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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요렇게 바싹 마른 꼴 처음” 22년내 최대 산불, 기후역습의 시작

등록 2022-03-12 07:59수정 2022-03-13 14:44

[한겨레S] 뉴스분석
기후변화와 산불 재난
최저 강수·강풍 등 대형산불로 기후재난화
첫 발화는 여전히 실화·방화…산불예방 무게 실어야

8일 강원 동해시 일원 산림이 불에 탄 채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8일 강원 동해시 일원 산림이 불에 탄 채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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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북면 검성리에서 평생 나고 자란 장아무개(94) 할머니는 이토록 심한 가뭄은 올겨울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지난 4일 인근 두천리 야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며칠째 이재민 대피시설에서 지내고 있다는 장 할머니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에 흐느꼈다.

“올해는 비도 눈도 하나도 안 왔어. 산이 얼마나 바싹 말라 있었는지 몰라. 마침 그날 바람이 부니까 얼마나 불이 잘 붙겠어. 아주 난리가 났지요.”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운 할머니는 감자, 고구마 같은 작물부터 벼농사까지 두루 지으며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나 유독 최근 들어 날씨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고 했다. “옛날이랑은 완전 달라. 왜 이렇게 비 한 방울 안 떨어지는지 모르겠어. 우리 사는 곳에 큰 개울이 있는데, 올겨울 물 한 방울 없이 바싹 말랐어요. 이때까정 살면서 요런 꼴 처음 보지요.” 대형산불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킨 이장 박영철(73)씨도 “올겨울 숲이 무척 마르고 대기가 상당히 건조했다. 나라에서 계속 건조주의보, 건조경보가 내려왔다. 이처럼 오랜 기간 건조한 건 올해가 제일 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건조의 절정’에서 댕긴 불씨

지난 4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 한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2000년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이후 22년 만의 대형산불로 기록되고 있다. 발생 일주일째인 11일 오전 현재 80%만 진화됐다. 강원 삼척시까지 번진 불은 광범위한 지역을 태우며 피해면적 2만여헥타르(㏊) 이상 진행 중이다. 5일엔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또다른 산불이 시작됐다. 산불은 동해시로 확산돼 나흘 동안 4천헥타르를 집어삼킨 뒤 잦아들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울진·삼척 산불은 인근에 있는 한울원자력발전소와 액화천연가스(LNG) 기지, 금강송 군락지 등을 위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재해를 낳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10일 오전 11시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총 40건에 이른다. 피해면적이 서울 면적(6만520헥타르) 3분의 1이 넘는 2만3230헥타르에 이른다. 왜 지금 시점에 규모가 크고 진화가 어려운 산불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을까.

강원·경북 지역의 경우, 이미 오랜 기간 산을 살핀 전문가들이 대형산불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실제 울진·삼척 산불 발생 하루 전인 3일, 백두대간 생태전문가인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의 목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곧 대형산불이 터질 것 같습니다. 아마 3월12일 전에 크게, 특히 경북 산간 지역 쪽에 말이죠. 최근 20년 사이 이렇게 메마른 적은 없었어요. 3월 둘째 주가 건조의 절정이에요.”

특히 강원 동해안과 경북 산간 지역은 작은 불씨 하나만 있어도 언제든 대형산불로 번질 수 있을 만큼 지나치게 메마른 상황이었다. 4일과 5일엔 경북 일부 지역에 건조경보가, 강원·영동권에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게다가 산불이 발생한 4일, 하루 뒤 5일에는 강원 산지에 강풍경보가, 경북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강수량은 평년의 7분의 1 수준인 13.3㎜밖에 되지 않았다. 197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강수일수 역시 평년보다 7.8일 적은 11.7일에 그쳤다. 이러한 기후 여건은 작은 불씨만 있으면 대형산불로 발전하기 충분했다.

