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5일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상여시위 중.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제공
‘핵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같은 말이다. 그러나 어감이 다르다.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핵발전소라는 용어를 더 자주 쓰지만, 에너지·기후위기 시대 한국에서는 원전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한국 새 대통령의 공약도 ‘원전최강국’ 건설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인 김우창(38·환경사회학)씨는 원전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갈등 상황을 연구한다. 2014년께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수도권에서 가져다 쓰는 전력의 생산지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모순을 느끼며 에너지 불평등 문제에 먼저 빠져들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고 원전 인근 주민들의 삶과 관련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8개월을 월성핵발전소로부터 3㎞ 떨어진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신서리에 거주하며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월성원전 인접 주민 이주대책위원회’ 상여시위에 참여하고 주민 6명 등을 인터뷰한 뒤 책 <원전마을>을 썼다. 상여시위는 이주대책위가 만들어진 2014년 8월25일 이후 계속 8년째 이어지고 있다. 72가구였던 대책위 주민들은 이제 10가구만 남았다.
18일 오전 화상 인터뷰에 응한 김씨는 “현장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불안과 위험요소처럼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그는 “가급적 생수를 사 먹고 음식은 멀리 떨어진 울산에서 사먹기도 했지만 숨쉬는 공기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불안감이 실재하는 이상 주민들의 원전 반대 활동이 비전문가들의 불안이 아니라고 옹호하고 싶었다”라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원전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그는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지역의 책임으로, 폐기물 처리 책임은 다음세대로 넘기는 것이 원전”이라며 “원전을 생각할 때 ‘화장실 없는 맨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도 서울만 고상한 척 ‘서울공화국’으로 살아가는 게 맞는지 경제적·산업적 가치로 주목받는 원전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대학원생은 왜 경주에서 8개월을 살았나
—책의 원제가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였다. 월성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이주 목소리를 담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21년 초 월성원전 삼중수소 누출 관련한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월성원자력본부쪽에서 바나나 6개·멸치 1g 등 에 비유하며 주민들의 불안이 과장되었다고 지탄한 것을 보고 결정하게 됐다. 당시 <탈핵신문> 등 다양한 언론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나의 전공이 원자력이나 화학 등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거주 기간 30~40년 중 최근 8~9년을 적극적으로 투쟁해 온 주민들 활동의 의미를 알리고 싶었다. 이주대책위 내부자료용으로 정리하다 제안을 받아 책을 내게 됐다.”
—투쟁의 역사가 왜 의미있다고 봤나.
“탈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수도권에서 느끼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추상적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투쟁의 역사가 의미가 적지 않다고 옹호하고 싶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 한수원 짝퉁 부품(2015년 한수원 직원 등 68명 실형 선고·추징금 48억여원 확정),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원전 정지, 2021년 삼중수소 검출 논란 등 위험 물질을 둘러싼 주민들의 경험이 전문적이라고 봤다.”
—주민들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갑상선암 수술을 하신 어머니, 가족력이 없는데도 갑상선 항진증을 겪는 아버님이 계시다. 암 발병 등이 원전의 영향인지 인과성 논쟁이 있지만 주민들은 이웃 주민들이 암과 백혈병 등으로 죽은 기억이 있기도 하다. 다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임기 말까지 진전이 없어 주민들의 심정이 다급했고 간절했다고 느꼈다.”
—책을 보면 인접 주민 중 100가구 주민들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참여 주민은 과거보다 줄었다. 한수원과의 관계때문에 대놓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한 때 전체 1/5 가량인 100가구의 주민이 참여했지만 이제는 10가구 정도가 참여하며 울산·경주 등에서 연대하는 이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장 앞에 상여시위에 쓰는 상여와 관이 놓여져있다. 김우창씨 제공
—주민들이 바라는 이주가 어려운 이유는 부동산 거래 자체가 적기 때문인가. 거래현황이나 공시지가 상승률 등 인접 지역에 대한 기초적 분석을 한 것도 처음인 듯 하다.
“혐오·위험 시설이 근처 지가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실증 연구가 하나도 없었다. 이 연구를 한 것도 ‘한수원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주민들이 또 보상을 원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원전에서 가까울수록 거래도 안 되고 지가의 변동폭도 낮다는 경향성은 확인했다. 이 팩트만 봐도 한수원이 말하는 주민상생발전 논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이주 요구는 원전 인근 주민도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반대 주민들이 지역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없나.
