전락했다”는 성명을 내놨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도 “방사성 물질이 어떠한 생물학적 영향을 미치느냐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언급 없이 현장 시찰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요식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도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에 대한 명분 쌓기에 한국 정부가 도와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