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지나며 내린 폭우로 잠겼던 경북 포항 남구 인덕동에서 6일 오후 태풍에 떠밀려온 컨테이너 시설이 뒤엉킨 차량들을 덮치며 마치 전쟁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북 포항을 비롯해 남부지방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안긴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기존 태풍 공식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생 지점과 강도 등에서 앞서 경험한 태풍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앞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강도는 더욱 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힌남노는 6일 새벽 4시50분께 경남 거제로 상륙해 아침 7시10분께 울산 앞바다를 통해 동해로 빠져나갔다. 상륙 당시 힌남노의 중심기압은 955.9hPa(헥토파스칼)로, 강도 측면에서 사라와 매미에 이어 3위였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세력이 강하다. 한반도에 상륙하기에 앞서, 힌남노는 태풍의 강도 분류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초강력’에 이른 적도 있다.
한남노는 기존 태풍과 발생 지점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지난달 28일 밤 9시 힌남노가 열대저압부에서 태풍으로 발달한 곳은 일본 도쿄 남동쪽 1280㎞ 해상이었다. 이곳 위도는 북위 26.9도로, 북위 25도 이상에서 초강력에 이를 정도로 강한 태풍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주로 북위 5∼20도에서 발생하고, 특히 세력이 강한 태풍은 북위 5도 이상 북서태평양 저위도의 따뜻한 바다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공식이 깨진 것이다.
힌남노가 기존 태풍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도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해수면 온도가 꼽힌다. 태풍은 수온 26도 이상인 곳에서 발생하고, 높은 해수면 온도는 태풍 발달의 주요 에너지원이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북위 25도 상에서 태풍이 강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 중 하나는 해수면 온도가 받쳐주지 못해서다. 북위 25도 이상이면 해수면 온도가 27∼28도 정도인데, 이는 힌남노처럼 강한 태풍을 만들어내기 부족한 수준이다. 이번에 태풍이 발달해 서진한 지역은 해수면 온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기상청 북서태평양 해수면 온도 분석도를 보면, 지난달 31일 오전 9시 힌남노가 있던 일본 오키나와 동남동쪽 약 250㎞ 부근 해상의 수온은 29∼30도에 이른다. 평년보다 1∼2도 높은 수치다. 우 예보분석관은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일 수 있다”고 했다.
힌남노가 북위 30도를 넘어간 뒤에도 강한 세력을 유지한 점도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한상은 기상청 총괄예보관이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예보관 생활을 하면서 이런 태풍은 처음 본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보통 태풍은 북위 30도 부근까지 올라오게 되면 낮은 해수면 온도 등의 영향으로 세력이 약해지는데 힌남노는 달랐다. 힌남노는 북위 30도를 전후로 ‘매우 강’으로 같은 등급을 유지했는데, 중심기압을 살펴보면 오히려 세력이 더 강해졌다. 지난 4일 오전 9시 북위 26도에서 중심기압 940hPa, 4일 낮 3시 북위 27도에서 935hPa, 5일 오전 9시 북위 29.8도에서 930hPa, 5일 낮 12시 북위 30.2도에서 930hPa였다.
힌남노가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도 해수면 온도의 영향이다. 기후변화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라니냐 현상이 해수면 온도를 높였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강해져 동태평양의 따듯한 물이 아시아 대륙쪽의 서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이에 따라 서태평양의 수온이 오른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동중국해 해수면 온도가 상당히 높았던 영향으로 보이는데,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도 “힌남노가 정체하다가 북상하면서 세력을 키운 것은 동중국해 수온이 높기 때문인데, 지난 40년 동안 동중국해의 수온이 여름철에 1.5도 이상 높아진 것으로 최근 분석하고 있다”며 “서태평양 온도를 높이는 라니냐 현상의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사용된 신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한반도 주변 해역의 미래 전망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한반도 주변 해역 해수면 온도가 현재(1995~2014년)보다 약 1.0∼1.2도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먼 미래(2081~2100년)에는 획기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때 1.8도, 감축 노력 없이 탄소 배출을 지속할 때 4.5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고 풍부한 수증기가 공급되면 태풍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공동 설립한 ‘태풍위원회’는 2020년 발간한 ‘기후변화에 의한 태풍 변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로 태풍의 강도는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남영 경북대 교수(지리학과)는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태풍이 더 세질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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