“주민들이 이주를 우선시하는 이유도 그렇다. 탈핵·탈원전을 외치고 싶지만 지역 사회에서 ‘너희 때문에 지역 상권 망했다’는 낙인들을 오롯이 이분들이 받게 된다. 지역의 농수산물 피폭 문제도 건들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오염된 몸, 건강을 걸고 싸울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탈핵·탈원전에 대한 정의도 저마다 다르다. 문 정부에서는 신규 원전을 안 짓고 오래된 원전을 폐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에게는 폐로 이후 폐기물처리까지 고민하기에 현재 소극적 의미의 탈핵 요구는 추상적이다. 결국 이주를 요구하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더욱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몰고 다니는 마을’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원전 지원금이 있지만 1/6이 도로 확대 등 주민 사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주민에게 직접 돌아가는 이익은 전기요금 감면 정도의 지원뿐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줘야하는 도로 확대 사업 등을 주민들은 목숨값으로 받는 셈이다. 또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쓰는 돈이 있어도 한해 100억원 미만인데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언론에 광고홍보를 하고 지역사회 크고 작은 행사를 지원하는 등 한수원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활동에 쓰인다고 한다.”
—그래도 원전 직원들이 동네에서 쓰는 돈이 지역에 돌게 되면 좋은 것 아닌가.
“지역상권의 가장 큰 고객이 원전 직원이 맞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 곳이 오지여서 이곳에 오는 직원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불편해 이 곳에서만 먹고 자고 생활했지만 지금은 울산·경주·포항으로 이어진 도로가 잘 나있어 그곳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또 주고객이 한수원 관련 직원들이다보니 ‘착한 가게’ 리스트를 만들어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등 지역 경제를 볼모 삼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간지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27일 천막농성 7주년을 맞아 행사가 열렸다. 용석록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제공
—한수원 직원들도 만나봤나.
“정직원은 못 만났고 재하청 형태로 일하는 직원들을 몇 명 만났는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는데, 한수원 노조는 탈원전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대책위 지원하는 시의원 등을 저격하기도 하는 등 월성 지역의 경우 한수원 본사가 있고 경주시가 중저준위폐기물방폐장 유치를 한 곳이니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특별히 더 (친원전 목소리가) 장악한 지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주 비용은 얼마로 추산되나.
“10가구에 대한 이주 비용은 없었다. 2016~2017년 관련 법을 개정하고자 할 때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 반경 5㎞ 기준으로 이주 단지를 조성하는 데 8조5천억~9조가 들어간다며 비판한 바 있다. 결국 법도 임기만료 폐기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 희망자에 대한 인식 전환과 원전으로부터의 제한 구역을 늘리는 식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사회로부터의 응답이 없는 상황이다.”
—외국 사례 조사도 했나.
“어려운 지점이 외국 사례를 찾는 것이었다. 쓰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가 난 이후 건강 조사 연구는 이어졌지만 한국은 사고가 나지 않고 가동 중인 원전 인근에서의 피폭·질병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온 전문가들은 한국에서의 원전 인근 거주 가능 기준(원자력안전법 기준 560~914m)을 보면 놀란다.”
—원전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2016~2017년에는 주요 대선 후보들이 거의 다 탈원전을 말했다.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도 ‘탈원전’이었다. 그런데 5년 만에 여론이 돌아섰다는 지적도 있다.
“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탈핵·탈원전 운동이 분열되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대안으로 원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환경운동 진영도 갈라졌다고 본다. 문 정부가 탈원전·에너지 전환을 내건 첫번째 정부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가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할 것인지 진정한 공론화가 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탈원전은 선언했지만 원전 수출은 지향하는 모순적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없이 나온 ‘원전최강국’ 공약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 국민들의 의지가 담긴 것인지 다시 묻게 된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 부족했던 것 같다.”
김우창씨가 지난해 2월22일 이주대책위원회 농성장의 투쟁 날짜를 고치고 있다. 하지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생 제공
—친원전 그룹에서는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원전 기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달라는 말도 한다.
“공감은 된다. 누군가의 직업과 누군가의 안전이 모두 걸린 문제다. 간극을 좁히기 위한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원전최강국인 한국은 계속 최강국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원전을 안전과 규제의 대상·시설로 보기 보다 성장의 원동력·산업적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만 봐왔다. 한수원에 대한 내부 정보는 지자체조차 얻을 수 없다. 투명성이 많이 부족하다. 또 폐기물과 폐로 문제는 누구도 해결 못하고 다른 지역과 다음 세대로 떠넘긴다. 원전을 생각할 때 ‘화장실 없는 맨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도 서울만 고상한 척 서울공화국으로 살아가는 게 맞나.”
—책의 인세를 대책위에 기부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특정 장소에 대한 애착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 주민들은 500년 넘게 대대로 살아온 자랑스러운 고향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면 이곳을 떠날 생각을 했을까 독자들이 그런 부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책을 많이 읽어주시고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달 28일 책 <원전마을>을 기획한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맨 오른쪽)과 저자 김우창씨(맨 왼쪽)가 주민들을 만나 책을 전달했다. 김우창씨 제공
책 <원전마을> 저자 김우창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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