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2월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울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기후·에너지가 꼽힌다. 시발점은 윤 대통령 당선자의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공약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는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25일 시행되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올해 안에 구체화하도록 한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원전 비중을 늘리고, 이를 토대로 2036년까지의 전력수급기본계획(10차) 등 에너지 관련 정부 정책들이 전반적으로 ‘친원전’ 체계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재생에너지(문재인 정부)에서 원전(윤석열 정부)으로 단순히 발전원을 바꾸는 과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력망과 전력시장 개편도 연동된 과제이며, 전기요금 등 전기 수요, 에너지 효율화의 문제와 원전 확대 과정에서 예고된 사회적 갈등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는 원전 이용을 늘려 전체 발전원 중 원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 정부는 원자력 23.9%, 신재생에너지 30.2%를 2030년의 전원믹스(발전원 구성) 목표로 잡고 있다. 윤 당선자 캠프의 원자력·에너지정책 분과장인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5% 수준으로 늘리면 되고, 원자력 비중은 30~35%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전 비중 확대 방안으로는, 현 정부가 중단시킨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에 대해서도 안전성을 확인해 계속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임기 중 설계 수명 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원전이 고리 2~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호기 등 10기이고 이 중 6기 정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임기 초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내년 4월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고리 2호기의 계속 운전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탈원전 지우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강원 삼척의 대진 원전, 경북 영덕의 천지 원전 사업과 함께 2017년 10월 확정된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에 백지화 대상으로 포함됐다. 하지만 로드맵에 따라 사업 취소 절차가 종료된 대진·천지 원전 사업과 달리 ‘중단’된 상태로 있다. 주 기기 제작 등에 이미 투입된 7700억여원의 매몰비용 처리 방안 마련과 사업자의 불이익 등을 고려해 정부가 공사계획 인가 기간을 내년 말까지 연장해 재추진이 가능하다.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해당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가동 원전의 수명 연장 조건에 필요한 설비 개선 수준을 놓고 찬반 대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원자력안전법령은 원전 수명 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 때는 최신 운전 경험과 연구 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달 초 확정한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되,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의 전제로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개조와 개선을 요구해 원자력업계에서도 지지와 비판이 오갔다. 게다가 수명 연장을 위한 설비 개선은 경제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안전성 평가 기준을 놓고 수명 연장에 반대하는 탈핵환경단체, 지역 주민 등과 법적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변호사는 “수명 연장 기준에 맞추기 위한 설비 개선 비용을 고려하면 경제성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이 기준의 적용을 요구하는 싸움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다수 원전에서는 포화 저장 상태에 다다른 사용후핵연료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원전의 위험성이나 원전의 안전규제가 바뀐 것은 없다”며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사용후핵연료 문제, 전기요금 문제 등 민주적 절차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자력 비율 30~35%까지 상향
전력망·전력 시장 개편 연동 과제
“경제성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 커”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 중요
전력 부문 탈탄소화를 우선적으로
‘전기요금 정상화’가 그 첫걸음
윤 “4대강 사업 계승하겠다” 공언
“낙동강 식수 녹조라떼 해결해야”
윤 당선자 공약대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 20~25%를 달성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다른 발전원들이 유연하게 출력을 조절해 수요·공급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빠른 출력 조절 기능을 갖추지 못한 국내 대형 원전들은 이런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20%만 돼도 전기 수요가 적은 봄철에는 원전을 모두 꺼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전력계통 전문가들의 이런 경고는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원자력학계의 목소리에 가려져왔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미 오래전 이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17년 관련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25%를 넘어가면 자연 상태에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변동성 대응을 위해 원전이나 화석연료 등 다른 발전원도 24시간 내내 가동되기는 어려운 단계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문제는 빠른 출력 조절이 안 되는 국내 원전으로는 대응이 곤란하다는 점이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라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확산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를 밟아갔지만 지역에서의 갈등 해결을 하지 못한 과제가 있었다”며 “재생에너지 허가 과정에서 중층화된 조건들이 많다. 전력망 운용,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제도 개혁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갈등을 풀기 위한 기구 설치 등 과제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자력 비중 확대에 맞춰 기존 기후·에너지 관련 계획을 수정하는 작업도 서두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 계획은 아니지만 원자력을 녹색에너지에서 배제한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도 변경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는 지난해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엔디시)로 유엔에 제출하면서 전환(발전) 44.4%, 산업 14.5%, 건물 32.8%, 수송 37.8% 등 부문별 세부 감축 내역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을 이행하기 위한 ‘감축 로드맵’은 미확정 상태다. 시나리오를 토대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 구성이 친원전·친산업계 인사들로 교체 보강되리란 얘기도 나온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확정하게 될 로드맵은 공약대로 원전 비중을 늘리면서 산업 부문의 감축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이 로드맵을 토대로 전력수급기본계획, 에너지기본계획 등이 순차적으로 방향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산업계 부담이 과도하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정상화’ 과제는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에너지전환의 첫 단추로 꼽는 대목이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구체적으로는 전력 부문을 빨리 탈탄소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력요금을 정상화해 온실가스 감축이 모든 국민들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가정용 기준)의 전기요금을 인상해 소비 효율화를 유도하고 확보한 재원을 에너지전환 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 정부는 발전연료비 급등에도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막아왔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적자폭이 급증하자 결국 오는 4월과 10월 두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현 정부가 승인했다. 하지만 윤 당선자 쪽은 한전 적자를 고려해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대선 기간 “전기요금 인상은 탈원전 정책 실패의 책임 회피일 뿐”이라는 주장과 함께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한 상태다.
새 정부 환경 정책이 과거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함께 추진한 국민의힘 주도로 그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당선자는 선거 막바지인 지난달 말 “4대강 사업 계승”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것을 ‘적폐’로 규정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를 두고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금강과 영산강에 대한 보 철거 등의 계획을 마무리했지만 언제까지 이를 실행한다는 추가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새 정부가 바로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1300만 인구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가장 문제다. 4대강 사업을 ‘계승’한다고 한다면 4대강으로 인한 녹조라떼 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 식수 문제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 이후 주로 더운 여름철에 강물에 녹조가 확산되면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녹조라떼’란 용어가 널리 퍼졌다. 반면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보를 이용해 물을 가두어 쓸 수 있는 등 지역 농민들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찬성 쪽 주장도 이어져오는 등 갈등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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