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 ‘두산타워’ 앞에서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두산중공업이 베트남 하띤 성 석탄화력발전소 ‘붕앙2’ 건설 설계시공파트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탈석탄을 실현하고 석탄발전 사업을 철회하는 데 두산이 앞장서라”라고 촉구했다. 분당/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년여동안 서한, 공개질의, 피켓 시위, 항의방문 등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두산중공업이 침묵하기에 이번 시위를 계획했다.”
지난해 2월18일 분당두산타워 앞에 설치된 ‘DOOSAN’ 조형물은 기존 구릿빛 대신 녹색 옷을 입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소속 이은호(33), 강은빈(25)씨는 수성 스프레이 4통을 사용해 가로 350㎝·세로 60㎝ 크기의 로고를 초록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가 올라가 현수막을 들었다. 미신고 집회였다.
현수막엔 “최후의 석탄발전소 내가 짓는다, 두산중공업”이라는 검정색 굵은 글씨를 적었다. 베트남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 두산중공업을 향해 더이상 석탄발전소 건설사업을 이어가지 말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였다. 동남아 등 개도국은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이 수요를 ‘활용’하는 각국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세계적 탈석탄 추세 및 재생에너지 전환에 따라 현재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들의 경제성도 떨어지고 탄소배출과 환경파괴만 가중하리란 우려가 크다. 이때문에 ‘최후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될 가능성을 현수막으로 풍자한 것이다.
시위는 10여 분만에 끝이 났다. 이어 이들은 미리 준비해 간 스펀지로 녹색 스프레이를 지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즉시 경찰에 연행되면서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 이들이 연행된 뒤 두산 그룹의 미화직원들은 “미지근한 물과 타월로 세척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밝혔다. 시위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우의 이치선 변호사는 ‘물 세척’으론 금속물의 효용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DOOSAN’(두산) 글자 모양의 스테인리스 재질의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 제품을 뿌렸다고 해도, 특수한 약품이나 장비 없이 물과 간단한 세척도구로 깨끗하게 세척이 가능하므로, ‘DOOSAN’ 금속 조형물의 효용을 해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양쪽은 19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5단독 재판부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약식명령 불복 후 정식재판 청구…반년의 법정 공방 시작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지난 2월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두산중공업이 설치한 로고 조형물 위에 뿌렸고, 업체가 이를 세척했다. 청년들은 벌금 500만원 약식선고에 불복해 지난 7월15일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제공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기후·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시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주요 이해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시위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때문에 이번 시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앞으로 한국 기후저항·시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기에 주목된다.
검찰은 두산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들이 조형물을 손괴해 조형물 복구비용으로 800만3740원이 들었다고 판단(공소장)했다. 조형물에 스크래치가 났고, 물로 지우는 과정에서 기단부 대리석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해 6월2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3단독 김희석 판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이씨에게 벌금 300만원, 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약식명령)했다. 그러나 두 활동가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지난해 7월부터 법적 공방을 거듭해왔다.
당시 이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서한, 공개질의, 피켓 시위, 항의방문 등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두산중공업이 침묵하기에 이번 시위를 계획했고 △약 800만원의 복구비용이 들었다고 두산중공업이 주장하지만 무독성 수성 스프레이를 사용했고 물청소만으로 세척해 복구비용의 절반이 넘는 벌금은 과도하며 △기후위기 대응의 불가피성을 들어 정식재판에 나선다고 알렸다.
“청년들의 소극적 저항이 형사처벌 대상 될 수 없어”
이후 7번의 공판 과정을 거치면서, 청년들은 집시법과 재물손괴 혐의 모두 무죄를 주장해왔다.
현재까지 미신고 집회로 대법원에서 집시법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노동자 100여명이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배를 땅에 대고 걷는 삼보일배 시위가 유일하다. 이들은 삼보일배·오체투지 집회처럼, 기업에 피해를 줬다는 두산 쪽 주장과 기업이 기후대응을 하지 않아 청년들과 지역 주민들이 입을 수 있는 환경피해 등 그 공익성과 절박성을 기준으로 양쪽의 효용을 비교할 때 청년들의 이번 기후시위도 무죄라고 강조한다.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도 “스크래치가 났다는 부분은 청년들의 시위로 인해 발생한 부분이 아니며 대리석 기단에 물이 스며들어 훼손이 되었다면 이를 분리해 따로 피해액을 감정하라”고 감정을 요구했다. 이에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800여만원의 피해액이라고 특정했던 공소장을 ‘금액 미상의 피해액'으로 정정·변경했다.
피고인인 청년들의 변호인인 이치선 변호사는 기후문제가 청년을 포함한 미래세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전제로 “헌법은 기업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생명권 생존권은 헌법상 더욱 우월적 가치를 갖는 기본권이다. 청년들은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의 의사를 표현했다. 두산중공업의 기후파괴 행위는 어떠한 제재도 없이 보장되는 반면, 청년들의 소극적 저항이 형사처벌 받는 결과는 헌법의 기본권 보호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일 오전 선고…1840만원 배상하라는 민사 소송에도 영향 줄 듯
형사재판 결과는 이어질 민사 재판에도 영향을 줄 예정이다. 두산 쪽은 이들에게 184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우리에게 1840만원의 민사소송을 걸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새 집을 마련해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려는데, 대문 명패에 페인트칠을 한 꼴이다. 회사 이미지는 크게 손상됐고, 임직원들은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소송장에 적혀있다. 그러면 두산은, (두산이 짓고 있는 붕앙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베트남 하띤성에서 뇌졸중으로 (사람이) 죽고, 우물물도 못 먹고 생수를 마시는 베트남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하나. 친환경 기업인 척 녹색 분칠을 하는 두산의 생태학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상할까.”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건물 점거 시위를 벌인 활동가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변론센터에서 맡기로 했다. 변호인단은 이들에 대해서도 무죄를 주장할 예정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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