10일 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경북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 주변 불을 끄고 있다. 산림항공본부 제공
10일 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경북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 주변 불을 끄고 있다. 산림항공본부 제공

건조의 절정에 오른 메마른 산세에 인재가 더해졌다.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60대 주민이 홧김에 불을 지르면서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4일 울진군 북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자동차로 도로를 지나며 담뱃불을 던진 운전자 잘못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잡힌 차량 운전자를 추적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강릉시 옥계면 산불 방화사건의 방화범을 강력처벌하고 신상 공개하라”는 등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산불 대형화, 기후위기 시작됐다

발화 원인을 만든 이들의 책임은 따져물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불을 키운 기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산불의 첫 시작은 인재였더라도, 산불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하는 구조에는 과거와 달라진 기후여건이 배경이라는 것이다. 실제 강원·경북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봄철 강풍의 하나인 ‘양간지풍’ 영향으로 종종 산불이 있었지만 단기간에 소규모로 진화되곤 했었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예전 같으면 누군가 부주의로 담배꽁초를 버린다고 해도 그게 대형산불로 이어질 확률이 높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르다”며 “2~3월 기온이 높아지고 습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대형산불 위험도를 높이고 있다. 전체적인 추이를 볼 때,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대형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산림청이 발표한 ‘2020년 산불통계연보’를 보면, 한해 산불 발생 건수는 2016년 391건, 2018년 497건에서 2020년 620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해 산불 피해면적 역시 2016년 378헥타르, 2018년 894헥타르이던 것이 2020년 2920헥타르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정철호 산림청 대변인은 “대형산불이 과거엔 4월 강원도 지역에 집중돼 있었는데 최근엔 시기가 앞당겨지고 전국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겨울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 초봄에 바짝 말라 있는 숲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여기에 강풍이 더해져 순식간에 불길이 확대되면 피해면적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도 양간지풍 영향으로 산불이 일어나는 패턴이 있었지만 이번 울진 산불의 경우 아침엔 서풍이 불었다가, 오후엔 동풍이 부는 등 갈피를 잡기 어려운 돌풍 탓에 불길을 잡는 데 과거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단체들 역시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9일 논평을 내어 “미국, 유럽에서 기후변화 때문에 대형산불이 발생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겨울에서 봄철로 이어지는 시기 가뭄과 건조 등의 기후위기 영향으로 대형산불 위험이 커졌다. 앞으로 대형산불은 기후재난 대비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3년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중국 쓰촨성 등에서 오랜 기간 계속된 대형산불은 국제사회에 산불재난과 기후위기의 연관성을 알리는 주요 이슈였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엔환경총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로 산불이 더 빈번히 발생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다. 산불 발생 건수가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금세기 말까지 50%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가뭄이 늘어나며 상대습도가 낮아지고 강풍과 번개가 더 빈번해져 산불시즌이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울진군 한 마을 주민이 7일 복구작업에 나서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형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울진군 한 마을 주민이 7일 복구작업에 나서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불씨의 시작은 어쨌든 사람

산불재난의 구조가 달라지는 만큼 정부 대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속절없이 일어난 산불이라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산불 초기 진압 능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주불(큰불)을 잡는 건 헬기인데 이번처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면 가용헬기가 100대라도 적은 형편이다. 헬기와 진화인력이 증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불 진압 최전선에 투입되는 산림청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인력 확대와 처우 개선 문제도 꾸준히 제기된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달라진 기후 여건으로 불가피하게 대형산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산불조심기간을 앞당기고, 관련 예산을 늘려 인력과 장비 투입 등 진화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산불 통계연보를 보면, 2011~2020년 동안 30헥타르 이상을 태운 큰 산불은 총 35건이었는데, 원인 미상 2건을 제외하고 33건이 입산민 실화나 쓰레기 소각으로 산불이 시작됐다. 인재를 막기 위한 예방대책 강화로 발화 자체를 막는 노력이 강화돼야 하는 까닭이다. 배재현 국회 입법조사관은 “외국의 대형산불은 번개(뇌우) 등으로 인한 자연발화도 많지만, 국내 대부분의 대형산불은 실화, 방화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라며 “산불 예방에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진화 못지않게 산불 예방 정책에도 무게를 싣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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