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발표된 23일 오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의 전기료 인상은 10월1일부터 적용되며 이는 2013년 11월 이후 8년 만이다. 이에 따라 월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주택용 4인 가구라면 전기요금이 4분기에 매달 최대 1050원 오르게 된다. 연합뉴스
23일 한국전력과 정부가 인상된 연료비용을 반영해 인상된 4분기 전기요금을 발표하자 일부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받아든 청구서라고 보도했다. 크게 둘로 축약된다. 이 정부 들어 원전 비중을 줄이면서 다른 연료 비중·비용이 상승한 탓이라는 ‘비판’과 이러한 이유로 탈원전 정책에 따라 향후 전기요금은 더 오를 것이라는 ‘경고’다. 사실일까? 이제는 기시감이 들 정도로 반복되는 ‘기승전탈원전’ 보도를 보며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논리적인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까지 토로하는 이유는 뭘까.
24일 <조선일보>는 전기요금 인상 소식을 전하며 “‘탈원전해도 전기요금 인상없다’ 약속 어긴 문재인 정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전기요금 인상이 이게 끝이 아니”라고 전망했다. 주 교수는 “당초 2022년 11월까지 가동할 예정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를 재작년 조기 폐쇄하지 않고 신한울 1호기도 운영 허가를 예정대로 내줘 지난 7월부터 가동했더라면 한전의 발전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라며 “향후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1면 기사를 통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 발생 보고서’에서 2050년 전력수요가 늘면 발전비용이 1000조원 이상 늘 수 있다는 전망을 소개하며 탈원전 영향으로 전기료가 오를 수 있다는 논지를 이어갔다. 이날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경제지의 관점(‘탈원전 청구서’)도 유사했다.
하지만 4분기 전기요금 인상과 탈원전 정책을 연결시킬 근거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은 연료원가 변동폭에 따른 요금 조정을 좀 더 유연하고 기민하게 하기 위한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연동제를 처음 도입하려했던 건 가장 친원전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 정부였다.
게다가 지난해 원전 발전량은 전체 에너지원별 발전설비용량인 55만2천GWh 중 16만184GWh로 2019년(14만9천GWh)보다 9.8% 증가했다.
최근 10년치 원전 발전량(한국전력 전력통계속보)을 보면, 대표적 친원전 정부로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인 2010년 14만8천GWh→2011년 15만4천GWh→2012년 15만GWh로 늘다가, 박근혜 정권인 2013년 13만8천GWh로 줄다 2016년 16만1천GW까지 다시 늘었다. 문재인 정부 때도 2017년 14만8천GWh, 2018년 13만3천GWh로 감소하다 2019년 14만5천GWh, 2020년 16만GWh로 늘었다.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25.9%에서 지난해 29%로 석탄이나 가스, 신재생 등 다른 전력원들에 견줘 가장 크게 상승했다. 김대자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장도 “원전은 내년까지는 발전량이 늘어날 것이라 일부 언론 주장대로 탈원전 때문에 전기요금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산업부는 23일 밤과 24일 오후 두 차례 자료를 내고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산업부는 “올해 전기요금은 2·3분기 2회 유보해 지난해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연료비 상승분을 일부 반영한 4분기 요금을 적용해도 지난해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원전 설비 용량은 2019년 신고리 4호기를 준공하면서 지난해 이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증기발생기 결함으로 7개월간 가동이 중지됐던 한빛원전 3호기(전남 영광·100만㎾급)가 재가동 4일 만인 2015년 4월16일 오후 핵심 설비 고장으로 다시 멈춰섰다. 가동이 중지된 한빛 3호기의 모습. 연합뉴스
이를 의식하는 듯 일부 언론은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정비나 점검이 까다로워져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조선일보>는 2018년 7월 ‘탈원전 2년 만에 원전 정비 기간 2배 늘었다’고 보도했고, 올해 7월에도 ‘전력난에도 원전 4기 중 1기는 ‘정비 중’… 탈원전 맞추려 과대 정비하나’라고 지적했다. 올해 폭염 당시 전력예비율이 부족하다며 전력난을 조장하는 기사(‘멀쩡한 원전 허가 늦추더니 10년 만에 대정전 위기감’)도 일환이었다.
하지만 산업부가 밝힌 원전 이용률은 2018년 65.9%, 2019년 70%, 지난해 75.3%, 올해 상반기 73.4%로 증가 추세다. 김 국장은 원전 발전량이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정해둔 예방정비 기간이 있는데, 정비 중 결함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가동 중단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2018년의 경우 한빛 4호기의 콘크리트 외벽 철근 노출 문제나 월성 원전 삼중수소 누출, 태풍 등 정비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서 점검을 보다 강화했다. 24기 원전 중 1~2기가 멈춘다면 발전량의 5~10%씩을 차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은 최종 2084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감축 계획으로, 정부는 2030년까지의 원전 발전량 비중을 25%로 유지한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전문가들도 전기요금에 탈원전 정책을 연결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은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의 비용 상승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면서 요금이 인상된 것”이라며 “2011년 원전가동을 많이 했던 이명박 정부 때도 이런 이유로 연료비 연동제를 전기요금에 적용하려 했다. 원전의 경우 연료비 변동에서 자유로운 것은 맞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원전이 생산하는 에너지로만 전기를 100%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이 연료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안전비용을 고려할 때 전기요금을 인상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석탄이나 원자력이 줄어드는 만큼 새로운 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연료비 해외 의존을 줄여야지 원전을 늘리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래된 원전은 안전비용이 늘면서 전기요금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는 데도 사회적 비용이 크다. 바람이나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재생에너지 역시 미래 기술이지만 연료비가 들지 않고 점차 경제성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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