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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미세플라스틱 막는 세탁기 나와라…국회·기업 압박 시민행동 본격화

등록 2022-02-17 08:59수정 2022-02-18 10:49

미세플라스틱 불안에 행동 나선 소비자들
“육해공 침투한 미세플라스틱” 대응 요구에
엘지·삼성 등 “저감기술 연구하겠다” 움직임
‘저감관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정책 제안도
전문가 “플라스틱 생애주기 관리해야” 지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필터를 교체하려고 열어보면 내부가 시커메요. 그동안 이렇게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그냥 바다에 흘려보냈던 거죠.”

충남 서산에 사는 유병숙(52)씨는 지난해 7월 집 안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설치했다. 합성섬유 옷을 세탁하면 플라스틱 재질의 미세섬유가 떨어져 나오는데 이를 걸러주는 장치다. 필터를 갈 때마다 까만 섬유 뭉치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오염물질이 있을 줄 몰랐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더라고요.”

유씨가 “무시무시하다”고 말한 일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서산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일하는 유씨는 아이쿱생협이 개발한 필터를 사용하지만, 일반 가전업체에서는 이러한 필터나 필터를 장착한 세탁기를 팔지 않고 있다. 세탁할 때마다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을 하수구를 통해 강과 바다로 배출할 수밖에 없다.

미세플라스틱은 길이 5㎜ 이하 플라스틱 조각으로, 애초에 5㎜ 이하로 제조된 1차 미세플라스틱과 환경에 잔존하며 점차 작아진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뉜다. 머리카락의 10분의 1 굵기 정도로 크기가 작기도 하다. 2010년대 들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고,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2014년, 2016년, 2017년 ‘해양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주요 환경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에베레스트 정상부터 깊은 바다까지 이미 지구 전체에 퍼졌다. 대기에서도 발견된다. 지난해 5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서울·경기 실외 공기에서 1㎥당 평균 1.96개, 실내 평균 3.02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처리되지 못한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흘러들어 ‘플라스틱 수프’가 되어버린 바다는 타격이 더 크다. 2020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 유통되는 바지락·낙지·새우 등 해산물 14종에서 1g당 평균 0.47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자연에 널리 퍼진 미세플라스틱은 돌고 돌아 결국 인간에게 온다. 유엔 해양환경보호 과학전문가그룹(GESAMP)은 유럽인이 홍합·굴 섭취를 통해서 연평균 1만10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섭취된 미세플라스틱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직접 미세플라스틱 저감을 위한 입법은 물론, 저감장치가 설치된 세탁기 개발 등을 요구하기 이르렀다. 주요 국가들의 대응에 견줘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병숙씨의 집에 설치된 미세플라스틱 필터의 모습.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검은 찌꺼기가 끼어 있다. 유병숙씨 제공
유병숙씨의 집에 설치된 미세플라스틱 필터의 모습.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검은 찌꺼기가 끼어 있다. 유병숙씨 제공

보이지 않아 더 불안…소비자 운동 확산

미세플라스틱은 잘 보이지 않아 대응이 수월치 않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구체적이다. 한국소비자원의 ‘먹는샘물 내 미세플라스틱 안전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미세플라스틱 크기가 150㎛ 이하이면 소화관 내벽을 통과할 수 있고 0.2㎛ 이하이면 체내 조직으로 흡수되어 국부적 면역체계 이상, 장 염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가 제시됐다. 간, 심장, 폐, 뇌 등으로 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과 위해 정보가 구체화되면서, 단순히 두려움을 호소하는 것에서 소비자들의 각성과 행동으로까지 본격 확산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도 기업의 미세플라스틱 저감 노력을 촉진할 제도를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 미세플라스틱 퇴출 운동을 주도하는 ‘소비자기후행동’에서 주목한 분야는 세탁 때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이다. 세탁기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는 미세섬유가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원인 중 ‘세탁 때 발생하는 미세섬유’의 비중이 35%로 가장 높다.

이에 소비자기후행동은 지난해 12월 엘지(LG)전자, 삼성전자, 화성세탁기, 위니아딤채 등 국내 주요 가전제품 제조업체 16곳에 ‘세탁기 내에 미세플라스틱 저감장치를 설치할 계획이 있는지’ 공개 질의했다. 또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세탁기 미세플라스틱 저감장치 설치 의무화, 미세플라스틱 저감장치 연구·개발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미세플라스틱 저감과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14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게 식품 미세플라스틱 관리 기준, 미세플라스틱 저감기술 개발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책 제안서를 제출했다.
기업들의 미세플라스틱 저감 계획 설문결과.
기업들의 미세플라스틱 저감 계획 설문결과.

세탁기 안 저감장치 설치 요구…외국선 이미 출시 경쟁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변화를 선택했다. 지난달 5일 세탁기 내 미세플라스틱 저감장치 설치 계획을 묻는 소비자기후행동의 질의에 엘지전자와 화성세탁기는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엘지전자 쪽은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정의와 국제표준규격 기준은 미흡한 수준이라 관련 기업과 기관들이 함께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성세탁기 쪽은 “세탁기 탱크에 장착할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를 개발·테스트 중”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시이에스(CES) 2022’에서 패션브랜드 파타고니아와 기술 협약을 맺고 세탁·건조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응 속도는 국제사회에 비해 더딘 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미세플라스틱 저감장치가 달린 세탁기 출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터키 가전업체 아르첼리크(Arçelik)는 2019년 9월 90% 이상 미세플라스틱을 걸러주는 필터가 설치된 세탁기를 개발했고, 아르첼리크 자회사인 독일 가전업체 그룬디히(Grundig)는 지난해 9월 비슷한 성능의 필터가 장착된 세탁기를 내놓았다. 슬로베니아 플래닛케어(PlanetCare)와 영국 매터(Matter)는 기존 세탁기에도 장착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를 선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12월 “미세플라스틱이 세탁기에서 쏟아져 나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기업들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에 미세플라스틱 저감 의무를 못 박거나 사용을 금지한 국가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낭비방지 및 순환경제법’에 따라 2025년 1월1일부터 판매되는 모든 신제품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합성섬유 필터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캐나다는 2016년부터 유해물질 목록에 5㎜ 이하의 플라스틱을 추가했고, 2018년부터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한 화장품 등의 제조와 수입을 금지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환경부와 식약처 등에서 세정제 , 제거제 , 세탁세제 , 표백제 , 섬유유연제 등 5개 품목에 대해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한 정도다.

생선 안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들. 환경단체 그린피스 제공
생선 안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들. 환경단체 그린피스 제공

“더 심각해질 문제” “플라스틱 전주기 대책 나와야”

201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의 측정 방법과 분포 현황, 바다 미세플라스틱 농도, 인체 위해성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심원준 박사는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해양의 환경오염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육상환경과 인체 노출로 이어져 가기 때문에 인체 영향은 연구의 마지막 단계로, 인체 노출과 독성 영향에 대한 많은 자료 축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충뿐 아니라 미세플라스틱과 같은 생활 속 유해물질 분석을 하는 민간기업 ‘세스코’와 함께 국립환경과학원이 공동으로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강수에 대해서도 연구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세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인류가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하는 한 꾸준히 그리고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근본적으로 플라스틱 자체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반복될 위험이다.

심 박사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해양수산부 발표를 보면, 플라스틱 사용량이 지금처럼 늘어날 경우 2066년 바닷물 무영향예측농도(해당 농도 이하이면 생물 영향이 없다고 추정되는 농도) 초과 지역이 연안 10%, 외해 0.6%, 2100년 연안 82%, 외해 22%로 증가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려면 플라스틱의 생산, 소비, 사용 등 전 생애주기에 대한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플라스틱 전주기 관리에 관한 법을 만들고 그 안에 미세플라스틱 관련 조항을 넣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제사회의 흐름도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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